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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그레이스』는 1843년 캐나다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미스터리 소설이자, 기묘한 매력을 지닌 여인 그레이스 마크스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을 파헤치는 심리 소설이다. 16세의 나이에 살인에 가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30년간 옥살이를 하다 사면된 그레이스는 19세기 내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애트우드는 일찍이 그레이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CBC 텔레비전 드라마 「하녀」의 극본을 집필했다. 하지만 가려진 진실을 보다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사료들을 참고하고 연구하여 「하녀」 이후 20년 만에 소설 『그레이스』를 완성했다.
1843년 7월, 캐나다 토론토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하인과 하녀가 공모해 집주인과 그의 정부였던 가정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치정과 폭력과 하극상으로 뒤범벅된 이 사건은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도 대서특필되었고 범인 중 하나가 매력적인 용모의 열여섯 살 소녀라는 점이 논란을 더욱 키웠다. 어리고 아름다운 그레이스를 두고 사람들은 집주인 키니어 경을 짝사랑하다 질투에 눈이 멀어 남자 하인 맥더모트에게 살인을 교사했을 것이라 수군댔다.
반면 거칠고 사나운 맥더모트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했을 것이라고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맥더모트와 달리 그레이스는 변호사와 몇몇 명사들의 노력 덕분에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수감된 뒤에도 그녀가 정말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고 그녀의 이름은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후 30년간 그레이스는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오가는 삶을 살다가 계속된 탄원 끝에 마침내 1872년 사면으로 풀려났다. 석방된 뒤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레이스』는 그레이스가 수감된 지 16년 후의 이야기로, 정신과 의사 사이먼 조던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과 행적을 쫓는다. 그레이스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줄곧 퀼트를 하면서 이불 조각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 역시 남아 있는 사료들을 기반으로 퀼트 조각을 맞추듯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혼용해 주관과 객관이 충돌하는 순간을 예리하게 그려 내는가 하면,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는 편지와 픽션으로 구성된 편지를 섞어 놓는 등 사실과 허구를 함께 직조하기도 한다. 19세기 중반은 새로운 정신병 이론이 잇따라 나오고 공립과 사립 양쪽으로 정신병원과 요양원이 설립되던 시기였다. 과학자와 작가 모두가 기억력과 기억상실, 몽유병, 히스테리, 최면 상태, 신경 질환, 꿈의 의미와 같이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열광했다.
애트우드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는 소설적 장치들을 마련하고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그레이스는 과연 누구인가? 그녀에 대해 추측하게 해 주는 온갖 단서를 활용할수록 독자들은 오히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 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듯 악마의 얼굴을 감춘 팜 파탈이었을까, 아니면 순진하고 순결한 소녀였을까.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애트우드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질곡을 작품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다. 『시녀 이야기』의 여성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기능으로만 존재하고, 부커 상 수상작 『눈먼 암살자』에 나오는 여성들은 사랑하지도 않는 남성에게 팔려 가거나 부질없는 약속에 유린당한다.
『도둑 신부』에서도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남성들의 시선에 갇혀 산다. 그레이스 사건에서 애트우드는 한 여인을 둘러싼 남성들의 폭력적인 시선을 읽어 낸다. 그들은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그레이스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았고 그것이 그레이스의 본성이라고 여겼다.
애트우드는 소설 『그레이스』에서 이 왜곡된 시선을 걷어 내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그레이스를 그리며 그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 준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끝내 알 수 없지만 진실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애트우드가 이 매혹적인 게임에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소개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 출생. 캐나다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성장하였다. 『고양이 눈』의 주인공 일레인처럼 애트우드 역시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봄이면 북쪽 황야로 갔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 애트우드는 고등학교 진학 후 당시 여성으로서는 높은 벽이었던 ‘전업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토론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64년 스물한 살에 첫 시집 『서클 게임』을 출간하였으며, 이 시집으로 캐나다 총리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녀의 이름을 알린 장편소설 『떠오름』을 비롯하여 수많은 소설과 시를 발표하며 20세기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순수 문학뿐만 아니라 평론, 드라마 극본, 동화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애트우드의 작품에서는 실제 성적인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캐나다와 캐나다인의 정체성,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다양한 주제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고양이 눈』 외에 장편 소설 『신탁 여인』 『시녀 이야기』 『페넬로피아드』 등이 있으며 2000년에 『눈 먼 살인자』로 부커 상을 받았다. 그녀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토론토 요크 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에는 국제사면위원회, 캐나다 작가협회, 민권운동연합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그녀는 캐나다 문학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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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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