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322)]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저 | 윤순식 역 | 부북스(BooBooks) | 156쪽 | 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주인공 아쉔바흐는 시민과 예술가의 대립을 극복하고 내면적 조화를 이룬 고귀하고 근엄한 예술가였다. 아쉔바흐의 정열적이고 엄격한 외모는 동성애적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모습을 닮고 있다.
무대는 대부분 주인공 아쉔바흐의 내면의 정신세계이다. 피로에 지친 작가 아쉔바흐가 우연히 뮌헨의 공동묘지에서 낯설고 기이한 남자를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 아쉔바흐는 그 낯선 남자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뮌헨을 떠나 어디론가 여행을 하고 싶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욕구와 열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성이 그것을 제어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는 자신이 과로했다고 생각하고 휴양차 남쪽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가 베네치아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지극히 괴상한 인물들은 수다스러운 선원, 베네치아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젊게 화장한 노인, 아쉔바흐를 리도로 태워가는 곤돌라 뱃사공, 아쉔바흐가 묵는 호텔 정원에서 공연하는 떠돌이 가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든 타치오?죽음의 사자(使者) 헤르메스나 죽음의 동반자를 상기시킨다.
타락의 씨앗은 베네치아에서 그를 사랑의 매혹으로 사로잡는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폴란드계 소년의 형상에 잠복해 있다. 그의 이름은 타치오이며 가족들과 함께 요양 겸 여행을 왔던 14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아름다운 소년 타치오를 쫓는 아쉔바흐는 사실상 죽음을 뒤쫓고 있는 것이다. 아쉔바흐는 타치오에게서 신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경탄하지만 반면에 그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 보게 된다. 아쉔바흐는 해변가에서 노는 타치오를 보며 또 타치오를 뒤쫓기도 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쓰는데 언어가 가져다주는 쾌감마저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주인공 아쉔바흐는 그저 타치오를 바라다보며 타치오가 베네치아를 떠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폴란드인 부모가 그를 데리고 가버린다면 아쉔바흐는 죽을 것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눈빛의 교환으로 제한된 완전히 플라톤적인 사랑의 마법은 그의 영혼을 매료시켜서 이제까지 쌓아온 삶의 엄격함을 파괴하고, 그를 온갖 의무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수십 년간 강철처럼 다져온 엄격한 원칙이 풀어지고, 욕정이 강해지고, 결국은 콜레라로 위협받는 베네치아에서 떠나라고 권고하는 이성조차 마비되어버린다. 해변가에서 발끝으로 젖은 모래에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타치오를 멀리서 바라보며 아쉔바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작품은 끝나고 있다.
작가 토마스 만 소개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98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985년에서 198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독일 여행 중 발병하여 취리히로 되돌아와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트리스탄」 「굶주린 사람들」 「글라디우스 다이」 「토니오 크뢰거」 「신동」 「벨중족의 혈통」 「피오렌차」 「대공 전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주인과 개」『마의 산』「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등이 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r』 『파우스트 박사』(1947), 『선택받은 사람』 「속은 여자」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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