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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414)] 19호실로 가다

[책을 읽읍시다 (1414)]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저 | 김승욱 역 | 문예출판사 | 384| 13,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호실로 가다는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To Room Nineteen: Collected Stories Volume One’(1994)에 실린 11편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남은 9편은 사랑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레싱의 초기 단편으로 가부장제와 이성중심 등 전통적 사회질서와 사상 등에 담긴 편견과 위선 그리고 그 편견과 사상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특히 19호실로 가다에 담긴 단편소설 가운데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한 남자와 두 여자」 「」 「영국 대 영국」 「두 도공」 「남자와 남자 사이」 「목격자」 「20은 국내에서는 최초 번역되는 것이다. 기묘하고도 현실비판적인 레싱만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현대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19호실로 가다옥상 위의 여자도 포함되어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레싱의 면모 또한 발견할 수 있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결혼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모두 포기한 전업주부 수전이 숨 쉴 틈을 찾기 위해 ‘19호실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가꾸던 수전이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된 결정적 원인은 결혼과 가정생활이다. 수전은 가족에게서 벗어나 혼자이고 싶지만, ‘이라는 공간에서 수전은 온전히 혼자일 수 없다. 결국 수전은 런던의 후미진 호텔로 향하고, 호텔의 ‘19호실에서야 그 어떤 역할과 의미도 강요받지 않는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레싱은 여성이 정체성과 독립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온전히 본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 듯하다. 이는 다른 소설에서도 몇 차례 반복되어 나타난다. 남자와 남자 사이의 모린은 평생 애인을 뒷바라지하다가 버림받는다. 그와 헤어지고도 생활비가 부족해 전 애인의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린은 자립할 수 없는 현실에 굴욕감을 느낀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의 바버라는 수전이나 모린과는 달리 결혼 후에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을 갖고 있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바버라의 집에 간 그레이엄은 그녀의 방을 보고 아내한테 이런 방이 있다면 나는 싫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엄은 바버라가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아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레싱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또 다른 특징은 중년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이다. 19호실로 가다의 수전,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의 바버라, 남자와 남자 사이의 모린과 페기,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스텔라, 두 도공와 메리, 목격자의 미스 아이브스 등은 모두 중년 여성으로 이들은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레싱은 명료하고 이성적인 서구 중심의 사고보다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면서도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는 다른 작가와 레싱을 구별 짓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두 도공은 이러한 레싱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프리카 황무지에서 그릇을 빚는 한 늙은 도공의 꿈을 꾼 는 현실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도공인 메리에게 꿈 이야기를 전해준다.


 메리는 꿈을 단 한 번도 꾸지 않았을 정도로 현실에 충실하고 단호한 사람이지만 계속되는 의 꿈 이야기를 듣고, 꿈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 과정은 메리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녀가 더 유연한 생활과 풍부한 감정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레싱의 소설에서 모호한 세계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아마도 레싱은 이른바 여성적인 것으로 폄하되던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한 감성이 실은 여성, 혹은 감성적인 남성(영국 대 영국의 찰리)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본 듯하다. 그들은 고독을 느낄 수 있고 자아를 마주할 수 있으며, 내면의 적()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19호실에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던 수전뿐 아니라 19호실에 가다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 인물의 이야기는 비단 레싱의 시대, 1960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가부장제는 여전히 공고하고 많은 남성은 가정을 부양하고 많은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맡는다. 육아와 가사로 일을 그만둔 여성은 가부장제 안의 또 다른 혐오와 마주한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위대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거나 맘충으로 전락하고 아이가 없는 가정주부는 육아도 경제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이를 다 키운 중년 여성이나 노인 여성은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낮은 급여의 일을 도맡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줌마’ ‘김여사같은 혐오와 멸시다.

 

도처에 혐오가 가득하지만 이를 해결할 제도적, 구조적 차원의 조치는 묘연하기만 하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은 강물로 떠간 수전처럼 무력하고 사회는 여성을 나락으로 몰고 있다.

 

 

작가 도리스 레싱 소개

 

작가 도리스 레싱은 현대의 사상·제도·관습·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과 지적인 문체로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성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자 산문 작가이다.

 

본명은 도리스 메이 테일러이다. 1919년 이란의 케르만샤에서 태어났다. 레싱의 가족은 1925, 영국 식민지인 남부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사해 옥수수농장을 했다. 가족이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으나, 레싱은 로마 가톨릭의 여학교를 다녔다. 15살 이후는 학교를 떠나 독학을 했다.

 

이런 어렵고 고된 유년기에도 불구하고, 레싱의 작품에서 그려진 영국령 아프리카의 삶은 식민지 영국인의 메마른 삶과 원주민의 어려운 삶에 대한 연민으로 채워져 있다. 열네 살 이후부터 어떤 제도 교육도 거부한 독특한 이력은 기성의 가치 체계 비판이라는 그녀의 작가 정신과 태도의 일관성을 잘 보여준다.

 

영국인으로서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로디지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특히 인종차별 문제, 여성의 권리 회복 문제, 이념 간의 갈등 문제 등에 깊이 천착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정치 의식과 사회비판 의식은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어리석음, 반가치 등의 집단 폭력으로부터 인간 개인의 개성적인 삶과 사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첫 소설인 풀잎은 노래한다1950년 런던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그녀는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11번째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당시 88세로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의 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서머싯 몸 상(1956),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다. 유명한 작품으로 폭력의 아이들시리즈, 황금노트북, 생존자의 회고록, 다섯번째 아이, 런던 스케치등이 있다.

 

그녀는 두 차례 결혼하고 두 차례 이혼했으며,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찰스 위즈덤과의 첫 결혼 생활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졌다. 후에 동독의 우간다 대사를 지내기도 한 고트프리트 레싱과의 결혼 생활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이어졌다. 1999년 영국 정부로부터 CH훈장을 받았으나 DBE 작위는 고사하였다. 20131117일 향년 94, 노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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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