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99)] 죽을 줄 몰랐어
모르강 스포르테스 저 | 임호경 역 | 시드페이퍼 | 38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프랑스 전역을 공포로 뒤덮은 잔혹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인간 내면의 불안과 욕망을 치밀한 언어로 재현해낸 실화 소설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자아낸다.
프랑스 현대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모르강 스포르테스는 프랑스 전역을 발칵 뒤집었던 실화를 구체적인 묘사와 세심한 증언으로 해석하며 자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사건을 밀도 있게 재구성하며 프랑스인이면서도 프랑스 사회에 속하지 못한 제3세계의 실업과 그로 인한 빈곤, 차별 속에서 점점 비뚤어지는 사람들의 근본을 파헤친다.
또한 각 등장인물마다 잠재되어 있는 내면과 불안, 탐욕을 짜임새 있게 풀어내고 있다. 원한이나 동기 없이 그저 ‘돈’을 위해 철저한 조사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모한 납치를 감행하고 결국 잔혹한 살인사건의 주범이 되어버린 주인공 야세프를 통해, 누구나 가진 내면의 악마성과 범죄 심리를 엿보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건을 세심하게 풀어내고 대화를 통해 상황을 유추하게 하며, 공간적 배경까지 세밀하게 담아낸 소설 『죽을 줄 몰랐어』는 프랑스 문단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 도대체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은 그의 글 안에서 각 등장인물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외국에서 이주한 제3세계 노동자들의 실태와 그 안에 담긴 문제점, 그리고 현재 진퇴양난에 처한 프랑스의 노동실태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11년 프랑스의 4대 문학상인 엥테랄리에 상(Prix Interallie 2011)을 수상했고 프랑스 언론인들이 그 해 가장 훌륭한 소설에 수여하는 글로브 드 크리스털 상(Globe de cristal)을 2012년 수상했다.
앵테랄리에 상 역시 기자들에 의해 심사가 이뤄지는 문학상으로,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앵테랄리에 상과 크리스털 드 글로브 상을 수상하며 모르강 스포르테스는 르포르타주 소설가로 그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단순히 프랑스만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 이 소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46만 명, 노동인구만도 82만 명을 넘어서는 데 반해 근무여건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국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에게 복지란 단어는 사치일 뿐이다.
한국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조선족,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유입했듯, 프랑스에서는 아프리카, 중동계 사람들을 데려와 청소, 주방일, 잡역 등을 시키며 열악한 보수나 대우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 역시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 비슷하다.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제3세계 노동에 대한 인식도 함께 되돌아보게 만드는 뼈아픈 소설이다.
‘할리미 사건’ 실제 개요
휴대폰대리점 영업사원 일란 할리미(23)는 2006년 1월, 대리점에 휴대폰을 사러 온 여성과 퇴근 후 데이트하던 도중 실종된다. 한 달 뒤, 파리 남쪽 교외의 철로에 한 남성이 고문당한 채 발견됐다. 한겨울, 옷이 벗겨진 채 이불에 둘둘 감겨 있던 남자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몸 여기저기에는 불에 덴 자국과 담뱃불 자국이 무성하게 남아 있었다. 바로 한 달 전 실종된 일란 할리미였다. 결국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초기 경찰수사에서는 범인들이 45억 유로(약 6억 원)를 요구했던 점으로 미루어 단순 강도납치 사건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종적, 종교적 동기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방향을 바꾸어 진행한다. 결국 용의자 7명이 한꺼번에 구속되면서 이들의 납치동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돈이 많아서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용의자 중 한 사람이 진술한 것. 이 사건에는 남성 18명, 여성 9명 등 최소 27명이 가담했던 것으로 밝혀져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할리미의 죽음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2006년 2월,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또한 정부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인을 색출, 엄벌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유럽 최대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최근 몇 년간 유대인 공격이 잇따르는 가운데 불거진 사건으로 더욱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이스라엘로 옮겨져 안장되었으며 파리12구에는 할리미의 이름을 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작가 모르강 스포르테스 소개
1947년 알제리에서 태어났으며, 알제리가 프랑스에 독립한 1962년까지 그곳에 살았다. 망상증을 앓았던 어머니의 광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레밍턴 타자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후 그는 파리 7대학을 다녔고 ‘디텍티브’ 지 등에서 근무했다. 태국에서 복무 및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시암(Siam)’으로 등단했고, 현재까지 18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책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기 드보르의 주목을 받았으며, 탐사소설 『미끼』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06년 프랑스를 발칵 뒤집은 ‘일란 할리미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 『죽을 줄 몰랐어』는 프랑스의 4대 문학상인 앵테랄리에 상(2011)과 프랑스 언론계가 수상하는 글로브 크리스털 상(2012년 최고의 소설 분야)을 수상했다. 그는 제3세계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활하는 프랑스 빈민의 삶을 퍼즐을 맞추듯 세밀하게 그려냈다. 또한 치밀한 자료조사, 등장인물에 대한 완벽한 탐구,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속도감 있게 진행한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14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암』『미끼』『신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해』 『통킹의 여인』 『일본의 거리』 『대륙의 표류』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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