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325)] 헌팅



헌팅

저자
조영아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3-09-0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조영아의 세 번째 장편소설! 문명...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325)] 헌팅

조영아 저 | 한겨레출판 | 336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조영아가 오랜만에 세 번째 장편소설 『헌팅』으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산속에서 야생 소년으로 자란 시우가 다큐멘터리 감독 린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인간이 지닌 기록의 욕망을 샅샅이 파헤치면서 개인의 욕망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기록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문명’으로 불편한 것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세상을 환기시킨다.

 

『헌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산골 생활을 하는 소녀를 도시로 데려와 불행해진 실제 사건 기사를 접한 뒤, 문명의 공신인 문자로 ’기록’하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그 기록 뒤에 숨은 기록하는 자의 욕망을 파헤치는 이 소설을 썼다.

 

제목 ‘헌팅’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사전적 의미의 ‘사냥’과 영상 제작 분야에서 말하는 ‘촬영 장소 물색’이다. 소설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한다. 촬영을 위해 ‘숲’으로 들어간 헌팅의 시도로 다큐멘터리 감독 린은 야생 소년 시우를 만나고 그 후 시우가 도시로 나와 문명에 적응해나가는 일상까지 담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 소설 안에서 시우가 토끼를 사냥하는 장면은 시우의 성장을 의미함과 동시에, 다큐멘터리라는 명분하에 벌어지는 린의 연출이 가져오는 결과 또한 사전적 의미의 ‘사냥’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사냥이 익숙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뛰어난 관찰, 섬세한 묘사, 깊이 있는 상상의 힘을 지닌 작가 조영아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 힘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시우와 린이 처음 만난 산속에서의 생활은 영상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며, 숲에서 도시로 첫 발을 내디딘 시우의 시선을 따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를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린은 평소 알고 지내던 오 신부의 제보를 받고 숲으로 향했다. 오 신부는 십여 년 전 경비행기 사고 기사를 보여주며 사고 이면의 사실을 확인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헌팅은 시작됐다. 설마 했던 깊은 숲에서 노파와 시우를 만난 린의 마음속에는 이미 녹화를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스스로 완벽한 헌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린이 경험하는 야생은 들쥐 고기, 뱀 고기, 토끼 고기를 먹고 산에서 나물을 채취하고 가까운 샘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뿐만 아니었다. ‘키’와 ‘나이’의 정의가 뒤바뀌고 ‘맛있다’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들쥐 발톱 따위가 떠오르지 않는다’로, 린이 규정하던 언어의 의미까지 바뀌었다.

 

모든 것이 환하던 도시와 달리, 시우가 살고 있는 움막에서는 ‘모든 사물은 그 실루엣만으로도 훌륭히 존재’하며 빛으로 환하게 살펴보는 일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었다. 휴대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린은 시우처럼 자작나무 숲을 향해 맨발로 달린다. 그 과정에서 온몸으로 들어오는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낀다. 그리고 이해한다. ‘키’와 ‘나이’의 개념이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음을.

 

노파의 죽음 이후, 시우를 데리고 도시로 돌아온 린은 숲 생활은 까마득히 잊은 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처음에는 시우의 정체와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기록을 시작했던 린이었지만 어느새 그 욕망은 끝없이 커져만 가고 모든 이의 불행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매일 아침 맨발로 자작나무 숲을 향해 달리는 시우. 시우는 자작나무에 발꿈치를 대고 ‘나이’를 재는 자신만의 아침 의식이 좋았다. 지천으로 널린 자작나무 잎사귀를 뜯어 이를 닦았다. 평생 숲을 벗어나 본 적 없던 시우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 이곳을 떠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시우는 린과 함께 도시로 삶을 옮긴다. 도시의 모든 것이 편한 린과 달리, 시우는 눈을 뜨는 게 두려울 만큼 낯설고 위협적인 곳이었다. 린에게 숲 생활이 그러했듯이, 시우에게는 도시가 야만이었다. 린의 다큐멘터리 <사냥>이 인기리에 방영이 된 후, 도시의 대중들은 시우가 호기심과 소비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다. 린은 시우를 종이인형처럼 다뤘고, 시종일관 시우에게서 카메라를 떼놓지 않았다. 시우는 린에게 반항도 해보지만 린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린에 의해 만들어진 시우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의 삶의 모습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또한 세상이라는 거대한 세트 안에서 제공되는 자본의 서비스를 소비하며 ‘구성’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처럼 『헌팅』은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를 시우의 눈을 통해 낯설게 보는 진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대중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시우라는 인물에 열광하다가도 시우가 그 기대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만 하면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붓는다. 작가는 문명인들이 더욱 야만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는 상황을 신랄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빌딩 숲 안에서 스마트한 기계로 포박당한 현대인들에게 호기심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는 한 소년의 비극적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작가 조영아 소개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네킹 24호〉로 등단했고, 2006년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를 썼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