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601)] 총구에 핀 꽃
이대환 저 | 아시아 | 360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52년 전 1967년 4월 초에 일본 언론들과 도쿄 특파원들이 주일쿠바대사관에 망명한 한국계 미군 탈주병을 일제히 보도했다. 도쿄 한국대사관과 서울 외무부가 주고받은 ‘김진수 한국계 미군 주일쿠바대사관 망명사건: 1967-68’이라는 비밀 문건을 생성했다.
『총구에 핀 꽃』은 ‘김진수의 삶의 궤적’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손진호’라는 새로운 인물로 창조한 그만큼 ‘김진수와 손진호’ 사이에는 뚜렷한 격차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김진수의 ‘삶의 배후를 관장하는 진실과 그 진실의 핵을 이루는 인간의 문제’를 탐색하는 소설적 주요장치로서,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와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를 조형해내기 위한 심혈을 기울여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에서 비참한 전쟁고아로 떠돌았던 김진수와는 아주 다르게 손진호가 시장바닥에서 수녀의 지갑을 탈취하다 붙잡혀 영일만 바닷가의 ‘송정원(송정수녀원과 송정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서 새로운 주제의식을 창출하였다는 점이다. ‘흰 수염 푸른 눈 신부’가 수녀들과 이끌어나가는 송정원은 베트남 전장과 대비되는 평화의 상징 같은 공동체이다. 그리고 베트남 전투의 모습, 쿠바대사관에서의 구체적인 생활, 홋카이도 여행,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하는 청년기에 받아들인 히피문화 등을 통하여 평화에 대한 염원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강하였다.
타이피스트 특기병이었던 김진수와 달리 손진호를 첨병분대 전투원으로 새롭게 조형함으로써 베트남전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홋카이도와 관련한 서사가 첨가된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68년 4월 탈영병 손진호는 고바야시라는 대학원생의 안내를 받는데 그는 아이누족 피가 섞여 있다. 고바야시를 통해서 아이누족이 겪은 통한의 역사가 가슴 아픈 원경(遠景)으로 드러난다.
2018년 6월에는 73세 손진호가 아들, 강 여사와 함께 아바시리 감옥박물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징용에 끌려갔던 손진호 할아버지 이야기가 첨가되어 세대를 뛰어넘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디아스포라가 환기된다. 아이누족의 이야기나 아바시리감옥(網走監獄)에 수감되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손진호의 삶과 어우러져 제국주의로 전환된 일본이라는 민족국가의 어두운 그림자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전쟁의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히피문화를 체화한 후 미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다 일본으로 휴가를 나와 주일쿠바대사관에 잠입하지만 망명의 길이 막혔던 손진호.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자신에게 덮씌워진 전쟁의 운명을 거부하고 평화를 찾아 헤매는 고투의 길이었다. 이 ‘작은 인간’의 이야기로써 피워낸 『총구에 핀 꽃』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험로를 열어나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으로 우리 영혼의 꽃이다.
작가 이대환 소개
1958년 포항 출생. 1980년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주관 장편소설 현상 공모 당선, 1989년 《현대문학》 지령 400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 당선. 소설집 『조그만 깃발 하나』 『생선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 장편소설 『새벽, 동틀 녘』 『겨울의 집』 『붉은 고래』(전 3권) 『큰돈과 콘돔』, 바이링궐 소설 『슬로우 불릿』, 에세이 『하얀 석탄』, 평전 『박태준 평전』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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