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84)] 매력적인 장腸 여행
기울리아 엔더스 저 | 질 엔더스 그림 | 배명자 역 | 와이즈베리 | 296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독일 서점가는 일대 ‘장 열풍’이 불고 있다. 1990년생 신예 의학도 기울리아 엔더스가 장의 숨겨진 기능과 생활 속 장 건강법에 대해 쓴 책 『매력적인 장 여행』이 화제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4년 4월 출시된 이래 줄곧 독일 아마존 종합 1위 베스트셀러를 지키고 있으며, 60만 부 판매를 돌파하고 23개국에 출간 계약됐다.
그런데 왜 하필 장일까? 소화하고 배설하고 가끔 가스를 내뿜는 이 기관은 생명 중추인 뇌나 심장에 비해 크게 중요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장은 우리가 그동안 등한시하고 오해했던 놀라운 신대륙이다. 100조 마리, 총 2킬로그램 분량 미생물들이 우리와 영양소 및 에너지와 소화효소를 주고받는 곳. 면역세포의 80퍼센트를 관할하고 교육시키며 체내 건강감시국 역할을 하는 기관.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의 95퍼센트를 비롯해 20여 종의 호르몬을 생산하며, 뇌 다음으로 신경체계가 발달한 곳. 그곳이 바로 장이다.
우리 몸에 사는 박테리아의 99퍼센트가 모여 있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소화불량, 변비 같은 장 질환만 따르는 게 아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정서질환을 비롯해 과체중이나 알레르기, 음식물 불내증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만성질환까지 따르게 된다는 것이 최신 연구 동향이다. 결국 장은 몸과 마음 건강의 바로미터가 되는 핵심기관.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장을 홀대하고 있다. 장이 소화불량, 변비, 심한 가스, 피부 트러블 등으로 간절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울리아 엔더스는 최신 연구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장의 세계’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불안장애나 우울증이 어떻게 뇌가 아니라 배에서 올 수 있을까?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우리 몸에 좋은 역할을 하는 살아 있는 균)와 프리바이오틱스(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감)는 도대체 우리 몸에서 무슨 역할을 하며, 어떻게 먹어야 제대로 기능할까?
장 박테리아는 과연 어떤 식으로 우리 몸을 살찌울까? 왜 자연분만한 아이들의 장이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난 아이들의 장보다 건강할까? 장내 미생물을 초토화시키는 항생제, 대안은 무엇이며 어떻게 복용해야 안전할까? 알레르기를 치료하려면 소장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은? 등등 장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이 책은 입에서부터 장 끝까지 음식물이 소화 배설되는 과정을 추적해가면서 장뿐만 아니라 장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소화기관 ‧ 뇌 ‧ 장내 미생물들의 기능과 업무까지 아우르며 놀랍도록 입체적인 장 지식을 전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장 건강과 관련된 조언도 ‘무엇을 먹으면 좋다’ 식의 단순한 해답이 아니다.
장과 장내 미생물 등 체내 일꾼들의 특징 및 업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이들의 노동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내 몸속 생태계와의 조화로운 공생방법에 대한 제안이다.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지만, 젊은 의학도가 재기 넘치는 어조로 참신한 비유를 들어가며 의학지식들을 쉽게 풀어주기 때문에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과학정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한 질 엔더스(저자의 여동생)의 위트 넘치는 삽화들은 내용의 명쾌한 이해와 재미를 더한다.
또한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장의 기능들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장은 우리 몸속 ‘감시와 면역’의 중추다. 피부와 코, 눈이 외부세계의 감시자로 위기를 감지한다면, 장은 어마어마한 면적과 거대한 신경망으로 우리 내부세계의 정보를 수집하고 위기를 감지한다. 우리가 먹은 모든 음식물의 분자를 인지하고, 온갖 호르몬들의 동향을 살피고 피에 잡아둔다. 또한 장은 면역세포의 80퍼센트를 관할하면서, 100조 마리의 장내 미생물들을 상대로 면역세포를 훈련시킨다. 이때 면역세포는 방어본능을 누른 채 박테리아들이 장에 살도록 내버려두고(장 점막에 머무는 이상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이들을 관찰하는 동시에 군중 속에서 위험한 박테리아들을 색출해내야 한다.
