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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609)] 마리의 돼지의 낙타

[책을 읽읍시다 (1609)] 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저 | 자음과모음 | 576| 14,8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설의 배경인 무동은 위성도시의 변두리에 자리한 근교농업 지구로, 재개발 철거민과 실직자를 비롯해 도시에서 밀려난 주변부 인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정착해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신화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지워진 채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마치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의 무대인 마콘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동에서는 예기치 않은 우연과 인연이 맞물리며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곡절과 사연이 펼쳐진다.

 

경수 가족의 사연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그러니까 자영업을 전전하다 실패한 후 사채 빚에 몰려 도망자 신세로 무동으로 흘러든 경수 가족뿐 아니라 비닐하우스 한 채를 빌려 작업실 겸 숙소로 사용하는 무동 최초의 주민인 로큰롤 고, 로큰롤 고와 결혼해 아들을 열둘 낳고 또한 무동의 최대 지주가 되는 토마토 문, 흑심을 품은 마을 남자들 때문에 엉겁결에 사건에 휘말리는 마리, 간신히 살아남아 떠돌다 로큰롤 고의 밴드에 합류해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민구, 개발 이익을 노리고 무동에 들어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쇠락해가는 인호 아버지, 목욕탕 때밀이 양성 학원에서 만나 사귀게 되는 인호와 감자탕집 딸 수지 등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는 이리저리 얽힌다. 그리고 사건들 사이 미스터리하고 수상한 상황이 벌어지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결말로 이야기는 치닫는다.

 

작가는 이렇게 무동에서 살아가는 개성적인 인물들을 비슷한 비중으로 나란히 펼쳐놓는다. 다양한 곡절과 사연은 여러 갈래로 어우러지는 동시에 분산되며 소설에 다성적인 활기를 부여한다. 이들의 인연은 과거에 숨어 있다가 현재에 돌연 얼굴을 드러내거나 몰래 숨어 작동하며 현재를 움직인다. 우연은 인연을 낳고 어느 순간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생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세상에서는 자주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돌연변이가 탄생하며 의도와 결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조사 의 반복처럼 소설은 인연과 우연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지며 전승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스스로 증식해가는 그 이야기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제어하거나 어느 한 곳에 비끄러매기보다 오히려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방식은 유머러스하다. 특유의 입담과 장광설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세상사의 아이러니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무동 사람들의 사연을 짐짓 초연하게 표현해낸다.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 삶의 아이러니, 다분히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더욱 육박해 들어가는 힘, 삶의 비의를 풀어내는 통찰을 엄우흠 작가는 이 소설에서 다 담아냈다. 더불어 독자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이야기의 묘미를 마리의 돼지의 낙타를 통해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엄우흠 소개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장편소설 감색 운동화 한 켤레를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장편소설 푸른 광장에서 놀다를 출간했다. 2011년 겨울부터 1년 동안 계간 문예중앙에 장편소설 마리의 돼지의 낙타전반부를 연재했다(발표 당시 제목은 올드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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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