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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793)] 귤의 맛

[책을 읽읍시다 (1793)] 귤의 맛

조남주 저 | 문학동네 | 208| 11,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귤의 맛82년생 김지영으로 차이와 차별의 담론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조남주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누가 내 얘기를 여기에 쓴 거지 라고 할 만큼 한 개인에게서 공감의 서사를 예민하게 끌어내는 그가 이번엔 미열과 고열을 오가며 초록의 시간을 지나는 한 알 한 알의 존재에게 시선을 맞춘다.

 

소란 앞으로 누가 이런 말 하면 차소란 존나 나쁜 년이라고 좀 해 줘.”

맨날 붙어 다니는 네 명 중의 한 명. 그 조용한 애. 넷 중 가장 공부를 못하고, 가장 말이 없고, 중간 키에 개성 없는 얼굴에 아무런 사연도 특징도 없어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걔, 로 불리는 아이. 그런데 이것이 소란의 전부일까.

 

다윤 다정이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 아플 거면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어.”

우울한 집안 사정 같은 건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과 누군가 먼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다윤 안에 뒤엉켜 있다. 동정은 싫지만 위로는 간절하다. 이런 다윤을 엄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책등의 색이 날아가듯 빛바래져 가는 다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해인 제 인생 망치지 않았어요. 망쳐지지 않았어요, 아빠.”

해인은 베란다 짐 더미 가운데 서서 계속 울었다. 엄마가 손을 내밀어 구조하듯 해인을 베란다에서 데리고 나왔다.

다른 핑계 찾을 거 없어. 지금 우리 눈물 나는 상황 맞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그냥 울어.”

 

은지 우리 친하게 잘 지냈었잖아. 근데 나한테 갑자기 왜 그랬어?”

그때 은지는 처음으로 잘못하지 않아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에 영향을 받고 책임을 지고 때로는 해결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도.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소란, 다윤, 해인, 은지는 맨날 붙어 다니는 네 명으로 통한다.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이들은 다소 충동적으로 한 가지 약속을 한 뒤 타임캡슐에 넣어 묻는다. 앞날이 바뀔지 모를 이 약속 뒤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순간의 여러 감정과 계산이 빚어낸.

 

소설은 이 약속을 둘러싼 네 아이들의 속사정을 번갈아 풀어놓는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타임라인 위에 커서를 대고 잠시 정지된 장면을 들여다보듯, 작가는 인물들의 마음과 주변을 찬찬히 훑는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단짝 친구와 어리둥절하게 끝나 버렸지만 위로받지 못한 소란, 학교의 기대와 모두의 호의를 받고 있지만 외로운 다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수신 불능의 아빠와 무너진 가계로 뻑뻑한 상처를 입는 해인, 이유를 모른 채 친구들의 무리에서 잘려 나간 기억이 있는 은지.

 

어긋나는 관계의 화살표 속에서, 미묘해서 오히려 말 못 하는 감정의 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막막함 속에서 지금의 시간을 쌓아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평범한 날 속에 자잘한 생채기가 나면서도 저마다의 악력으로 가지를 쥐고 초록의 시간을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닿아 있다.

 

십 대 아이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작가는 그 또래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만드는 신문을 읽고, 청소년 서적이나 다큐멘터리들을 찾아 보며 소설 속 인물들을 성실하게 빚어 나갔다.

 

학교생활이 힘들어서, 친구 관계가 어려워서, 혹은 내가 내 마음에 안 들어서 답답하고 속상해하는, 그래서 가끔은 엎어져 울기도 하는 작고 여린 아이들의 사유와 감정을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과 남들도 다 겪는 일이야.” “네가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러니?”라는 무성의한 말들에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라고,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이 소설을 완성시켰다.

 

 

작가 조남주 소개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같은 해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으로 2017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서로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 『사하맨션과 소설집 그녀 이름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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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