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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541)]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8-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천명관은 그 이름 자체로서 힘이 넘치고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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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541)]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저 | 창비 | 221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천명관은 그 이름 자체로서 힘이 넘치고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희대의 이야기꾼’으로서 등단 이후 꾸준히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을 선보여왔다. 7년 만에 출간한 두번째 소설집이다. 풀리지 않는 인생, 고단한 밑바닥의 삶이 천명관 특유의 재치와 필치로 살아나는 여덟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전히 웃음이 나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이 턱, 막히는 먹먹한 감동을 얻게 되고 그 여운은 진하게 오래 남는다. 그사이 천명관의 유머에는 따뜻한 서정과 서글픈 인생에 대한 뜨거운 위로가 더해졌고, 통쾌한 문학적 ‘한방’은 더욱 강렬해졌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수면의 상태로 꿈속을 헤매거나, 현실을 악몽처럼 살아가거나, 혹독한 현실과 꿈의 괴리를 메우지 못해 좌절한다. 불면 혹은 절망의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나약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다름 아닌 투약·복용이다. 밥을 먹고 나면 소화제를 먹고,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머리가 지끈거려 진통제를 먹고, 섹스를 위해 비아그라까지 먹어야 하는 ‘화학적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비타민을 과다복용하기도 한다(「파충류의 밤」).


호르몬 앞에서 무력한 인간은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신경안정제에 의지해 몽롱한 상태로 운전을 하고(「핑크」), ‘노가다’들은 소주를 약 삼아 마시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이 보여주는 아픈 존재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다보면 어느새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잘 처방된 강장제를 들이켠 것처럼 청량한 위로가 전해진다.


「전원교향곡」은 젊은 귀농 부부가 꿈꾸던 시골에서의 삶이 유쾌하고 흥겹게 완주되지 못하고 파탄 나는 모습을 서글프게 그리고 있다. 한때 아름다운 그늘을 드리워주던 ‘포도나무 아래’엔 감당할 수 없는 빚과 더불어 ‘실패한 꿈의 잔해’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불바다로 변하게 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장엄하고 숭고하게 끝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묘한 화성을 이루며 감동을 자아낸다.


비극의 원류를 알 수 없어도 삶이 지속되듯 인생의 목적지가 없어도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고, 그 과정에는 대부분 필연 같은 우연이 작용한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서처럼 인생은 예기치 않게 손에 들어온 칠면조가 지독하게 따라붙는 상황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우연의 산물은 어느새 ‘당당한 존재감’으로 삶을 새롭게 지배하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노가다 일을 하는 중년의 이혼남 ‘경구’는 냉동창고에서 일을 하다 우연히 거대한 냉동 칠면조고기를 받게 된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고 ‘지독하게도 따라오는’ 칠면조를 들고 다니던 경구는 길에서 만난 빚쟁이를 칠면조로 흠씬 두들겨 패주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벤츠 트럭을 훔친 뒤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둘러앉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전 부인을 만나러 간다.


천명관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와 밤새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현실에서 종종 맞닥뜨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 주인공이 우리 자신이라는 자연스러운 착각에 빠진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60면) 우리는 자주 이 공허하고 막막한 질문 앞에서 머뭇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조용히 등을 토닥이며 슬프고도 따뜻한 유머를 선사하며 어느 봄날 할아버지와 우이동으로 벚꽃놀이를 갔을 때 그에게서 들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우이동의 봄」)를 꺼낼지도 모르겠다.



작가 천명관 소개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골프숍의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미스터 맘마’의 극장 입회인으로 시작해 영화사 직원을 거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시나리오는 영화화 되기도 했으며 영화화 되지 못한 시나리오도 다수 있다. 연출의 꿈이 있어 시나리오를 들고 오랫동안 충무로의 낭인으로 떠돌았으나 사십이 될 때까지 영화 한 편 만들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마흔 즈음,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동생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 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됐으며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고래』가 당선됐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이 “감히 이 소설을 두고 문학동네소설상 십 년이 낳은 한 장관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한 『고래』의 ‘충격’에 대해, 소설가 은희경은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 틀로 해석할 수 없다”라고 했다.

또한 소설가 임철우는 “그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 속에, 보다 구체적인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아울러 담겨진다면, 머잖아 우리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같은 감동적인 소설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막장 가족서사라 칭하는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을 비롯하여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갖가지 인물 사이에서 빚어지는 천태만상, 우여곡절을 숨가쁘게 그려내는 『고래』등을 출간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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