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492)]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수전 스펜서 웬델‧브렛 위터 공저 | 정연희 역 | 문학동네 | 484쪽 | 14,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수전 스펜서-웬델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신문사와 법원을 오가며 지역 형사법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기사를 써서 〈팜비치 포스트〉에 실었고, 삼남매의 다툼을 해결하고 치다꺼리를 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평범하기만 했던 2009년의 그 여름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그녀는 왼손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앙상하고 파리했고, 손바닥에 힘줄이 선명했고, 뼈가 툭 불거져 있었다. 남편 존이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로부터 이 년,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료 예약과 검사를 거듭한 끝에, 2011년 6월 수전은 ALS 확진을 받았다.
LS 진단을 받은 이후 수전은 자신의 삶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운동선수인 루게릭은 ALS에 재능을 빼앗겼지만 자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몸은 쇠약해질지언정 재능만은 빼앗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글로 기록했다. 손가락에 키보드를 누를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아이패드로 글을 쓰다가, 얼마 후에는 터치스크린 위로 손이 미끄러져 결국 유일하게 힘을 줄 수 있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아이폰을 한 글자씩 두드려 글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감상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보고 웃었으면 좋겠다고, 삶을 기쁘게 바라보겠다는 목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써내려간 글을 기자로 일하던 〈팜비치 포스트〉에 기고했고 그 글이 출판사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이 책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가 탄생했다.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이미 전 세계로 판권이 팔려 22개국에서 그녀의 책이 번역 출간됐고 유니버설 픽처스 역시 시놉시스만을 보고 영화화 판권을 계약했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에서 수전은 ALS 환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옷을 혼자 입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그러니까 어떤 옷에는 어떤 속옷을 입어야 하는 것까지 남편에게 일일이 알려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혼자 뒤처리를 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런 일상을 기록하는 수전의 글에서 좌절이나 절망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녀는 빛나는 유머 감각과 낙천주의로 병에 걸린 삶을 보듬어나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아져버린 삶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고,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 역시 그중 하나다. 근육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ALS 환자이지만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겠다는 것,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 그것이 수전의 선택이었다.
수전은 가장 친한 친구와 오로라를 보러 유콘에 갔고, 신혼 때의 추억을 따라 남편과 부다페스트에 갔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려고 십대인 딸 머리나와 뉴욕에 있는 클라인펠드 웨딩숍에 갔다. 생모를 찾아 캘리포니아에, 생부의 가족을 만나러 키프로스에 갔다. 입양아였던 그녀는 생모와 생부의 가족을 만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병이 유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내 아이들은 내게서 많은 것을 물려받겠지만, 내 운명을 물려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세런디피티. ‘뜻밖의 기쁨 혹은 행운’을 의미하는 이 말을 수전은 자주 사용한다. ALS 진단을 받기 전, 시들어가는 손의 원인을 찾아 헤맬 때 생모가 나타난 것도 세런디피티, 곱은 손이 “아이폰을 놓는 완벽한 거치대가 되어주어 아이폰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세런디피티였다.
화장을 할 수 없게 되자 이십 년간 세상에 보여준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영구 화장을 하고, 휠체어를 타야 할 만큼 다리 근육이 망가지면 그동안 신지 못한 하이힐을 다시 신을 수 있을 거라 기뻐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수전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다.
그녀가 기쁘게 살아낸 이 일 년의 기록은 때로는 독자를 웃음 짓게 하고 때로는 독자의 마음을 울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쁘게 살아내겠다는 그녀의 의지,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그녀의 용기가 삶과 죽음에 대한 특별한 깨달음을 줄 것이다.
작가 소개
브렛 위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편집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듀이: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의 공저자이다. 그 외에도 『모뉴먼츠 맨』 『기적의 튜즈데이』 등의 책을 함께 썼다.
수전 스펜서-웬델
2011년 6월, 수전 스펜서-웬델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즉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마흔넷의 나이에 근육에 힘을 실어주는 신경이 파괴되는, 치료법도 치료약도 없는 병에 걸린 것이다. 이십 년 가까이 법원 담당 기자로 일하며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오던 그녀는, 이제 기자생활을 계속하기는커녕 일상생활조차 혼자서는 해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앉아서 절망하며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남아 있는 나날을 기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집 뒷마당에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오두막을 만들고,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유콘으로, 키프로스로, 헝가리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을, ALS 환자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기록해 이 책을 펴냈다.
손가락에 키보드를 누를 수 있는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기에,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아이폰 터치스크린을 한 글자씩 눌러 책을 완성했다. 슬픔과 절망보다는 삶의 기쁨과 낙천주의, 유머 감각이 넘치는 이 책은 출간되기 전부터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고, 유 니버설 픽처스에서 영화화를 결정했다.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 세계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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