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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691)]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책을 읽읍시다 (1691)]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태어난 매혹적인 이야기들   

로런스 블록 편 | 이은선 역 | 문학동네 | 504| 19,8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미국의 유명 하드보일드 작가 로런스 블록은 몇 년 전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리고, 스티븐 킹과 조이스 캐럴 오츠를 비롯해 일군의 걸출한 작가들을 아주 매력적인 문학 프로젝트에 초청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하나씩 선택해, 그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단편소설을 써내는 것이었다.

 

기획자와 참여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이 탁월한 기획은 2016년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고, 모든 단편이 최상급인 훌륭한 소설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7, 한국에서도 빛 혹은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작의 성공으로 인해 높아진 기대치와 부담감을 짊어지고 씨름하던 그는 고심 끝에 단편집의 규칙을 약간 변경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화가 한 명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엮는 대신, 참여 작가들이 각자 원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빛 혹은 그림자에 참여했던 쟁쟁한 작가들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청탁 메일을 보냈다. 그중 몇 명이라도 수락해준다면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대를 받은 대부분이 두번째 초청을 흔쾌히 수락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하게 된 이들을 대신해 네 명의 새롭고 개성 있는 작가들이 합류했다. 그렇게 조이스 캐럴 오츠, 리 차일드, 마이클 코널리, 제프리 디버, 데이비드 모렐을 포함해 재능 넘치는 이야기꾼 열일곱 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소설집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의 막이 올랐다.

 

대다수가 미스터리와 범죄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번 소설집의 한 가지 특징은 다수의 작가들이 미술작품의 풍경을 간접적으로 차용하는 대신 실제 작품과 예술가를 소설 속으로 적극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허구적인 상상과 역사적인 사실의 결합은 단단한 현실에 균열을 일으켜, 그 위에 발을 딛고 있는 독자들을 가상의 세계로 즐겁게 추락시킨다.

 

리 차일드는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사망한 해에 부정한 방법으로 그의 정물화 국화꽃다발을 손에 넣은 한 사기꾼의 회고를 그린다(피에르, 뤼시앵 그리고 나).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폴 고갱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완성한 부채를 든 소녀에 담긴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한다. 극중에 등장하는 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은 실제로 고갱과 그의 친구 빈센트 반 고흐가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부채를 든 소녀).

 

범죄소설의 대가 마이클 코널리의 세번째 패널15세기의 화가 히로니뮈스 보스의 대표작인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모티프로 한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짧지만 강렬한 이 작품에서 독자들은 기괴한 사건으로 인해 미궁에 빠진 두 형사와 함께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마주하게 된다. 세라 와인먼의 대도시에서 주인공은 애인의 집에 걸려 있는 누드화의 모델이 오래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아보고, 그 그림을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화가의 관계를 알게 된다.

 

어떤 단편에서는 미술작품이 등장인물의 심리적 풍경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 워런 무어는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전혀 아무것도 찾지 않는 암푸르단의 약사의 황량한 풍경을 단편 속 주인공의 공허한 심리를 반영하는 장치로 사용한다(암푸르단). 한 장소에 밤과 낮이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 빛의 제국은 조너선 샌틀로퍼의 상상력을 입고,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파괴되어가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한 지극히 주관적인 풍경화가 된다(가스등).

 

조이스 캐럴 오츠는 화가의 화려한 명성이 아닌 추문을 바탕으로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어둡고 기이하면서도 작가의 인장이 뚜렷한 문제작을 완성했다.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는 화가 발튀스의 아름다운 날들을 모티프로 삼은 이 단편은 그림 속에 갇혀버린 소녀의 목소리로 현실의 그늘과 예술의 그늘을 동시에 드러낸다. 오츠의 작품 속에서 현실과 예술은 서로를 반영하고 투영하며 경계를 확장하다가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 세계에서 예술은 삶을 고양시키는 찬란한 빛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을 망가뜨리고 상처를 헤집는 어둠이 될 수도 있다(아름다운 날들).

 

 

편 로런스 블록 소개

 

하드보일드 작가이자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의 기획·편집자. 수십 년에 걸쳐 매슈 스커더 시리즈, 버니 로덴바 시리즈 등을 발표해왔으며 앤서니상, 에드거상 등을 수차례 받았다. 2016년에 출간된 빛 혹은 그림자를 시작으로 미술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엮어 소설집을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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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