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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975)] 약속의 날

[책을 읽읍시다 (975)] 약속의 날

신이우 저 | 박희선 역 | 문학동네 | 604쪽 | 16,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신이우 장편소설『약속의 날』. 신이우의 소설이 중국 내에서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는 이유는 청춘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의 청춘 서사는 ‘현실성’과 ‘동시대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녀는 지나간 청춘을 미화하지도 찬양하지도 않고 담담히 서술한다. 청춘을 회상하는 현재 시점에서도 현실은 과장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서사의 ‘현실성’은 지금 중국을 살아가는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공감의 끝에는 그렇게 청춘을 지나온 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서사가 기다리고 있다.

 

나이 서른을 앞둔 펑란은 빠지지 않는 외모에, 잘나가는 회사도 다녀보았고 지금은 태국 음식점을 운영하며 명실상부 당당하고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삶을 몸소 실현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자던 남자친구가 문자메시지로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려온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펑란의 레스토랑엔 알 수 없는 과거와 모종의 비밀에 둘러싸인 연하남 딩샤오예가 종업원으로 들어오고, 펑란은 대책 없이 그에게 빠져들면서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과 맞닥뜨리기 시작한다.

 

펑란은 지금껏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여자였다.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다툼 끝에 험한 말이 나올라치면 ‘진정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로 사태를 매듭질 줄 아는 쿨한 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딩샤오예 앞에선 제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한바탕 사건을 치른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딩샤오예를 끌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전 남자친구를 옴팡지게 때려준 것! 술기운을 빌려 감행한 우발적인 복수이긴 했지만 펑란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간 펑란이 쓰고 있던 ‘성숙한 어른’이라는 가면을 딩샤오예가 시원하게 벗겨주었던 것이다. 이 가면이 벗겨지자 펑란은 끌리는 대로 혹은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본격적인 탐색과 적극적인 구애에 돌입한 펑란. 그를 향한 감정이 광활한 벌판을 떠도는 맹수가 갖고 있는 힘처럼 강렬하게 느껴진다. 한 입을 먹고 반해버린 카레 게 볶음을 물릴 때까지 먹고 다음부턴 먹지 않았던 경험을 살려 딩샤오예를 눈앞에 두고 오 분 동안 ‘굶주린 눈빛’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하면 만원버스 안에서 먼저 입맞춤을 하는 등 다소 독특하고 서툰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레스토랑의 여자 종업원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그 사실에 치를 떠는 자신의 속물근성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이 튀어나오는 솔직하고 유치한 행동들이 낯선 동시에 좋다. 이렇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이 마침내 나타났다는 사실이 반갑다.

 

펑란은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수면 위로 끌어낸 이 남자가 누구인지, 어떤 방법을 쓰고 있는지 곰곰 들여다본다.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 사치스러운 선물을 주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이지만, 딩샤오예는 감정을 전혀 꾸며내지 않았었다. 딩샤오예가 스스럼없이 값비싼 선물을 받았던 건, 그것을 한 여자의 가장 평범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펑란은 딩샤오예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설익은 사랑의 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느꼈고 기꺼이 그를 위해 자신을 내걸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딩샤오예에게는 이런 펑란의 진심을 완벽히 껴안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딩샤오예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범죄 조직의 보스였던 아버지의 누명을 뒤집어쓴 도망자 신분이었다. ‘딩샤오예’라는 이름도 누군가의 신상을 가로챈 것일 뿐이었다. 딩샤오예는 자신의 신원이 발각되면 펑란이 상처를 입고 피해를 줄까 걱정하여 그녀를 멀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톱을 깎아주는 일상 속 소소한 행동이 지극한 사랑의 표현임을 직접 보여주는 펑란의 부모님. 책임과 사랑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쩡페이가 잔인한 진실을 마주보게 함으로써 자신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추이옌. 상대를 아프게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사랑법이라 믿는 탄사오청의 맹목적인 사랑. 일 년에 한두 번 집을 찾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항상 단정한 차림을 했던 딩샤오예의 어머니까지.

 

신원도 불분명하고, 종업원에 불과한 딩샤오예를 사랑하면서 자신이 믿었던 관념들과 편견들을 재조립하는 펑란은 자신을 둘러싼 이들과 각각의 관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탄사오청의 집착이나, 추이옌의 의존적인 성향, 막장 드라마라고 치부했던 딩샤오예의 아버지의 사랑까지,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혹은 용납할 수 없었던 이들의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 역시 세간의 눈으로 본다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나. 그 사랑엔 별다른 조건이나 이유가 없었다. 그런 자신의 사랑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된 지금은 ‘그들’의 사랑 역시 ‘무엇 때문에’가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시나브로 알게 된 것.

 

누군가의 자랑이 되어야 하고, 부러움을 받는 동시에 얕보여서도 안 된다. 어찌됐든 여자는 결혼을 잘하고 봐야 한다는 사회의 주문들. 이를 만족시켜야만 성공한 것이고 완벽한 것이라는 강박들. 서른을 코앞에 둔지라 내몰리듯 맞선을 보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도 않았던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곱씹는 등 펑란 역시 이런 주문들 앞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남자를 만나자 펑란은 모험을 감행했다. 그를 선택하는 데 주저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

 

소설의 결말에 가서도 ‘펑란과 딩샤오예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식의 ‘안정된 사랑’을 확정짓는 서술은 없다. 펑란은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그렇기에 제 존재를 열어젖혔다. 그러자 물밀듯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급변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강해졌다. 이러한 변화들을 모두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한정짓긴 어렵다. 비록 사랑의 힘으로 추동되긴 했지만, 펑란의 변화는 딩샤오예가 베푼 사랑의 ‘부속물’이라기보다는 용기 있게 도약했던 행동들의 ‘성취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젊은 작가 신이우는 묻고 있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청춘과 사랑은 신데렐라식의 해피‘엔딩’이 아닌 펑란식의 ‘진행형’이 아니냐고. 지금의 청춘 서사는 다시 쓰여야 하지 않느냐고.

 

 

작가 신이우 소개

 

본명은 장춘링으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 작가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소설가로 꼽히는 젊은 작가이다. 1981년 중국 광시 성 구이린에서 태어났다. 2004년 광시사범대학교를 졸업한 후 난닝전력공사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2006년에 첫 소설인 『넌 아직도 여기에 있었구나』를 인터넷에 연재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따뜻이 보듬는 작품들을 발표해 ‘상처입은 청춘’ 시리즈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여 젊은 독자들의 공감과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특히 2007년에 출간된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은 2013년 중국의 유명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자오웨이에 의해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하였고, 책은 누적 판매량 300만 부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홉번째 소설『약속의』(2014) 역시 현재 영화화 작업이 진행중이며 첫 소설 『넌 아직도 여기에 있었구나』는 2016년 7월 중국에서 개봉했다. 인터넷 소설 게시판에 글을 올리던 무명 작가로 출발한 그녀이지만, 대중적 영향력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모옌, 쑤퉁, 비페이위 등 중진 작가들이 속해 있는 ‘중국작가협회’의 회원이 되어 기성 문학계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우리들』(2016)을 비롯해 『다시, 청춘』(2011)『추억 속에서 널 기다릴게』(2010) 등 총 열 편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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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