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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한마음교회 간증(7) ]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그 답을 찾다!

[ 한마음교회 간증(7) ]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그 답을 찾다!

 

[시 사타임즈 = 춘천한마음교회 서수지]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한마음교회 서수지라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예수님이 왜 하나님이신가?”를 고민했습니다. 모태신앙이었기에 어렸을 때는 당연하게 이것을 받아들이다가, 머리가 점점 크면서 조금씩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그리고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실까?”

 

 

 

▲춘천한마음교회 서수지씨 ⒞시사타임즈

 

 

 

 

저 는 이 질문의 답을 저의 뜨거운 마음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저는 처음으로 대형연합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그 때 패션오브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예수님께서 저의 죄 때문에 너무도 처참하게 돌아가시는 거에요.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식어지는 거에요. 많은 부흥회, 수련회를 다녀봤지만 항상 길면 3일 짧으면 하루 만에 식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뜨거운 감격을 유지할 수 잇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그 러던 중, 학교 수업시간에 어떤 시를 배웠습니다. 그 시는 부처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불자의 시였어요. 그 시를 읽고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신과 인간간의 뜨거운 사랑의 교류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하나님만 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감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시를 보니까 그런 감격이 넘치는 너무도 아름다운 시인거에요. ‘부처’ 대신 ‘예수님’을 넣으면 아름다운 찬양가사가 될 정도로요. ‘그렇다면 혹시 하나님도 만들어진 신이면 어쩌지? 만들어진 하나님께 내가 찬양하고 기도한다고 북 치고 장구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의심들을 눌렀어요. ‘아니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했어! 하나님은 살아계셔, 의심하면 안 돼!’ 하며 의심을 꾹꾹 눌렀습니다.

 

그 래서 방언체험이나 성령체험처럼 뭘 더 체험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실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고 싶었어요.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흥회와 중고등부수련회 때마다 방언을 받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목사님께서 자신이 안수기도를 해주면 방언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당연히 강단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 분이 바로 제 앞에 있는 언니에게 손을 얹자마자 그 언니가 뒤로 딱 넘어가면서 방언을 하기 시작하는거에요. 저도 ‘아 바로 저거다!’ 싶어서 무릎으로 기어가서 목사님 발을 붙들고 저에게도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근데 저는 아무리 안수기도를 받아도 방언을 하지 못했고 슬프게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몇 번이나 방언을 받는데 실패했는지 모릅니다.

 

그 러던 어느 부흥회 때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하면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굳게 믿어질 것 같았던 제 마음에 오히려 의심이 들더라구요. ‘내가 지금 진짜 방언을 하는 건가? 아니면 너무 방언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방언을 지어내고 있나? 다른 종교에도 똑같이 방언이 있다는데.. 내가 말하고 있는 게 하나님이 주신 방언 맞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지만 또 저는 ‘의심하면 안돼! 보지 않고 믿는거야!!’하면서 의심을 꾹꾹 눌렀습니다.

 

그 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 이런 의심이 사라지고 확실하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믿어질 것 같았습니다. 금식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기도원 원장님이 그냥 대충해서는 예수님이 안 만나주시고 소경 바디매오 처럼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아, 바로 이거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 손목 한 번 잡아보려고 저는 목이 다 쉴 때까지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제발!! 제발!!” 그러나 결국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죄가 많아서 안 만나주시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생각이 복잡해지고 의심이 들더라구요. 하지만 또 ‘의심하면 안돼! 보지 않고 믿는거야!’ 하며 또 의심을 눌렀습니다.

 

그 러던 중, 중학교 과학 선생님을 통해서 창조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조과학은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노아의 방주 등을 과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증명해내는 학문이었습니다. 창조과학을 알게 되면서 “아, 바로 이거다!!” 창조론이 맞다면 하나님이 계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런데 확신에 넘치던 중에, 한 가지 턱턱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오류가 없고,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알 것 같은데 신약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질 않더라구요. 저는 천지를 창조하셨던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계신 것 같은데, 신약의 예수님과 매치가 안 되더라구요.

 

그 때 제 안에서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일까? 예수의 12제자가 자기 스승을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유태인 랍비에 그칠 뻔한 사람을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린 희대의 사기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빈치 코드라는 책과 영화 때문에 그런 의문들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또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셨어! 예수님은 하나님이야 예수님은 하나님이야!’ 하며 모든 의심들을 꾹꾹 눌렀습니다.

 

저 는 사람이 죄인이어서 죄성이 있으니까 의심을 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나 이런 의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뜨거울 땐 의심하지 않지만, 마음이 식어지면 한 두 번은 누구나 의심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의심을 부모님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저는 밖으로 봤을 때는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크리스천으로 보였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저는 그리스도인의 냄새를 스멀스멀 풍기고 다녔습니다.

