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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050)] 노을에 묻다

[책을 읽읍시다 (2050)] 노을에 묻다

정낙추 저 | 삶창(삶이보이는창) | 312 | 1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정낙추의 소설은 현실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하지만 움직임의 말초에 반응하기 보다는 그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동시에 정낙추의 소설은 움직이는 현실에 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하지 않고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현재 상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맥락이 살아 있는 관점을 시종 유지한다.

 

예를 들면 사람의 결에서, 주인공 박동길로 하여금 두어 시간 동안 넋 놓고” “세상 강의를 듣게 했던 김 선생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촛불항쟁이 한창 중인 서울시청 광장에서 조우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는 태극기부대가 되어 있었다. 박동길은 이 곤혹스러운 만남을 통해 김 선생과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면서 김 선생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을 감지해내고 비로소 김 선생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연민마저 느낀다.

 

 노란 종이배에서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선재의 주변 이야기를 차츰 넓혀 가면서 선재가 노란 종이배를 바다에 띄우려 하는 마음의 정체를 찾아간다. 선재는 자기가 만든 노란 종이배를 타고 형이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바다에 종이배를 띄우는데, 선재의 형인 명재 “2014 4 16, 오전 11에 침몰한 세월호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설로서는 범상하기까지 한 이 장면 이후로 선재의 종이배 접기의 원인이 작품 수면 위로 급부상하면서 작품에 비극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형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선재의 행동을 통해서 더욱 도드라진다. 다른 편에 선재의 할머니 현옥이 있는데, 당연히 현옥은 바다에서 사라진 손주 명재의 현실을 알기에 선재의 기다림마저 고통스럽게 겪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작품 말미에서 작가는 노을에 물들기 시작하는 바다로 가는 두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선재야, 이제 집에 갈까?”

. 할머니, 내일은 배가 바다로 나갈 거야.”

현옥과 선재가 바다를 등지고 제방에 올라섰다. 희망과 절망의 동행이다. 노을이 두 그림자를 점점 길게 키웠다. 선재가 형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번째 가을이 깊어갔다.

―「노란 종이배 

 

이 작품집에서 노을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키는 작품으로는 노란 종이배와 표제작인 노을에 묻다가 있다. 여기서 노을은 공히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간대, 정확하게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카이로스(Kairos)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노을을 통해 주인공들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뜻이 아니다. 절망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새로운 한 발을 힘겹게 내딛는 지점의 배경을 작가는 노을로 삼는 것이다.

 

노란 종이배 노을에 묻다가 다소 서정적인 작품이라면 말코 엄마 사람의 결」 「유령」 「피어라 돈꽃」 「피었다 돈꽃은 리얼리즘의 규율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말코 엄마는 주목을 요하는 작품인데, 오늘날 거의 찾기 어려운 품격 있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이 현실을 반영한다면서 잃어버린 일종의 영웅 캐릭터를 작가는 말코 엄마에서 그리고 있다. “말코 엄마는 두 가지 사실과 대비되며 그 품격이 부각된다. 한 가지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평생 난봉으로 알뜰히 탕진한 아버지의 마지막 여자였다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섭렵한 여자 중 가장 못 생긴 여자였다는 것.

 

하지만 말코 엄마 음식 솜씨가 좋고 장사 수완이 뀌어난 여자였다.” 거기다가 장구 장단과 소리는 읍내에까지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결국 말코 엄마 인물 하나 빼고는 버릴 게 없는 여자인 것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주인공에게 보이는 마음을 주인공은 이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끝내 거부하고 만다.

 

그런데 어느 날, ‘말코 엄마 삼거리 주막의 세간을 그대로 놔둔 채 홀연히 몸만 빠져 나갔다. 아버지는 말코가 내 재산과 골을 다 빼먹고 도망쳤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면서 폐인이 되어갔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 하지만 나중에 반전에 해당되는 비밀이 드러난다.

 

말코 엄마가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려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우는 가세의 일부를 외삼촌에게 맡겨놓음으로써 주인공의 앞날을 예비한 것으로 암시된다. 끝내 주인공은 어쩌면 말코는 어린 시절 내 앞날을 유일하게 걱정해준 엄마 비슷한 여자였는지 모른다라고 마음을 돌리게 된다. 이는 경제적 부와 언론을 독점한 가부장들의 세계에서 미래의 씨앗을 준비한 건 바로 여성이었다는 적극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의 결」 「유령」 「피어라 돈꽃」 「피었다 돈꽃은 일종의 세태 소설인데, 일상적인 세태를 다룬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현실을 철저하게 지역적 관점에서 고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급변하는 현실로 인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불구가 지역 사회의 언론과 정치 현실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에 해당될 것이다.

 

사람의 결 김 선생과는 조금 다르게 유령에서 김현중은 아무 실력도 없이 진보 언론을 시작해놓고 여러 사람을 실망시키다 못해 지역의 토호들과 한편이 된다. 피어라 돈꽃 피었다 돈꽃은 연작소설로 읽힌다. 두 작품에서는 지역 정치권이 중앙 정치권의 구태를 복제, 반복하는 경향을 약간은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 정낙추 소개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다. 1989년부터 [흙빛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그 남자의 손(애지) 미움의 힘(천년의시작), 소설집 복자는 울지 않았다(삶창) 등을 출간했다. 현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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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