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903)] 진눈깨비

[책을 읽읍시다 (903)] 진눈깨비

구자명 저 | 나무와숲 | 24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하이브리드적 문학 실험을 꾸준히 해온 중견 작가 구자명이 삶의 진실을 천의 얼굴로 보여주는 고농축 한뼘소설집 『진눈깨비』. 55편의 미니픽션과 「세 별 이야기」라는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가 깃들인 단편 하나가 실렸다. 이번 작품집은 일련의 연작들과 종교적 테마 소설들로 구성된 1부 ‘순례자는 강가에서 길을 떠난다’, 우리네 인간살이와 인간관계를 때론 진중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린 2부 ‘진눈깨비’, 사회 비판과 풍자를 시도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3부 ‘돼지효과에 대한 한 보고’, 일종의 자전소설인 4부 ‘그녀의 선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배꼽동무로 마약 퇴치 선교 사목을 하다 괴한의 총탄을 맞고 선종한 사제, 가족의 품을 떠나 광야로 나아가는 형, 화학전까지 우려되는 시리아 난민 지역 취재를 떠나는 외신기자. 「순례자는 강가에서 길을 떠난다」 연작 세 편은 이처럼 자기를 버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한때 이름난 거부였으나 재산에 대한 집착은 물론, 집착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집착마저 버린 방온 거사의 삶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바늘귀의 비밀을 안 낙타」 역시 마찬가지. 고급스런 비단옷을 입은 한 젊은이가 방온 영감에게 나타나 “세상사가 다 허망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거사님처럼 가진 재산을 다 버리고 나면 삶의 행복을 알게 될까요?”라고 묻자, “재산을 처리할 데가 마땅치 않으면 골치 썩힐 것 없이 나한테 찾아오라구. 이제 난 재산이 좀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단 말씀이야”라고 답한다.


그런가 하면 골리앗이 다윗에게 어이없게 당하고 필리스티아 공동체마저 무참하게 도륙당한 뒤, 그 후손들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야기인 「골리앗은 죽지 않았다」는 마치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데자뷰를 보는 듯 전율을 느끼게 한다.


표제작 「진눈깨비」는 마치 비도 눈도 아닌 진눈깨비처럼, 사랑하지도 이별하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두 연인의 미묘한 감정선을 드러낸다.


한편 해외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어머니 임종조차 지키지 않은 아들이 대신 어머니 유골 가루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반지 속에 박아 넣는다는 「그대 곁에 영원히」, 불면증으로 극심한 통증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찾은 소설가 Z씨가 약으로 처방받은 만화책 덕분에 두통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진통제」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또한 “속이 희고 껌고”를 따지지 않고 일단 배고픈 자에게 밥 한 끼 차려주는 원산댁 이야기인 「식객」, 귀머거리 시어머니와 선천성 농아 며느리의 첨예한 갈등과 공존을 그린 「전원교향악」 등에서 보여주는 인간관계와 풍경은 속 깊고 드넓기까지 하다.


구자명의 『진눈깨비』에는 짧지만 인생에 깊은 통찰과 여운을 주는 작품들이 각기 다른 빛깔과 형태로 우리를 매혹한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는 “미니픽션도 ‘미니’픽션인 동시에 어디까지나 미니‘픽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래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감동과 지적·윤리적 성찰의 장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미니픽션은 그와 유사한 SNS 등의 소통 매체가 널리 퍼진 오늘날 그 존재 의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삶의 진실을 천의 얼굴로 전달하고 있는 구자명의 『진눈깨비』는 우리 시대 미니픽션의 운명, 나아가 서사 장르의 운명을 측정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말한다.



작가 구자명 소개


저자 구자명은 1957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나 서울, 하와이 등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1997년 ‘작가세계’에 단편 「뿔」로 등단, 소설집 『건달』 『날아라 선녀』, 에세이집 『바늘구멍으로 걸어간 낙타』 『던져진 돌의 자유』 등을 냈다. 한국가톨릭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 이래 한국미니픽션작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수필·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적 문학 실험을 꾸준히 해왔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