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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373)]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책을 읽읍시다 (1373)]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저 | 허유영 역 | 비채 | 360|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열세 살 소녀 팡쓰치가 쉰 살의 문학 선생님 리궈화에게 5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눈치챈 어른도 있고 힘겨운 고백을 들은 친구도 있었으며 가해자를 도운 사람까지 있었지만 아무도 팡쓰치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탈출구도 없이 고통에 길들여지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팡쓰치와 류이팅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한 영혼의 쌍둥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이팅은 어느 날, 낯선 산 근처의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곳으로 찾아간다. 거기에는 정신나간 표정으로 콧물과 침을 흘리는 쓰치가 있었다. 경찰은 산에서 쓰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소설은 쓰치의 일기를 통해 이팅이 지난 5년 동안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된다. 5년 전, 쉰 살의 문학 강사 리궈화는 열세 살의 팡쓰치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강간했으며 그 후에도 상습적인 성폭행으로 쓰치를 길들였다. 강사로 유명세를 얻은 20년 동안 리궈화는 수많은 소녀들을 취하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쉬웠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매년 새로운 수강생을 공급해주었고 강간당한 소녀들은 수치심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으며 세상은 든든한 그의 공범이었다. 심지어는 여성인 동료 강사마저 여학생들을 그에게 차로 실어날랐다.

 

한편 5년 전 이웃집 오빠 첸이웨이와 결혼한 이원은 두 소녀에게 책을 권하고 읽어주며 가깝게 지낸다. 비밀을 안고 조용히 시들어가는 쓰치에게 처음 주의를 기울인 것도 이원이었다. 그리고 이원 언니가 더운 날에도 짧은 소매를 입지 못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 역시 쓰치였다.

 

이원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궈화의 성폭력이 더욱 교묘하고 치밀해지면서 쓰치는 완전히 입을 닫고 만다. 쓰치의 엄마는 자신이 왜 딸에게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단짝 친구 류이팅은 쓰치를 비난했으며 이원에게는 쓰치를 도울 힘이 없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고통의 기록이다. 인물들은 섬세한 언어 속에서 저마다 비밀을 간직한 채 괴로워한다. 언어는 단단히 정제되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책 말미에 실린 서평에서 작가 장이쉬안은 쓰치에게는 폭력에 저항하는 문명이 있었지만 문명은 야만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일갈한다.

 

이 책은 어쩌면 팡쓰치가 자신만의 문명, 언어로 자신이 처한 폭력적 상황을 제목처럼 일종의 낙원으로 받아들이려다 실패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낙원을 누릴 수 없기는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팅은 친구의 고통을 방관하다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지만 너무 늦었고, 젊고 발랄하던 이원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팡쓰치에 앞서 리궈화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한 샤오치는 결국 인터넷 게시판에 그의 행각을 폭로하지만 싸늘한 비웃음만 살 뿐이다. 다른 어른들은 어떤가.

 

어린 여학생을 차례로 섭렵한 것을 자랑하는 학원 강사들, 명문대 합격만이 모든 것인 교육 환경, 성교육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가정 분위기, 가정폭력을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는 이웃들.

 

작가 린이한은 성폭력을 비롯해 오늘날 여성들이 마주한 크고 작은 비극을 소설 곳곳에 복선처럼 깔아두었다​.

 

2017427, 스물여섯 살 젊은 작가 린이한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데뷔작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출간한 지 두 달 남짓, 소설이 베스트셀러 행진을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생전에 린이한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선생님을 모델 삼아 소설 속 리궈화를 묘사했다고 밝혔다.

 

소설 속 어른들은 가해하거나 방관하고 심지어 가해자를 돕는다. 이 사회가 성폭력을 발견했을 때 가해자 편에 선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았고 이 사실을 이용해 수많은 사랑을 얻었다. 팡쓰치든 궈샤오치든, 아니면 그 뒤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의 사랑이든. 그가 그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바로 사회였다.

 

그리고 그녀가 자살한 후 그녀의 부모는 이 책이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폭로하고 유명 강사 천싱(陳星)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대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결국 천싱은 불기소처분됐다.

 

 

작가 린이한 소개


대만 타이난(臺南)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2009년 대입자격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타이베이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2주 만에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세 번의 자살 시도 뒤에 2012년 대만정치대학 중문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3년 후 또다시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20172월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발표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인 427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작가의 부모는 주인공 팡쓰치가 열세 살부터 유명 문학 강사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이 같은 내용을 부인했다. 2017년 대만에서 출간된 책에 실린 작가 소개는 다음과 같다.

 

타이난에서 출생. 전공이나 학력은 없다. 모든 신분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정신병 환자라는 것.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벌레가 독서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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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