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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칼럼 ] 국가(애국가)제창을 4절까지 부르면 좋을텐데

[ 칼럼 ] 국가(애국가)제창을 4절까지 부르면 좋을텐데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시 사타임즈 칼럼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우리보다 작은 나라도 훨씬 더 많다. 더구나 반만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동방예의지국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자처한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하거나 약탈한 사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반면에 다른 나라의 침범을 받은 일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아예 나라가 무너져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 고두구배(叩頭九拜)를 하며 항복했던 일은 씻기 어려운 민족의 치욕이다.


지 금도 잠실에 있는 삼전도비(三田渡碑)는 그 당시의 치욕을 되새겨보며 극도의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상징물이다. 그나마 왕권을 유지하여 종묘사직을 지켰다는 것은 속국으로 자원했기에 가능했다. 근세에 접어들며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 메이지유신으로 서구화한 일본의 힘에 억눌려 강제적으로 병탄의 길에 들어선 것은 참으로 통탄할 민족의 최후였다.


그 러나 우리 민족은 주저앉지 않았다. 왕과 관리들은 허약했지만 일반 민중은 강인했다. 의병대를 구성하고 왜놈들의 군대에 저항하여 곳곳에서 승리했지만 일본 정규군이 증파되면서 최신무기 앞에 결국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1910년 8월29일 꿈에서라도 잊어선 안 되는 국치를 맞이했지만 이에 저항한 독립 운동가들은 국내외에서 완강한 무력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1919 년 3월1일 전민족의 만세함성은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 때 민족의 선각자들이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처음에는 네 군데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모색하며 선언되었으나 협의를 거쳐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조선왕조에서 고관대작을 지냈던 이우영 이회영 이시영 등 형제 여섯이 국내에 있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 땅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일이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이 넘는다는 거금을 털어 조국 독립운동에 바친 것은 노블레스 오빌리주의 전형으로 찬양받는다.


신 흥무관학교는 육군사관학교처럼 군 지휘관을 양성하는 역할을 하면서 둔병제(屯兵制)형식으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지금은 그 넓었던 군영과 학교시설 등은 찾을 길 없는 옥수수 밭으로 끝없이 펼쳐진 것이 찾는 이들의 가슴을 무겁게 할 뿐이다. 우리는 3.1만세운동 이후 6.10만세운동으로 다시 한 번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젊은 학도들이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은 전국 학생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윤 봉길 이봉창 백정기 김상옥 강우규의사 등은 안중근의사의 뒤를 이어 일본에 큰 타격을 안기고 산화했다. 우리는 1945년 8월15일 꿈에도 그리던 조국광복을 맞이하여 세계에 우뚝 설 그 날을 기약하며 희망에 부풀었지만 국제정치의 농단으로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섰다. 6.25남침으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극심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걸 핏하면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남북합의서가 발표되기도 하고 김대중 노무현정부는 평양까지 찾아가 김정일을 만났다. 엄청난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구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외에는 얻은 것이 별로 없다. 더구나 북측은 그러한 자금을 바탕으로 핵폭탄을 만들고 미사일을 쏴 올리며 자유세계를 위협한다. 새로 취임한 트럼프정부는 강력한 응징태세를 갖춘 듯 보이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처럼 목소리만 높일 따름이지 중국의 적극적인 제재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별무효과일 것이다.


이 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상황에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용인한 대통령 때문에 빚어진 일이어서 대외적으로는 망하기까지 하지만 촛불시위와 태극기집회로 극명하게 대립한 국론은 수소폭탄처럼 핵분열을 일으키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뇌관이 되었다.


그 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 국가가 주도하는 국경일이나 국가기념일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매일처럼 전국에서 벌어지는 행사는 아마 몇 천 건씩일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좌파성향 단체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제창, 묵념으로 국민의례를 한다. 이 때 애국가는 대부분 1절만 부른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지만 4절까지 불러도 2분밖에 안 걸린다. 교회에서 찬송가는 반복해서 끝날때까지 부르면서 애국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일까. 이것은 애국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장중하지만 가슴을 뛰게 만드는 힘이 부족한 곡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안 익태도 없는데 새로운 작곡을 할 수도 없다. 어차피 1절로 끝날 바에야 애국가 4절을 모두 합쳐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후렴(後斂)을 한 번만 부르기로 하면 간단하다.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할 때에는 왜놈 경찰의 눈을 피하여 쉽게 깨칠 수 있도록 동어반복(同語反覆)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애국가를 1절만 부르는 것은 이미 관행이 되었다. 그러나 주옥같은 2,3,4절의 가사는 버릴 수 없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벽을 두른 듯--”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낮음없이--” “이 가슴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이처럼 4절을 모두 부른 다음 후렴을 한 번만 부른다면 어느 누구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 제언에 대해서 주변분도 흔쾌히 동의를 표했다. 1절로 생략하는 것보다 한결 나은 국민의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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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호남본사 대표 ksk36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