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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754)]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책을 읽읍시다 (754)]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글, 그림 | 강희진 역 | 우리나비 | 188쪽 | 16,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어떤 물리적인 학대도 없고 사회적인 문제도 없는,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족 관계 속에서 파괴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제니의 성장기를 다룬 그래픽 노블이다. 인간관계에 서툴고 자기비하로 가득 차 있는 제니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 간의 기이한 현상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왜 그토록 불안과 욕구 불만 증세에 시달려왔는지, 부모님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받아들이는 시점에 다다른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니가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니는 뜻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사용했던 아기 침대를 조립하다가 침대에 난 자국을 발견하면서 제니의 생각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학교 일이든 친구들과의 일이든 제니가 이야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엄마 아빠는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로써 제니는 의사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가족사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제니는 자신감을 잃고 무엇이든 논쟁을 일삼는다. 딸이 그토록 힘겨운 십대를 보내고 있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데만 급급하고 아빠는 언제나 회피한다. 제니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단정 짓고는 스스로가 고립되어가는 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이제 어른이 되어 아이에게 정성을 쏟는 자신을 돌아보며 제니는 왜 자신의 어린 시절은 늘 삭막하기만 했는지, 어째서 위로와 안도의 경험은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결국 제니는 다시 한 번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정서적 방치’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뒤엉켰던 기억의 퍼즐들을 짜 맞춰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면에서 울부짖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긴 등반을 시도한다.


제니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혼자 스스로 배워나가는 훈련을 한다. 부모에게 한 번이라도 관심을 받아본 일이 없다. 호기심은 사치일 뿐 응답 없는 질문에 늘 고통받아야 했다. 엄마 아빠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의지해 의사소통의 귀를 열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 표시는 해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야 했고 부모님은 의논 상대가 되어줄 ‘어른’이 아니었음을 일찍이 알았다. 그렇게 제니는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누구에게든 도움을 바라서는 안 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관심과 애정을 갈구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쟁취할 수 없었던 제니는 사랑에 대한 굶주림을 불만과 반항 그리고 자포자기로밖에 나타낼 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제니는 악을 써대고 아버지와 동생은 자리를 피하고 엄마는 눈물을 보이기만 하는 연출이 반복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무대가 오사의 정교한 그림과 텍스트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이 책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것이지만 줄곧 어둡고 가슴 아프다. 더 이상의 무모한 희망을 포기하자 마침내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과연 자녀의 생물학적 부모의 권리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도 된다. 아이를 방관하고 방치하는 데에 따른 막중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이며 또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할 길이 없어 위축되기만 하는 아이의 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무관심의 폭력, 그 잔인함에 전율이 일 정도지만 잘못된 건 자신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주변이라는 아이의 외침에 응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작가 오사 게렌발 소개


1973년에 태어났으며 스톡홀름의 콘스팍 디자인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2002년 졸업했다. 스웨덴 여성 만화 작가 붐을 일으킨 개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으로는 『7층』(2015 부천만화대상 선정작), 『가족의 초상』이 있다.


오사의 졸업 작품이기도 한 『7층』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자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만화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프랑스에서는 국제앰네스티 후기가 실린 판본을 내놓기도 했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 불능을 폭로한 『가족의 초상』은 뛰어난 이야기솜씨가 돋보이는 서술 구조를 띠는 가운데 인간관계의 중심에서 심리적 메커니즘을 연출하고 있다.


앞선 두 작품이 각기 작가의 20대와 30대를 대표한다면 이 두 작품을 아우르는 속편 격인 신작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그녀가 40대에 쓴 아홉 번째 그래픽노블로 비평가들에 의해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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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