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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의회독재와 검찰독재는 과연 옳은 말인가?

[칼럼] 의회독재와 검찰독재는 과연 옳은 말인가?

 


▲김동진 (사)새 희망 포럼 전북지역 대표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김동진 (사)새 희망 포럼 전북지역 대표] 우리는 독재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여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독재는 민주와 자유를 정반대로 쓰는 용어다. 독재는 무섭다. 과거의 모든 왕조는 독재였지만 그 문제 때문에 백성이 들고 일어난 일은 없다. 물론 왕의 절대권이 보장되는 사회였고 민중의식이 따로 작용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민도는 약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집권자의 무소불위의 힘은 언제나 올바르게만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 일은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나라마다 혁명이 일어나고 왕조가 쫓겨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혁명은 미국의 독립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중국의 신해혁명,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 한국의4.19혁명을 들수 있다. 특히4.19혁명은 나이 어린 학생들에 의해서 주도된 혁명이어서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혁명이후 집권한 세력들은 헌법전문에 이를 수록하여 올바른 민주시민의 의식을 앙양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념관 하나 세워지지 않고 당연해야 할 국경일 로도 지정되지 않고 있다. 말로는 위대한 혁명이라고 하면서 5천년 역사의 백미를 장식하는 4.19혁명을 일반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서‘의거’로 격하되었던 쓰라린 역사왜곡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의 몸으로 이승만 독재에 대항하여186명의 희생자를 내면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다가 오랜 세월 고문과 투옥을 이겨낸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그들의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전념하는 거꾸로 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폄훼하고 싶지 않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는 분명 국민을 억압하고 자유를 짓밟은 독재자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들이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를 부흥시킨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권과 자유가 짓밟힌 사실조차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고난을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되찾은 우리가 민주화 이후 걸핏하면 집권세력을 매도하는데 ‘독재’라는 용어를 남발하고 있어 어리둥절 해질 때가 많다.

 

이승만은 1인독재,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사독재라고 불러도 하등 이의가 없지만 지금 남발되고 있는 의회독재와 검찰독재는 과연 옳은 말인가. 윤석열정부는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라 마구잡이로 야당에서 쓰는 용어고, 거대의석을 장악한 야당이 수많은 입법과 특검법을 여과 없이 발행하니까 여당에서 의회독재가 나왔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두 용어가 모두 마땅하지 않다. 과거의 독재자들도 정보부를 통해서 반체제 인사를 엮을 때에는 검찰이 최종역할을 했다. 반체제 활동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범죄라도 조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고문을 써먹었다. 국회 의석은 애초부터 여당이 다수당이 되도록 법으로 꾸며놨다.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았으며 아예 대통령이 임명하는 3분의1을 유신정우회라는 이름으로 눈속임을 했다. 여당은 언제나 과반수를 넘겼다. 그러나 요새 나온 검찰독재는 얼른 납득할 수 없다. 대부분 정치적 이유가 아니고 부정선거, 입시부정, 뇌물,횡령, 문서위조, 공권력 남용, 부동산 투기등의 범죄사실을 경찰과 검찰의 수사로 잡아내는 일이어서 사회기강을 위해서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는 범죄행위가 대부분이다. 이는 범죄행위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꼭 필요한 사회질서의 유지다. 야당대표를 비롯하여 많은 야당인사들이 걸려들었다고 해서 이를 검찰독재로 호칭하는 것은 과거 정치범으로 고통을 당했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웃을 일이다. 의회독재라는 용어도 틀린 말이다. 국민이 선출한 선거에서 당선했으니 떨어진 여당의 푸념으로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여당은 자기들의 잘못으로 졌다. 이를 반성하고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수당이 입법을 통해서 의회정치를 하는데 숫자가 모자란 측이 독재라고 부르는 것은 반성하지 못하는 행위다. 그것을 막는 방법으로 거부권을 활용하면 된다. 이래서 협치가 필요하다. 여야가 상호 비난만할 게 아니라 국민만을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가짐이 진정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글 : 김동진 (사)새 희망 포럼 전북지역 대표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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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사)새 희망 포럼 전북지역 대표 ksk36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