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69)] 정념론
르네 데카르트 저 | 김선영 역 | 문예출판사 | 248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영혼과 신체를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근대적인 사유는 현대에 접어들어 인간 본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역사 속에서 나타난 인간의 야만성과 부도덕함을 보았을 때 데카르트가 주장한 것처럼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인정할 수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성은 무엇일까? 바로 그 해답을 『정념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철학적이자 과학적인 탐구
『방법서설』과 『성찰』은 각기 서울대와 연세대의 권장도서로 추천되고 대학 논술 문제의 텍스트로 사용될 만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유의 힘을 늘리는 데 도움을 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방법서설』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성찰』은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의 확실성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찰』에 담긴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러한 방법적 회의의 극단에서 도출된 가장 명석 판명한 진리다.
이처럼 이성, 사유, 인식과 같은 정신적 원리를 탐구했던 앞의 두 저서와는 달리 『정념론』은 데카르트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법한 인간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데카르트가 일평생 학문의 과정에서 고수했던 이원론적 입장, 즉 몸과 영혼을 독립된 실체로서 보는 관점이 이 저서에서는 몸과 영혼의 화합이라는 관점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데카르트의 학문적 전제가 바뀐 것은 데카르트를 사숙했던 보헤미아의 왕녀 엘리자베스가 던진 단 하나의 질문 때문이었다.
“생각하는 실체인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몸의 정기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에 데카르트는 몸과 영혼의 화합에 의해 발생하는 것, 다시 말해 몸을 원인으로 하지만 영혼 안에서 야기되는 정념(情念, Passion)에 대한 고찰로 그의 말년을 채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찰이 그가 죽기 전 최후로 남긴 저작인 『정념론』에 담겨 있다.
데카르트 도덕률의 완성
이 책은 영혼에 덮쳐오는 인간의 감정을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밝혀내며, 그 주요 감정을 경이ㆍ사랑ㆍ미움ㆍ욕망ㆍ기쁨ㆍ슬픔으로 요약한 뒤, 질투ㆍ존경ㆍ수치ㆍ경멸과 같이 이로 인해 파생되는 특수한 감정들을 규정한다. 이러한 정념들에 수동적으로 지배받지 않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몸이 아닌 영혼과 연관되는 자유의지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 그로써 우리가 덕이라 부르는 것을 따르는 사람이다.
데카르트는 이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념을 관대함이라 지칭하며 이 같은 사람을 스스로 존경해도 마땅한 사람이라 판단한다. 요컨대 그는 인간의 감정과 이성의 화합을 통해 도덕적 주체의 본성을 규정함으로써,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우위를 전제로 삼았던 자신의 철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그의 철학 한 평생에 있어 도덕, 아름다움, 종교와 같이 인간의 감정적 영역과 결부된 학문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데카르트 스스로는 굉장히 도덕적이고 건전한 감정을 지니고 삶을 이끌어갔던 사람이다. 그는 1645년 5월경 엘리자베스 왕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게 닥쳐오는 일들을 비스듬히 봄으로써 그것들이 나에게 가장 흡족한 것이라고 여기며, 또 내 으뜸가는 만족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늘 가진 것이 타고난 듯싶었던 이 병약함의 상태를 물러가게 한 원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이처럼 일생을 살아가며 닥쳐올 수 있는 불안전한 감정과 불행한 일들을 신중히 물리치고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가장 적합한 결단을 내리도록 스스로에게 도덕적인 강령을 내린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정념론』은 이런 데카르트 스스로가 지녔던 도덕률이 어떻게 도출됐다. 그리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작가 르네 데카르트 소개
신교도와 구교도의 갈등이 빚어졌던 16세기 후반 1596년 3월31일,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지명을 바꾼 프랑스 중서부 투렌의 라 에이에서 조아킴 데카르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데카르트의 아버지는 브르타뉴의 고등법원 법관이었고 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이었지만, 생후 일 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고전어, 수사학, 철학, 물리 등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우주는 무한”이라고 말한 브루노가 화형당하는 한편 갈릴레이가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와 근대과학의 희미한 서막이 공존하는 때였다.
데카르트는 프아티에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세상이라는 큰 책’을 배우고자 여행의 길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놀라운 학문의 기초를 직관하도록 한 세 개의 꿈을 꾸고 나서 지혜를 추구하며 보편학을 정립할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통해 이를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서 파리로 향한다. 이어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델란드군에 입대했으며 다시 이를 떠나 신교도의 군대에 지원했다. 이 시기에 물리학을 연구하던 수학자 이사크 베크만을 만나 공동 연구에 몰두하고 『보편수학』의 구상에 이른다.
1620년 군대를 떠나 독일, 네델란드,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다가 1625년 파리 체재기에는 기하광학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 다시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온 데카르트는 처음 9개월간은 형이상학의 짧은 논문의 집필에 종사하다가 1629년 3월 제자인 네레리로부터 이탈리아에서 관찰된 『환일현상』의 해명을 부탁받고 도중에 자연연구로 방향을 전환. 모든 자연학을 포괄하는 『우주론』의 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완성단계에서 갈릴레이의 유죄 판결로 인해 출간을 보류하고(1644년 출간), 대신 1637년『방법서설』및 이를 토대로 하는『굴절 광학』『기상학』『기하학』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전통을 접하고 플라톤주의와 병존하게 된다. 원자론적 세계를 지성의 직관에 의해 실재로서 직접적으로 파악하려는 요구를 가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원리가 도출되기에 이른다. 1641년『성찰』에 이어, 1644년에는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한『철학의 원리』를 출간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칼뱅파 신학자들의 박해로 학문적 자유가 위협받던 네델란드를 떠나게 되었다.
1643년 데카르트를 사숙(私淑)했던 엘리자베스 왕녀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2년 후 그녀의 요청으로 『정념론』을 집필하기 시작해 1649년 책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평소에 몸이 약해 아침 늦게까지 취침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매일 이른 아침 만나 대화를 하길 요청하는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로 인해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겨 이듬해 폐렴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끊임없는 의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명증한 진리를 모든 학문의 시작으로 보았다. 사유의 확신자를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근대적인 철학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읍시다 (271)] 정글만리(전 3권) (0) | 2013.06.24 |
---|---|
[책을 읽읍시다 (270)] 흑사의 섬 (0) | 2013.06.21 |
[책을 읽읍시다 (268)] 세일럼의 마녀들: 1692년 마녀사냥의 비밀 (0) | 2013.06.19 |
[책을 읽읍시다 (267)] 사악한 늑대 (0) | 2013.06.18 |
[책을 읽읍시다 (265)] 용서라는 고통 : 상처의 황무지에서 싹틔우는 한 줄기 희망 (0) | 2013.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