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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25)] 콜리마 이야기

 

콜리마 이야기

저자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출판사
을유문화사 | 2015-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로 불리는 샬라모프의 대표작 삶을 재현하는...
가격비교

 
[책을 읽읍시다 (725)] 콜리마 이야기
 
바를람 샬라모프 저 | 이종진 역 | 을유문화사 |3 60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콜리마 이야기』는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다”라는 찬사를 받은 바를람 샬라모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17년 동안 콜리마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고 석방된 뒤에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1954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비교적 짧은 단편들로 이뤄져 있으며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주제가 신랄하고, 밝고 생생한 언어로 쓰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콜리마라는 수용소가 만든 지옥을 기록한 단순한 회상이나 회고록을 넘어서서 새로운 산문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바를람 샬라모프는 서두르지 않고 안정감과 폭발적인 내용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교도소와 통과수용소의 세계를 생생히 묘사한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나 역사서 같은 느낌마저 준다.


샬라모프가 바라보는 수용소는 전체주의적인 스탈린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일찍이 “수용소는 지옥과 천국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재현이다. 수용소는 세계와 유사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콜리마 이야기』를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항구적인 수용소의 이미지는 악 자체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생겨나는 이유는 수인의 비인간적인 고통 때문이라기보다 수용소 자체가 죽은 자의 왕국처럼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거의 언제나 죽음을 만나게 된다. 하나 놀라운 점은 작가가 그러한 서술을 다분히 담담하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디에서도 격정적인 폭발에 이르지 않는다. 운명이나 정권에 대해 저주를 퍼붓거나 다분히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해설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이를 통해 『콜리마 이야기』에 담긴 이야기들이 작가의 허구적 산물이 아니라 예술의 형상으로 포장된 준엄한 진실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기나긴 수용소 생활을 거친 샬라모프는 자신을 “19세기, 20세기의 모든 러시아 휴머니스트와는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수용소에서 배운 시대의 원칙, 개인의 생존 원칙은 먼저 뺨을 한 대 때려 주고 나서 다음에 자비를 베풀어야 하다는 것, 즉 선에 앞서 악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타락을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실제로 샬라모프는 스탈린의 독재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강제 노동 수용소의 삶을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폭력적인 시대를 규탄했다. 1962년에 그가 솔제니친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이러한 생각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요컨대 기억하십시오. 수용소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학교입니다. 사람은 그가 관리든 수인이든 수용소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았다 하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 나는 남은 모든 삶을 바로 이 진실에 바치겠다고 오래전에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비극적 현실을 아주 냉정하면서도 태연하게 이야기해 나간다. 카드놀이를 하던 중에 다른 수인의 옷을 노름 담보로 삼기 위해 태연히 저지르는 살인, 죽은 동료의 속옷을 훔치려고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는 장면, 꾀병 환자를 적발하기 위한 병원 당국의 야만적인 방법 동원 등등이 펼쳐진다. 이 정도는 아닐지언정 오늘날에도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수용소들은 많이 있다.


또한 공공연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수용소 생활이라 할 수 있는 억압적 상황에 놓여 있는 국가와 사회도 의외로 많다. 현재에도 계속 새로운 콜리마가 설계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가 전하는 『콜리마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억압적 사회를 경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작가 바를람 샬라모프 소개


1907년 6월18일 볼로그다 시에서 사제인 아버지 티혼 니콜라예비치 샬라모프와 교사인 어머니 나데즈다 알렉산드로브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볼로그다 시 성(알렉산드르 중학교에 입학하고 1923년에는 옛 중학교 건물에 있던 2급 6번 통일노동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 볼로그다를 떠나 모스크바 주 쿤체보 시 피혁공장에 무두장이로 들어갔다. 1926년 공장 파견으로 모스크바 섬유대학 입학과 동시에 공개시험을 통해 모스크바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했다.


1927년 ‘스탈린 타도!’, ‘레닌의 유언을 수행하자!’라는 슬로건 아래 10월혁명 10주년 기념일에 데모에 가담했다. 1928년 『신 레프』 잡지에서 만든 문학 서클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1929년 2월19일 이른바 「레닌의 유언」을 인쇄하려고 나간 지하 인쇄소에서 잠복 중인 경찰에 체포되어 사회 위험분자로 3년 형을 받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모스크바 부티르카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호송수인단과 함께 북 우랄에 있는 비셰라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곳 수용소에서 첫 아내 갈리나 이그나티예브나 굿지와 만났다. 1931년 10월 교정노동수용소에서 석방, 복권되었다.


이후 1934년 굿지와 결혼했다. 1936년 첫 단편 「아우스티노 의사의 세 죽음」을 『10월』 잡지 첫 호에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937년 1월13일 ‘반혁명 트로츠키스트 활동’으로 체포되어 부티르카 감옥에 재수감되고 특별심의에서 교정노동수용소 5년의 중노동형을 받았다. 이후 기나긴 수용소 생활을 지내야 했다. 훗날 ‘콜리마 노트’ 시리즈에 수록된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후 1951년에야 형기를 다 끝마치고 그 후 2년간 달스트로이의 파견으로 바라곤, 큐뷰마, 리류코반 마을 보조 의사로 일했다.


그동안 시를 계속 써서 아는 의사 E. A. 마무차시빌리를 통해 모스크바에 있는 파스테르나크에게 보냈으며 이후 두 시인 사이에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다. 1953년 11월12일 모스크바로 귀환하여 드디어 가족들을 만났으며 같은 해 파스테르나크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문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1954년 첫 작품집 『콜리마 이야기』 집필에 착수했으며 이해 굿지와 이혼하게 된다. 1956년 모스크바로 이주했으며 네크류도바와 재혼했다. 1961년에 첫 시집 『부싯돌』을, 1964년에 시집 『나뭇잎 소리』를 출간했다. 1966년 둘째 부인 네크류도바와 이혼했다. 1967년 시집 『길과 운명』을 출간했고 이후 소련 작가동맹에 가입했다.


1977년 시집 『비등점』이 출간되었으며 출생 70주년에 명예훈장에 추서됐으나 수령을 거부했다.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시력과 청력을 잃기 시작하고, 운동 조정 상실을 동반한 마니에르 질병 발작이 잦아졌다. 1981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982년에는 정신병 환자 요양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크루프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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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