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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566)] 슬레이드 하우스

[책을 읽읍시다 (1566)] 슬레이드 하우스

데이비드 미첼 저 | 이진 역 | 문학동네 | 304| 13,8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데이비드 미첼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슬레이드 하우스는 특정한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미스터리한 대저택 슬레이드 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호러 스토리다. 총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79년부터 2015년까지 구 년 간격으로 이 저택에 초대된 다섯 인물들의 괴기하고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다.

 

높다란 벽돌담 사이로 이어지는 좁고 어둑한 골목 슬레이드 앨리. 그곳에는 구 년마다 한 번, 10월 마지막 토요일에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고 검은 철문이 있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원과 고풍스러운 저택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환상의 저택에 1979년부터 2015년까지 삼십여 년에 걸쳐 다섯 명의 손님이 초대된다.

 

평범해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어린 소년,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닳고 닳은 형사, 마음에 상처를 한가득 품고 있는 대학교 초현실 동아리의 신입 회원, 미스터리한 저택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기자, 심령 현상을 철석같이 믿는 잠재적 환자의 손에 이끌려 온 정신과의사. 처음에 그들은 이 어마어마한 저택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그곳을 떠날 수 없음을, 화려한 풍경 뒤에 그들의 영혼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독자는 작가가 조금씩 흘려놓은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가며 이 세 가지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이야기는 새로운 골목에 접어들 때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을 펼쳐 보이며 예측을 번번이 뒤엎는다. 슬레이드 하우스로 이끌려 들어가는 각 장의 주인공들처럼 독자는 미첼이 탄탄하게 쌓아올린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길을 잃는다.

 

인간을 해하려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깃든 일종의 흉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호러라는 장르의 큰 틀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슬레이드 하우스는는 단지 공포라는 장르적 쾌감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미스터리한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겪어내는 각각의 인간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슬레이드 하우스는 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들이 가장 욕망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욕망하는 것과 마주했을 때 얼마나 쉽게 함정에 빠지는지를 묘사한다. 또한 인간이 경험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과 좌절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중요한 점은 인간의 한계를 대변하는 각 장의 주인공들이 그저 이야기의 진행을 위한 도구로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사연과 삶이 있는 생동하는 인물들이다. 언제나처럼 데이비드 미첼은 탁월한 상상력과 공감 능력으로 각각의 인물들에게 생명과 사실감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독자는 일인칭시점에서 서술되는 인물들의 으스스한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 슬픔과 후회의 감정에 깊게 이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작가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되 그것을 절대화하지는 않는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믿는 사람처럼, 미첼은 인물들이 장을 거듭하며 서로와의 연결성을 드러내고, 그와 함께 그들을 해하려는 존재에 서서히 대항해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편소설로서 슬레이드 하우스의 서사적 연결성은 주제적 통일성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은 호러소설이라기보다 호러라는 장르를 빌린 드라마에 가깝다. 소재의 초현실성과 묘사의 리얼리즘이 뒤섞여 탄생한 이 기묘하고 매혹적인 소설은 미첼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와 기존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작가 데이비드 미첼 소개


1969년 영국에서 태어나 켄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비교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일 년을 지낸 후 일본으로 건너가 팔 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는 등 세계 각국을 떠돌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9년 첫 소설 유령이 쓴 책을 발표한 데이비드 미첼은 단숨에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그해 35세 이하의 영국 작가가 쓴 최고 작품에 주어지는 존 루엘린 라이스 상을 수상했고, 가디언 신인 작가상 후보에도 올랐다. 2001년에는 넘버 나인 드림으로 맨부커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3그랜타선정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 20에 이름을 올렸다.

 

2004클라우드 아틀라스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07타임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에 뽑혔다. 2006년에는 블랙스완그린타임선정 올해 최고의 책 10에 뽑히기도 했다. 2010년 발표한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19세기 일본 나가사키에 위치한 인공섬 데지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2010년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고 2011년 커먼웰스상을 수상했다. 2014본 클락스, 2015슬레이드 하우스를 발표했고, 한강, 마거릿 애트우드 등의 소설가들과 함께 미래 도서관프로젝트의 작가로 선정돼 2144년에 공개될 작품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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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