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103)] 빛을 걷으면 빛

[책을 읽읍시다 (2103)] 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저 | 문학동네 | 428 | 15,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신예 작가 성해나의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소설집의 문을 여는 수록작 언두에서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묵인하는 엄마를 보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화면을 가볍게 밀어 거절할 수 있는 관계”(9~10)만을 찾던 는 데이팅 앱에서 만난 도호와 내밀한 가정사까지 공유하게 된다.

 

도호는 농인인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동안 많은 것을 희생하며 지내왔다고 말하고, ‘는 그런 도호를 함부로 동정하지 않으려”, “‘난 다 이해해’ ‘괜찮아 따위의 무책임한 말을 뱉지 않으려”(13) ‘하게 굴지만 내심으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도호네의 생활이었고 사정”(28)일 뿐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도호네의 생활은 가 도호와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의 생활이 되어간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들은 이제 이해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들이 되어 를 짓누르고, ‘ 너무 무거”(50)워진 그 무게를 끝내 외면할 수밖에 없다.

 

OK, Boomer에서 전교조 소속의 진보적 교사이자 젊은이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고 자부하는 는 대학원에 다니다 음악을 시작한 아들이 밴드 멤버와 집을 방문해오면서 그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게 된다. ‘베이비 부머’, 586 세대인 의 눈에 ‘MZ 세대인 그들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점투성이이나 는 그런 그들을 너그러이 이해해보려 한다.

 

하지만 베지테리언이라며 고기에 치즈까지 뺀 피자를 먹는 것이나 웃어른 앞에서 통성명조차 않고 제 할일만 하는 모습은 그렇다 쳐도,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대표하는 전교조 상패를 함부로 다루는 모습만은 참을 수 없었던 는 결국 그들에게 집을 나가라고 완고히 말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떠나간 뒤 가 냉장고에 있던 고기를 몽땅 꺼내서 구워먹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한편 일말의 서늘함을 남겨놓는다.

 

OK, Boomer가 세대의 경계를 그려냈다면 괸당은 소속, 즉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주에 사는 는 북카자흐스탄에서 관광 온 고려인 재종숙 부부를 반나절 동안 가이드하기로 한다. 촌수로 따지자면 남이나 다름없지만 아버지는 그들 또한 괸당이니 잘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집성촌이 발달한 제주 특유의 문화인 괸당은 끈끈하고 촘촘하게 결속된 친인척 관계를 뜻하는데, 실제로 의 괸당들은 고려인 강제이주와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아픔을 매개로 재종숙 부부와 정을 나누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재종숙 부부가 제 부친의 뼈를 고향땅인 제주에 묻고자 노동 비자를 얻으러 왔다고 고백함과 동시에 괸당들은 그들을 괸당의 테두리 너머로 배척한다.

 

는 자신이 그러한 괸당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재종숙 부부를 향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괸당들의 태도에 덩달아 죄책감을 느낀다. 여기에 제주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이자 여성으로서 과거 당숙모가 받아야 했던 핍박이 겹쳐 그려지며, 마주보기의 실패는 차이와 경계에 따른 차별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앞선 작품들이 오해와 외면을 낳는 경계 자체의 완고함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당춘」 「오즈」 「화양극장은 인물들이 경계를 넘어서서 마침내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을 조명한다.

 

당춘에서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십대 청년  헌진은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유튜브 영상 편집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영식 삼촌의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진천으로 향한다.

 

처음에 이들은 청년과 노인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꿈꾸는 삼촌의 이상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기지만, 죽은 줄 알았던 땅속에서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있던 생명을 찾아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실패할 용기를 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며 어쩌면 자신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해나의 소설에는 누군가를 함부로 이해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다정하고 품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작가의 당선 소감이 고스란히 묻어난 듯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서로를 올곧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인물들이 있다. 서로 다른 세대와 소속, 신체적·정신적 차이, 나아가 자신과 타인이라는 근본적인 경계에도 불구하고 저 너머의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은 그 등불 같은 믿음을 품고 길을 나선다.

 

 

작가 성해나 소개

 

2019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오즈로 당선되며 등단. 글을 쓸 때마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다. 그것이 좋아 글쓰기를 시작했고,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깊이 쓰고, 신중히 고치고 싶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