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늙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은퇴 후의 과제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할 과정이다. 노년의 삶은 절망적인 것이 아니며 의미와 목적, 희망이 있는 새로운 시작이다. 이를 위해 투르니에는 은퇴 후 갑작스레 강요된 여가시간에 대처하는 방법에서부터, 나이 든 이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 삶의 질, 재정상의 어려움, 건강 문제, 외로움 등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여가활동과도 직업상 이력과도 다른 제2의 이력을 가꾸는 법, 나아가 죽음을 직면하는 것까지, 노년의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지혜를 들려준다.
은퇴자에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 자체일 수 있다. 일터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현대인들에게 은퇴 후 남아도는 시간은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일에서의 성취가 자존감을 좌우하고, 인간관계조차 상당 부분 ‘일’을 매개로 이루어지던 이들에게 은퇴는 짙은 상실감을 안겨준다.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개인적으로 성숙을 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은퇴는 ‘재앙’이다. 자녀를 돌보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데 매진하던 가정주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사별하거나 막내아이마저 결혼하게 되면, 가히 은퇴에 버금가는 충격에 빠지게 된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생산 활동을 그만둔 은퇴자는 자신의 존재 이유마저 잃기 쉽다.
그래서 저자는 생계와 세속적 성공을 위해 내달리던 ‘자연적 삶’에서 ‘문화적 삶’으로 전환할 것을 재촉한다. 은퇴 즈음에는 문화적 삶, 즉 “자신을 계발해서 꾸준히 진보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며, 직업 활동을 끝낸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17쪽)으로 삶의 방식을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퇴 전에 노동 시간을 줄이고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면서 차츰 직업 활동의 비중을 의식적으로 줄여가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원서가 처음 출간된 것은 1971년이지만 내용은 여전히 적실하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은 대체로 40여 년 전 서유럽의 삶이지만 그간 상당한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오늘의 한국 사회의 현실에 더 들어맞는다. 투르니에는 은퇴자와 노인이 처한 현실을 짚어보면서 은퇴자 본인의 태도와 습관뿐 아니라, 나이 든 이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 삶의 질, 재정상의 어려움, 건강 문제, 외로움, 나아가 죽음의 문제까지, 노년기 삶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낸다.
사회학적 연구와 통계, 정신의학적 연구와 저자가 만난 이들의 사례 등을 동원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은퇴와 노년에 대한 이러한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독자는 그늘 속에 가려졌던 노년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 어린아이의 발견을 가져왔다면, 이 책이 선사하는 것은 노년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통찰, ‘노년의 재발견’이다.
흔히 노년의 삶이 단조로운 회색빛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투르니에가 강조하는 것은 노년이 새로운 출발이며 폭넓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조금 덜 활동적일지언정, 삶의 깊이는 더해가는 시기이다. 늙는다는 사실이 주는 모멸을 이겨내고 노년의 그윽한 의미를 발견하는 길을 독자는 투르니에의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 폴 투르니에 소개
폴 투르니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내과의사이자 정신의학자였다. 그는 어려서 만남들을 통해 자신의 자폐성향을 극복하고 제네바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기술적인 의학만이 존재하던 시기에 의사와 환자가 인격적으로 만남으로써 의술과 인간 이해,종교가 결합해야만 전인적 치유가 가능하다는 '인격의학'을 주창하여 수많은 환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왔으며 현대 심리학과 기독교를 통합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의 심오하고도 실제적인 사상은 여러 저서들과 강연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국제 적십자사의 대표로 오스트리아에 파견되어 전쟁 포로들의 본국 귀환 및 아동 복지를 위해 일했다. 그는 20세기 후반에 가장 사랑받는 기독교 의사였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이며 강연자로 꼽히는 그의 저서들은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들로는 『성서와 의학』『인생의 네 계절』『삶에는 뜻이 있다』『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현대인의 피로와 휴식』『강자와 약자』『여성, 그대의 사명은』『모험으로 사는 인생』『비밀』『고독』『인간 장소의 심리학』『귀를 핥으시는 하나님』『선물의 의미』등이 있다. 또한 미국의 게리 콜린스 박사가 폴 투르니에 생애와 사상을 총망라하여 그의 심리학, 신학, 방법론, 그리고 통찰들을 집대성한 『폴 투르니에의 기독교 심리학』,『인간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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