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속죄』의 저자 이언 매큐언. 그가 이번에는 법과 종교 간 대립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세 번째 장편소설 『칠드런 액트』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백혈병에 걸린 소년과 사흘 안에 아이의 목숨이 걸린 판결을 내려야 하는 고등법원 판사의 이야기를 통해 법정이 맞닥뜨린 난제를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의 제목인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는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함을 명시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아동법의 취지에 깊이 감동했고 여러 문제가 얽혀있는 미묘한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는 가정법원의 역할에 매료됐다. 법조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분량의 판결문을 읽으며 이 작품을 완성해냈다.
『칠드런 액트』는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가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의 가정사를 굽어보고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었던 피오나는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혼란에 빠지게 되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와 동시에 피오나는 여호와의 증인인 한 십대소년의 생사가 걸린 재판을 맡게 된다.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그의 종교가 금지하고 아이 자
신이 원하지 않는 수혈을 강제로 집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법은 자신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을 개인의 기본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의사가 환자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치료하는 행위는 형법상의 폭행죄에 해당한다. 소년은 자기 결정권이 생기는 18세 생일까지 꼭 3개월을 남겨두고 있지만 3일 내로 수혈을 받지 않으면 당장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피오나는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아이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믿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이 진정 그의 복지를 위한 길인지 파악하기 위해 직접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감정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모두의 미래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매큐언은 주인공인 피오나를 “이성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이성이 항상 보호장치가 되어주지 못함을 깨닫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59세의 나이로 “노년의 유아기에서 막 기는 법을 배우고 있는” 피오나는 어느 날 갑자기 평온했던 자신의 온 삶을 뒤흔들고 가장 내밀한 감정을 휘저어놓으며, 믿어왔던 많은 가치들을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매큐언은 전작 『이런 사랑』과 『토요일』 등에서 이성과 과학의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왔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것이 초자연적인 믿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더없이 섬세한 감정으로 그려낸다. 복잡하게 얽힌 윤리와 가치판단의 문제를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한 중년여성과 사춘기 소년의 가슴 아픈 이야기로 그려내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더불어 “글을 뼈가 드러나도록 깎아내는” 매큐언의 날카롭게 벼려진 글과 우아하고 세련된 문장은 새삼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작가 이언 매큐언 소개
동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이언 매큐언은 1948년 영국 서리 지방 알더샷에서 태어났고,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 독일 북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랐다. 1970년 서섹스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후,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소설가 말콤 브레드베리의 지도하에 소설창작을 공부했다. 1975년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같은 책으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다.
이후 1987년 『차일드 인 타임』으로 휘트브레드 상, 1998년 『암스테르담』으로 부커 상, 2002년 『속죄』로 W. H. 스미스 문학상, 영국 작가협회 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상, 산티아고 상 등을 수상했다. 1998년 부커상을 받은 이후로는 인간의 내면과 인생을 진지하고 깊게 고찰하는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이런 사랑』 『토요일』 『체실 비치에서』 등이 있다. 최근 영화화되어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한 [속죄(개봉 제목: 어톤먼트)] 등 여러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고, 『첫사랑, 마지막 의식』 단편 중에서도 3편이나 영화화됐다.
<따라하기 놀이> <농부의 점심식사> <새콤달콤> <착한 아들> <결백한 자> 등 여러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1998년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여성학자인 페니 알렌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이혼하고, 1997년 기자인 아날레나 매카피와 재혼하여 지금은 런던에 살고 있다.
『체실 비치에서』 『속죄』 『토요일』 『이노센트』 『암스테르담』 『시멘트 가든』 『몽상가』 『사랑의 신드롬』 등 열한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2000년 영국 왕실로부터 커맨더 작위를 받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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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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