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395)]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저자
조반니 베르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12-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탈리아 진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조반니 베르가의 최고 걸작 ...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395)]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조반니 베르가 저 | 김운찬 역 | 문학동네 | 384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작가, 조반니 베르가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베르가는 낭만주의풍의 소설이 유행하던 시기, 사실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의 삶을 오롯이 품어냄으로써 이탈리아 문학사에 ‘진실주의’라는 새 기점을 확립했다.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진실주의 문학의 정수라는 평을 받는 베르가의 대표작으로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던 한 가족의 몰락과 비극을 다룬다.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에서 영향을 받아 구상한 ‘패배자들’ 총서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주어진 신분과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 탓에 인간은 궁극적으로 운명에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만초니의 『약혼자들』에 비견되는 이탈리아 문학의 고전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이탈리아는 국가통일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격변의 시기였다. 여러 국가로 분열돼 있던 이탈리아는 1870년 완전한 통일을 이루면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는데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 문학에도 현실의 문제가 강하게 표출된다. 이로써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전통이 깨지고 ‘진실주의’라는 새 전통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진실주의는 도시보다는 농어촌을 주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나 가치 판단을 억제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실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진실주의 문학에서는 작가가 독자에게 사건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건이 진행되고 정서적인 반응들이 드러난다.

 

베르가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 산업화에서 소외된 시골 사람들이다. 그는 피상적인 감상주의를 벗어던지고 그들의 뿌리깊은 고통을 투명하게 비추어 문학과 현실을 밀착시켰다. 또한 화려한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고향 시칠리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활기와 생기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된 베르가는 그들의 일상과 언어를 고스란히 작품 속으로 옮겨옴으로써 삶의 진실에 다가서고자 했다.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19세기 후반 시칠리아 섬의 작은 어촌 ‘아치 트레차’를 배경으로 그곳에 뿌리박고 살아온 한 가족이 몰락해가는 수난사를 다룬다. 집과 배를 소유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던 말라볼리아가(家)의 가장 파드론 느토니는 어느 날 큰돈을 벌기 위해 고리대금업자한테서 콩을 외상으로 매입한다. 그러나 아들 바스티아나초와 콩을 싣고 출발한 배는 사나운 태풍에 침몰한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치열하게 삶을 꾸려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점점 더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과정은 좁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 당시의 혼란스럽던 역사적 상황으로 짜인 얼개 위에서 이루어진다.

 

‘패배자들’이라는 총서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소설이 달려가는 귀결점은 인간의 패배다. 더 편안한 삶을 향한 욕망을 불태우다 가족 모두를 불행으로 내모는 손자 느토니를 중심으로 패배의 이미지는 작품 깊숙이 깔려 있다. 부를 위해, 권력을 위해, 명예를 위해, 즉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타고난 신분과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의 본질적인 모순 탓에 결국은 깊은 바닷속으로 수몰되고 마는 것이다.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패배’에 대한 방대한 구상의 첫 단계로서 부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이 모든 것을 파국으로 내모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부르는 불행과 패배를 그린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베르가는 더 나아가 패배자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삶에 내재된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고자 했다. 궁극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을지 모르나 그러한 삶 속에 진실이 있음을 역설한다. 패배에 천착하기보다 패배가 뚫고 지나가는 삶의 전 과정을 통해 그 깊이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작가 조반니 베르가 소개

 

1840년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첫 소설 『사랑과 조국』을 썼으나 스승의 충고를 따라 출간하지 않았다. 1958년 카타니아 대학교의 법학부에 등록했으나 법률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문학에 매진하다 1862년 『산속의 카르보나리 당원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869년 고향을 떠나 당시 이탈리아의 수도였던 피렌체로 거주지를 옮겼다가, 1872년 밀라노에 정착하여 이십 년 동안 머물렀다.

 

초기에는 『에바』 『당당한 호랑이』 『에로스』 등 낭만주의풍의 소설을 썼으나, 화려한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오히려 진실된 삶의 가치를 찾아 시칠리아 하층민들의 일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후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을 배제한 채 민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진실주의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고, 주요 작품으로 「네다」 『시골의 삶』 『시골 이야기들』 등이 있다.

 

1878년부터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운명 앞에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제를 담은 총 다섯 권의 ‘패배자들’ 총서를 구상하여 삼 년 후 첫번째 작품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을 발표했다. 초라한 어촌 마을의 현실을 냉철하게 묘사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내비치는 이 소설은 베르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48년 비스콘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총서는 완성되지 못하고 두번째 작품 『마스트로 돈 제수알도』로 끝이 났지만 이 두 작품은 그의 문학 세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시골의 삶』에 실린 단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1884년 연극으로 공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893년 카타니아로 귀향한 후에는 글쓰기보다 농장을 돌보는 데 몰두하다 1922년 뇌혈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