특히 장 바깥 체내에서 위험 박테리아를 만나면 즉각 처단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훈련이다. 어떤 박테리아들은 겉모습이 우리의 체세포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홍열 박테리아가 몸 안에 들어왔다면 지체 없이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 성홍열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진 면역체계가 관절이나 다른 신체기관의 체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이런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면역세포는 피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힘든 특급훈련을 받는데, 이때 아군세포를 공격하면 그 즉시 솎아진다. 우리가 건강 화두로 삼는 ‘면역력’을 기르려면 결국 면역사관학교인 장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뇌와 장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한 연구팀이 쥐를 상대로 의욕과 우울에 대해 연구했다. 이들은 쥐를 작은 수조에 넣고,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것을 안 쥐가 얼마나 오래 의욕적으로 헤엄치는지 관찰했다. 우울한 쥐들의 경우 오래 헤엄치지 않았다. 그들은 금세 체념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었으며, 스트레스에 취약했다. 따라서 새로 개발한 항우울제를 이런 쥐들에게 먹인 다음, 쥐들이 더 오래 헤엄치면 약효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2011년 아일랜드의 존 크라이언 박사팀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쥐의 절반에게 장에 좋은 유산균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 JB-1’을 먹이고, 쥐의 태도를 살폈다.
유산균으로 튼튼한 장을 갖게 된 쥐들은 정말로 더 오래 의욕적으로 헤엄을 쳤을 뿐 아니라 혈액 속의 스트레스호르몬도 적었다. 기억력 및 학습능력 테스트에서도 다른 쥐들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뇌와 장을 잇는 미주신경을 자르자, 두 집단 사이의 차이가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장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는 2013년에 발표됐다. 특정 박테리아 혼합물을 4주간 복용하자 감정과 통증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항우울제 ‘프로작(Prozac)’을 오래 복용하면 네 명 중 한 명은 구역질, 설사, 변비 같은 부작용을 경험한다. 장 신경망이 뇌와 똑같은 신경수용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우울제는 항상 장과 뇌에 동시에 작용한다. 그렇다면 장에만 작용하고 뇌에는 전달되지 않는 항우울제를 복용해도 기분이 좋아질까? 저자는 이것이 충분히 근거 있는 생각이라고 전한다. 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95퍼센트를 장 세포가 생산한다. 세로토닌은 힘들게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의 짐을 가볍게 덜어주며, 뇌에 중요한 신호분자로서 일한다. 그런 신호분자 생산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뇌에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머리가 아닌, 장 치료가 필요하다.
이 책은 장을 비롯한 소화기관과 미생물들이 우리 몸에서 하는 역할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장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근본에 충실한 노하우를 전해준다. 장을 시원하게 열어주는 검증된 배변자세, 좋은 박테리아는 보충하고 나쁜 박테리아의 개체수는 줄이는 ‘미생물 균형 맞춤’ 식습관, 변비 ․ 구토 ․ 위산역류 같은 일상의 장 문제들에 대처하고 예방하는 의학조언들, 소화기관을 도우면서 알레르기나 음식물 불내증에 대처하는 법, 장 미생물을 위한 대체 항생제나 더 똑똑한 항생제 사용법 등등. 일상에서 유용하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 관련 지식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작가 기울리아 엔더스 소개
1990년 생으로, 독일의 촉망받는 신예 의학자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있는 미생물학 및 병원위생 연구소에서 의학박사논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실력을 인정받아 빌헬름-엘제 헤라에우스 (Wilhelm-und-Else-Heraeus) 재단으로부터 두 차례 장학금을 받았다. 2012년에는 사이언스 슬램(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주제를 대중 앞에서 10분간 자유롭게 발표하는 과학대회)에 참여해 프라이부르크, 베를린, 그리고 칼스루에 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이 강의는 유 튜브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작가 질 엔더스 소개
과학 전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쾰른, 필라델피아, 칼스루에 등지에서 일했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2013년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Hertz) 협회로부터 지원금 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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