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991)] 거기 있나요
박형서 등저 | 은행나무 | 228쪽 | 5,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거기 있나요』. 젊은 평론가들의 예심을 통해 스물한 편의 중·단편소설들이 본심에 올랐고 소설가 오정희 소설가 전상국과 문학평론가 김동식 세 명의 본심 심사위원의 치열한 논의 끝에 2016년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박형서의 단편소설 「거기 있나요」를 선정됐다. 「거기 있나요」는 양자물리학에 근거해 과학적 공간에서의 인류 진화 재현 연구를 통해 벌어지는 인류의 광기, 폭력, 역사 등을 과학소설의 서사와 감칠맛 나는 문체로 형상화했다.
이 소설은 ‘진화동기재현연구’라는 실험이 이루어지면서 발동된다. 진화동기재현연구는 인류의 진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지를 양자역학적 공간에서 재현(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두 부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실험을 주도하는 연구원 ‘광조교’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역학적 공간에서 운동하는 ‘쿼크(입자)’이다. 실험을 통해 쿼크들의 서식처가 정해지고 태양이 생기고 진화가 시작된다. 돌연변이, 광합성, 염색체 전이가 나타나고, 쿼크들 사이에서 사회가 발생된다. 또 언어가 태어나 사회의 안정성이 확보되고 형벌체제를 통해 계급구조가 유지된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들은 실험기간을 맞추기 위해 쿼크에게 주어지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 시작한다. 이후 쿼크들은 음성기호를 탄생시키고 감정의 발명으로까지 나아간다. 그 진화를 지켜보면서 ‘광조교’의 욕망 또한 비슷한 단계로 진화하기 시작하는데, 그의 권력의지는 관찰을 넘어 감시와 처벌 나아가 광기 어린 폭력으로 진화한다. 쿼크들은 광조교의 폭력에 의해 죽어가면서 끊임없이 저항의 방식들을 만들어간다. 결국 실험은 인간의 권력의지와 폭력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쿼크들의 미시우주는 파괴된다. 쿼크들은 절멸되는 순간까지도 “이봐요, 거기 있나요?”라는 문장을 서로 주고받았음이 밝혀진다.
박형서의 「거기 있나요」는 물리학 용어들이 쉴새없이 등장하지만 단순히 과학소설의 문법이나 양자물리학의 지식을 현학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나타나는 억압과 저항을 재현하면서 인간의 권력과 폭력의지가 어떻게 인류 진화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소설적 문법으로 들여다본다. 가공의 세계를 탄생시키고 그 세계의 진화의 기록문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소설에서 빠져나와 지금 현실의 초상 혹은 그림자 혹은 위악한 실존까지 비쳐주는 거울상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종전의 한국문학에서 친숙함을 벗어나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는 수상작 박형서의 「거기 있나요」는 인류 진화의 소설적 발견이라 할 만하다.
수상작 외에도 미술계 파워 블로그와 그의 책을 내고자 하는 편집자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타인과 나와 직면한 단조로운 불화와 단절된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려낸 김금희의 「새 보러 간다」, 음악과 침묵, 목소리와 말 등 음성기호로 명명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시적인 사색에 깊이 동참하기를 권하는 김태용의 「음악 이전의 밤」, 집안의 온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안은 막냇삼촌을 통해 바라본 희망과 절망 사이의 간극의 양면성을 표현한 윤성희의 「스위치」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또한 입양아의 귀양과 이름의 의미론에 대해 그녀만의 문장과 문체로 슬픈 연주를 하고 있는 조해진의 「문주」, 큰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추적해가면서 알게 되는 할머니에 대한 아릿한 추억, 그 추억의 사슬에 자신 또한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린 천운영의 「반에 반의 반」도 고유한 개성을 발하는 작품이다.
아울러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슬픔으로 변질되고 인간의 내밀한 고통을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으로 엇갈리게 변주해 표현하고 있는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 젊은 세대들의 고통스러우면 때론 파괴적이고 그러면서 아름다운 언어에 대해 말하고 있는 한유주의 「그해 여름 우리는」도 주목해볼 만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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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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