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587)]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저 | 이승수 역 | 마음산책 | 200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존재의 당혹감, 뿌리 내리기와 이질성이라는 줌파 라히리가 천착해온 주제의식은 이 소설에서 정점을 이룬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략 40대 초반, 어느 한적한 바닷가 도시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교수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고독한 미혼 여성이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에서 흔들리고, 어떤 곳과 동일화하고자 하면서도 지속적인 관계 만들기를 거부한다.
현재 살고 있고 그녀를 매료시킨 도시는 하루하루 일상을 만드는 살아 있는 배경, 중요한 대화자로 자리한다. 집 주변 보도, 공원, 다리, 광장, 서점, 길거리, 상점, 카페, 수영장, 식당, 병원 대기실, 발코니, 슈퍼마켓, 박물관, 매표소, 역, 남편이 빨리 죽고 나서 치료약 없는 외로움 속에 잠겨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고자 이따금 그녀를 멀리 데려가는 기차 등이 그것이다.
좀처럼 친해질 수가 없는 직장 동료들, 여러 친구들, 그녀를 위로하고 혼란케 하는 사랑의 그림자인 ‘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계속 살아왔던 곳을 떠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소설은 변해가는 일 년의 계절을 그리면서도 바다와 태양이 빛나는 날 ‘깨어나’ 일순간 삶의 열기로 피가 뜨거워지는 그녀의 모습을 선명히 각인한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사는 도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이름은 한계를 짓고 호명은 구체화하는 속성이 있기에, 작가는 이름을 없앰으로써 무게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열린 세계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소설 속 그녀는 어릴 적 부모에게서 받은 트라우마가 강하다. 외부와의 교류를 거부한 채 자신만의 누에고치에 틀어박혀 인색한 삶의 방식을 가족에게도 강요했던 아빠, 성격이 맞지 않는 아빠와 매일 다투며 딸에게 집착했던 엄마. 그 때문에 어릴 적 가족에게서 느낀 결핍과 불안은 친구 관계, 이성 관계에까지 이어졌고 여전히 그녀의 삶을 흔든다.
사랑에 있어서도 상처가 있다. 양다리를 걸쳤던 애인, 유부남과 가졌던 짧은 만남, 친구의 남편을 사랑하지만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 학회에서 잠깐 만나 마음으로만 품고 있는 미래의 사랑. 그녀가 한곳에 뿌리 내리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집을 떠나는 것에도 막연한 불안을 품듯, 결혼해 정착하지 못한 채 사랑에도 여전한 불안과 기대를 함께 품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불안한 정체성과 이동하는 존재의 기억을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선보인다.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언어를 발굴하고 그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오롯이 개척해가는 그녀의 단단한 발걸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쁨이 크다.
작가 줌파 라히리 소개
1967년 영국 런던 출생.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해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구겐하임재단 장학금을 받았다.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꼽혔고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08년 출간한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은 그해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소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최우수 도서 10’에 들었다. 2012년 미국문예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를 발표해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침착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또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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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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