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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797)] 키르케

[책을 읽읍시다 (1797)] 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 | 이은선 역 | 이봄 | 524| 17,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매들린 밀러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관점을 가진 작가로 평가받는다. 서양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매들린 밀러가 주목하는 인물과 서사는 확실히 지금 독자들의 관심사에 맞닿아 있다. 신들조차 예언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인물인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화자로 삼는다거나 3천 년 가까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서사시라는 장르를 여성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여성 서사시로 재발굴함으로써 고전에 현대적인 숨결을 불어넣는다. 

 

매들린 밀러는 서양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마녀, 키르케에 주목한다.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키르케는 그리스 신화에서 마법에 능한 마녀의 대명사로 간주되어 왔다. 지중해 외딴 섬인 아이아이에에 살며 커다란 베틀로 천을 짜거나, 마법을 부려 사람들을 사자나 늑대로 변신시키는 존재. 영웅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고, 1년 동안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존재, 키르케.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는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능력을 갖춘 여성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마녀라는 단어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정도의 능력을 손에 쥔 여성에게 쓰인다. 그런 이유로 최초의 마녀키르케에 매료된 매들린 밀러는 처음부터 여성 서사시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소설 키르케집필에 들어갔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도 키르케는 이미 자신만의 서사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예지력과 마법을 가진 능력자이며, 그 능력으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게 돕는다. 조카딸 메데이아의 죄를 씻어주기도 하며, 나중에 메데이아가 이복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녀를 자신의 섬에서 내쫒는 성정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키르케는 여성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키르케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성장한다.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는 키르케가 가장 처음 만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상대로 등장한다.

 

키르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이자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외손녀이다. 다이달로스를 잡아둔 크레타 왕 미노스의 부인 파시파에가 키르케의 여동생이다. 파시파에의 딸이자 테세우스에게 배신당하고 디오니소스의 신부가 되는 아리아드네는 조카딸이다. 황금양털을 갖고 있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가 남동생이다. 아이에테스의 딸로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돕는 메데이아 역시 조카딸이다. 누구를 중심으로 계보를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는 여성서사에서 종종 보이는 관점이다.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것이다. 매들린 밀러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는 마법을 써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마녀이며 극복해야 할 존재이지만, 소설 키르케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 헤르메스, 다이달로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는다. 이는 키르케이기에 가능한 뒤집기이다.

 

매들린 밀러는 가 세상과 관계맺는 방식을 남성세계의 방식과 달리함으로써 소설 키르케를 명작으로 만들었다. 신은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며, 그 댓가로 미션수행을 요구하는 존재다. 인간 역시 신에게 선택받기 위해 기꺼이 고난의 행군에 합류하며 타인의 피와 자신의 땀을 제물로 바치는 존재다. 고결한 미션수행,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필연적 고난, 피와 땀으로 이뤄낸 성공, 그렇게 얻어지는 명예와 불멸의 생, 이것이 기존 신들의 질서에서 말하는 진정한 삶이다.

 

여신이자 마녀인 키르케는 댓가 없이 상대방을 돕는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할 필요가 없는 다른 신들과 달리 조금씩 성장한다. 키르케의 성장은 대단히 극적이지 않지만, 대단히 아름답다. 성장할 필요가 없는 존재인 신의 성장이기에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의 삶도 이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마저 품게 한다. 이렇듯 소설 키르케는 그리스 신화가 우리에게 말해왔던 진정한 삶에 대한 정의를 뒤집는다.

 

 

작가 매들린 밀러 소개

 

1978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했고 브라운대학교에서 고전학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고등학생들에게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셰익스피어를 가르쳐왔으며, 예일 연극영화대학원에서 고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수업을 받았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10년 동안 집필한 첫 장편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첫 작품으로 2012년 여성 작가를 대상으로 수여하는 영국 유수의 문학상인 여성 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매들린 밀러는 전업작가가 되어 두번째 장편소설 키르케를 집필했다. 출간 전부터 런던도서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2019년에 여성 문학상최종후보에 올랐다. 22개국에 소개된 이 책은 현재 영화 [뮬란][아바타] 후속편을 준비중인 시나리오 작가 릭 재퍼와 아만다 실버 부부에 의해 스트리밍서비스 HBO MAX에서 8부작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매들린 밀러는 키르케가 서양 문학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마녀라는 점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사회가 여자에게 허용해준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여성에게 주어지는 단어가 마녀인데, 키르케가 바로 그 경우라고 본 작가는 소설 키르케를 통해 남성 영웅들이 당연하게 갖고 있는 능력을 여성에게도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가 지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매들린 밀러는 오디세이아가 고향을 동경하는 지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한다. 작가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키르케를 투영하며 이렇게 말한다. “키르케 역시 고향을 동경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와는 달랐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기다리는 고향 이타케 같은 곳이 없다. 키르케는 그런 고향을 발견해야만 하고, 직접 개척해야 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자기에게 적대적인 세계에 반항하면서까지.” 매들린 밀러가 처음부터 여성 대서사시를 염두에 두고 쓴 이 소설은, 풍부한 디테일과 서정시처럼 아름다운 언어, 숨이 막히도록 탄탄한 스토리로 다시 한번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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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