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54)] 알레포 코덱스
마티 프리드먼 저 | 김지현 역 | 글로세움 | 432쪽 | 18,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종교의 수호자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여기는 성물. 그 성물은 항상 지키는 자와 파괴하는 자가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성경 필사본인 알레포 코덱스는 구약성경을 율법으로 추종하는 유대인 최고의 성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알레포 코덱스가 성물을 지켜야 하는 수호자들의 욕심과 탐욕에 의해 찢겨져 나가고 훼손됐으며 이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 거짓과 위선, 음모로 감추어져 있었다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성경 필사본의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어둡고 추한 여정을 담은 책 『알레포 코덱스』는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너무나 위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경외를 받았고 그 위대함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넣고자 갈망했던 알레포 코덱스는 인간의 탐욕과 음모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채 천 년을 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전쟁과 종교로 얽힌 혼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위대한 성서를 둘러싼 탐욕과 음모의 미스터리 실화
천 년 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성경 필사본이 완성됐다. 역사적 유물이자 뛰어난 예술품으로 칭송받는 책 ‘알레포 코덱스’가 바로 그것이다. 구약성경의 핵심이 되는 모세 5경, 토라와 주석을 함께 기록한 이 양피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필사본이다. 또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으로 삼기 위해 만든 단 한 권의 율법서이다. 유대인들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이 책을 가장 귀한 책이라는 의미를 담아 ‘왕관’이라고 불렀다. 예루살렘 근처 작은 마을에서 탄생한 알레포 코덱스는 이후 십자군과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서도 대를 이으며 헌신한 수호자들의 보호 아래 무사히 천 년을 지내왔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이 귀중한 필사본은 다시금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14세기 이후 시리아의 작은 마을 알레포에서 보관되던 이 책은 1947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반대하는 아랍인들이 일으킨 폭동 중에 불에 타 소실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수호자들은 비밀리에 이 책을 보관하여 왔고 10년 뒤 시리아 알레포 무슬림들이 유대인들을 탄압하는 혼란한 정세 속에 책의 안전을 염려한 유대인 원로들은 이 필사본을 시리아에서 이스라엘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알레포에서 예루살렘의 유대 공동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위대한 책의 비극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면서 이 책은 찢겨져 나가고 훼손됐으며 인간의 탐욕과 음모로 얼룩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자리 잡은 이 필사본은 절반에 가까운 페이지가 찢겨져 나갔고, 남아 있는 부분도 훼손됐다. 이 책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오히려 방치해 그 존엄성이 파괴하고 만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인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알레포 코덱스가 심각하게 파손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한 음모에 불과하다.
이 책은 필사본이 시리아에서 이스라엘까지 오게 된 경로와 그 과정에서 귀중한 보물의 많은 부분이 사라진 경위를 매듭을 풀듯, 미로를 헤쳐 나가듯 실마리를 쫓아간다. 전직 비밀 요원과 성직자, 골동품 수집가를 비롯해 정부의 요직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엮어내는 장대한 이야기를 통해 소설보다 더 허구 같은 놀라운 진실을 만날 수 있다.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알레포 코덱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다
중세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코덱스를 보고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1세기 말 성지 탈환을 외치며 예루살렘에 쳐들어온 십자군이 유대인 회당을 약탈하면서 알레포 코덱스는 다른 유대인의 보물과 함께 십자군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가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필사본을 되찾은 뒤에야 알레포 코덱스는 다시 유대인들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되었다. 뒤이어 이 책은 위대한 사상가인 마이모니데스에게 전해져 최고의 율법총서 『미쉬네 토라』를 완성하는 기초가 됐다. 이후 대를 이어 알레포 코덱스를 관리하던 마이모니데스의 후손이 14세기 경 이집트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시리아의 알레포로 떠나면서 이 귀중한 책을 함께 가져갔다. 그 후로 600년간 필사본은 알레포 유대인 회당에서 보관되었다. 이 책이 알레포 코덱스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정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승인한 것이다. 분노한 아랍인들은 유대인의 상점과 회당을 부수고 약탈했다. 얼마 후 이 소동으로 알레포 코덱스가 불에 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사실은 회당 관리인에 의해 무사히 구해져 공동체의 원로들이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시리아 정부를 비롯해 이 책을 탐내는 이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수호자들이 거짓 소문을 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알레포 유대인 공동체는 점점 붕괴됐다.
유대인 원로들은 이 책을 더 이상 시리아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필사본을 이스라엘에 정착한 알레포 유대인들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 중요한 책임을 맡은 알레포 출신의 치즈 상인은 명령을 어기고 알레포 코덱스를 이스라엘 정부에 건네고 만다. 이후 알레포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보물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대통령이던 벤즈비는 이 훌륭한 보물을 국가의 유물로 삼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끈질기게 알레포 코덱스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사본이 시리아에서 밀반출되자 권력을 총동원해 이 책을 추적한다. 결국 치즈 상인은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욕심과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필사본을 이스라엘 정부에 넘기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귀중한 책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시리아를 떠나 대통령의 연구소에 보관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책은 찢겨지고 훼손되었다. 과연 이 성스러운 보물을 훔친 이는 누구인가?
누가 성물에 손을 댔는가?
사라진 낙장을 둘러싼 추악한 진실을 밝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위대한 필사본이 오랜 유랑을 끝내고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안타깝게도 아랍인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없어졌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지난 50년 동안 정설로 알려진 이야기였다. 마티 프리드먼은 터키에서 활동한 국가 요원부터 필사본을 보관한 연구소의 소장에 이르기까지 알레포 코덱스가 거쳐 간 사람들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추악한 진실을 발견했다. 바로 알레포 코덱스가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이 일으킨 폭동 직후 알레포 코덱스는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후 이 책은 계속해서 유대인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이스라엘로 오는 과정에서 책은 몇 페이지씩, 혹은 뭉텅이로 뜯겨나가 결국 절반에 가까운 낙장이 사라졌다. 용의자들은 이스라엘의 대통령, 이민국의 수장, 국가 비밀요원과 대통령이 설립한 연구소의 소장 같은 권력자들이었다.
중세시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집트로, 다시 시리아로 건너갔던 알레포 코덱스는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보물의 귀환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협잡꾼들의 갈취라 말한다. 『알레포 코덱스』는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어리석은 과오와 그로 인해 어둠 속에 묻혀버린 위대한 책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 마티 프리드먼 소개
마티 프리드먼은 기자로 일하면서 레바논에서 모로코, 카이로, 모스코바, 워싱턴 D.C.에 이르는 많은 곳을 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분쟁 지역과 코카서스 지방까지 가보았다. 연합통신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했으며,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의 종교와 고고학에 정통하다. <에루살렘 리포트>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다. 현재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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