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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889)] 영원한 유산

[책을 읽읍시다 (1889)] 영원한 유산

심윤경 저 | 문학동네 | 284| 14,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작품에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작가, 자신의 작품을 치열하게 경신해나가는 작가 심윤경의 신작 장편소설. 새해 첫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기로 발견된 소녀의 혹독한 성장담 설이를 펴낸 후 근 2년 만이다. 

 

신작 영원한 유산은 작가의 오래된 앨범 속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와 할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 속 낯선 건물, 유럽식 뾰족탑과 흰 톱니모양 테두리를 두른 창문이 인상적인, 크고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말이다.

 

지금은 사라진 그 건물은 알고 보니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은 것으로, 그의 아호를 따 벽수산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해방 후 국유화되어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줄여서 언커크(UNCURK)라 불린 곳의 본부로 쓰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1973년 봄 철거되어 놀랍도록 빠르게 잊혔다.

 

배경은 해방 후 20년이 지난 1966, 주무대는 옥인동 벽수산장이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아들 이해동은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언커크UNCURK)에서 통역 비서로 일하고 있다.

 

현재 언커크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대저택 벽수산장은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지은 별장이었다. 달러로 월급을 받으며 나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생각하는 소시민 청년 이해동 앞에 어느 날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 나타난다.

 

윤원섭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뒤 국제기구로 쓰이는 벽수산장으로 돌아와 아무도 몰랐던 비밀의 방을 찾아내며 언커크에 파견 온 외교관들에게 저택의 옛 주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킨다.

 

기세등등해진 윤원섭의 뻔뻔한 말들을 통역하며 이해동의 삶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이해동에게는 적산(敵産)이며 윤원섭에게는 유산(遺産)인 저택 벽수산장이 그 모든 것을 굽어보는 가운데, 상반된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두 인물의 전혀 다른 삶의 행보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해 식목일, 벽수산장에서 기묘한 불길이 치솟는데……

 

희대의 친일파가 남긴 대저택과 그것에 빌붙어 다시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그의 막내딸, 한없이 뻔뻔하고 그것에 당당한 적에 대한 미움과 부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저택 사이에 선 소시민 청년 해동. 작가는 벽수산장과 언커크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 삼고 그 위에 윤원섭과 이해동 가상의 두 인물을 내세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로 우리를 이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이분법의 엄혹한 시절을 지나, 양쪽이 얽히고설켜 기묘한 회색지대가 생성되는 시기란 역사 속에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인물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어렵게 선택한 길들이 있다.

 

친일파와 왕가, 국제기구와 대저택 같은 거창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을 이리저리 떠밀어대는 이념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정직과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이다라고 작가가 밝힌 소회는 그래서 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조망하며 잘 담아내는 장편이 있는가 하면, 이 작품처럼 누군가의 인생에서 아주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 담아내는 좋은 장편도 있다.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 맥락 속에서 빛나기 시작할 때, 우리가 소설을 읽는 기쁨이 거기 있을 것이다. 인생의 불가해함을 말하는 것은 그토록 아름답고 슬픈 것이고, 그것이 소설의 시간이다.

 

 

작가 심윤경 소개

 

1972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 후 얼마간의 직장생활을 거쳤으며, 199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2년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달의 제단으로 제6회 무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서라벌 사람들』 『사랑이 달리다』 『사랑이 채우다, 동화 화해하기 보고서등을 펴냈다. 설이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공 동구와 세상 아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쓴 작가의 두 번째 성장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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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