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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698)] 방랑자들

[책을 읽읍시다 (1698)]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저/최성은 역 | 민음사 | 600| 16,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방랑자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로 토카르추크를 선정하면서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일찍이 폴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토로한 바 있는 토카르추크의 작품 세계는 본질적으로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를 통한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작이 바로 방랑자들이다.

 

휴가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죽어 가는 첫사랑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고 수십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연구원,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며 고단한 삶을 살다가 일상에서 탈출하여 지하철역 노숙자로 살아가는 여인, 프랑스에서 사망한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긴 채 모국인 폴란드로 돌아온 쇼팽의 누이, 다리를 절단한 뒤 섬망증에 시달리는 해부학자, 지중해 유람선으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리스 문명의 권위자.

 

방랑자들은 여행, 그리고 떠남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어딘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를, 무엇을,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다다르려 애쓰는 사람들, 이렇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소설의 제목은 고대 러시아 정교의 한 교파인 달리는 신도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은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정체되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장소를 바꾸는 것만이 악을 쫓아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방랑자들은 여러 이야기를 직조한 다성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불과 10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텍스트도 있고, 중편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긴 분량의 이야기도 있다.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은 독자로 하여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듯이 읽으며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또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과 해석이 가능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장르 또한 다양해서 여행일지나 르포르타주는 물론, 서간문이나 강연록 형식의 글들도 공존하는데, 그중에서 인체나 내장 기관을 전시한 박물관에 대한 관람 기록은 추리물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쓴 에세이도 있고, 바쁜 여정을 쪼개어 기차역에서 무릎 위에 책을 받쳐놓고 쪽지에 휘갈겨 쓴 단상도 있다. 트렁크에 담긴 구겨진 짐처럼 두서없고, 혼란스러운 형태로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쉼 없이 나열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또한 시간적·공간적으로 서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발견된다.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서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방랑자들에서 토카르추크는 여행길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언어의 힘을 빌려 작품 속에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를 부여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여행이란 단순히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하는 물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이 방대한 여정에 포함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직접 가 보지 못한, 머나먼 타국의 이국적인 장소들을 간접적으로 방문해 보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것, 지구촌 곳곳에서 여러 흥미로운 인물들과 그들의 생의 단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소개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1962129일 폴란드 술레후프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문화인류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으며, 특히 칼 융의 사상과 불교 철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한다.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은 토카르추크 작품의 본질적 특징이다. 등단 초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고른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데뷔작인 책의 인물들의 여정(1993)은 폴란드 출판인 협회 선정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E. E.(1995)태고의 시간들(1996) 발표 이후 1997년에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수상했다. 단선적 혹은 연대기적 흐름을 따르지 않고, 짤막한 조각 글들을 촘촘히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특유의 스타일은 낮의 집, 밤의 집(1998)으로 이어졌다. 이후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100여 편의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모음집인 방랑자들(2007)을 발표해 2008년 폴란드 최고 문학상인 니케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18년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전 세계 문학계에 크게 회자되었다.

 

2009년에 발표한 추리소설 죽은 자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2017년에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 흔적으로 각색돼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이후 발표한 야고보서(2014)는 니케 상과 스웨덴의 쿨투르후세트 상을 받았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한림원은 그의 작품 세계에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 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2010년에는 폴란드 문화훈장 은메달을, 2013년에는 슬로베니아의 국제문학축제에서 시상하는 빌레니카 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낮의 집, 밤의 집이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 최종심에 올랐고 2015년에 독일-폴란드 국제 교류상을 수상했다. 현재 노바루다 근처의 작은 마을에 살며 집필 활동과 더불어 루타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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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