 

저 는 야간자율학습시간에 30분씩 성경을 읽고 공부를 시작하곤 했는데요. 저는 그냥 성경도 아니고, 목사님들 서재에만 있다는 대형 성경을 턱 올려놓고 촥촥 소리를 내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애들은 신기해하면서 저보고 신앙이 좋다고 인정해주더라구요. 저는 뿌듯해서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잖아’ 하면서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교회 다니면서도 성경도 안 읽냐, 으이그 믿음 없는 자 같으니라고’하고 마음 속으로 판단과 정죄를 엄청 했습니다.

 

또 한 친구들이 공부하면서 힘든 것,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야~ 나한테 기도제목 내! 내가 새벽 3시까지 기도하니까 내가 기도하면 다 응답받어!”이러면서 자부심을 갖기도 했어요. 그 때 큐티도 열심히 했고 신앙서적도 열심히 읽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 때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순교자들의 책을 읽었는데요. ‘20세기 마지막 순교자 캐시 버넬’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 내가 순교신앙을 가졌구나’ 이러면서 제 신앙에 아주 만족을 했어요.

 

그 러나 저는 제 신앙의 위기를 맞닥트려야 했는데, 그건 바로 수능이 끝나고 점수를 받고 난 이후였습니다. 사실 저는 나름 하나님을 위한 꿈이라 여기며 중학교 2학년 때 서원을 했었어요. “하나님! 제가 정말 의사가 되어서 이 나라의 3% 소금과 같은 의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선교사도 되겠습니다! 꼭 의사를 만들어주세요!”하고 그 서원에 걸맞게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 러면서 저는 고3때까지 중고등부 찬양단 리더로 섬겼었고, 주일은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일은 하루 종일 예배를 드리고 신앙서적을 읽었어요. 매일 저녁 기도했던 것도 잊지 않았구요. 제 마음 속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께서 정성을 보시고 반드시 의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 런데 하나님은 수능성적을 최악의 성적을 받게 하셨어요. 마치 하나님이 제 뒷통수를 때리시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완전히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수능성적을 확인하는 순간, 저는 미친 사람처럼 온 집을 뛰어다녔어요. ‘으아!!!!!!!’며 이 방 저 방 돌아 다니며 소리를 질렀고, 걱정되신 엄마가 따라 들어오시니까 너무 화가 나서 방문을 잠갔습니다. 그리고 너무 기가 막혀서 하하하 웃었다가 화가나서 으아아아악 소리를 질렀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며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걱정되신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는데, 속에서 알 수 없는 분이 막 치고 나오면서 너무 화가 나는거에요. 막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 “저 안.미.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걸 보며 엄마가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습니다.

 

정 말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어떻게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 섬겼는데,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이러실 수 있어요?’하는 원망이 마음에서 폭발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이 도망간 걸 보면서 마음 속으로 믿음 없다고 비난했던 저였는데요, 그땐 제가 정말 그러고 싶더라구요. 의심과 원망이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사 람들은 하나님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위로하면, 저도 밖으로는 ‘아멘 아멘 하나님이 선하게 인도하시겠죠’ 했어요. 정말 믿어서라기보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제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어요. 의대 간다고 입으로는 떠들어놓고 막상 점수 안 나와서 못 간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핑계로 숨어보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눌러놓았던 의심들이 다 터졌고, 머리는 너무도 복잡했고, 예수님에 대해 생각만 하려고 하면 온갖 의심들이 다 들어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 때부터 저는 혼미한 드라마와 영화, 판타지소설, 스마트폰에 중독되듯 빠져들었습니다. 매일 매일을 새벽 4시가 넘도록 어둠 속에서 pmp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판타지소설을 눈이 빠지도록 보았습니다. 부모님이 새벽기도 가시는 시간이 되시면 저는 들킬까봐 그제야 잠들었습니다.

 

그래도 주일이 되면 꼬박꼬박 교회에 가고 찬양단도 계속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신앙 좋다고 인정받았던 이미지가 있는데 이걸 한 방에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제 마음은 이미 부스러져 있었습니다.

 

저 는 그렇게 춘천교대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외지로 가면 위험하다 싶으셨는지 춘천한마음교회 대학생기숙사에 들어가라고 하셨고 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새벽기도도 하고 말씀을 듣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매일의 새벽기도와 말씀 기록 훈련을 받으면서 저는 드디어 제 신앙생활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렇게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순교자의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주를 위해 죽겠다고 했던 말이 진심이었거든요. 그런데 왜 나는 정말 내가 용납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딱 부딪치니까, 하나님과 내 뜻이 딱 엇갈리니까 제자들이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던 것처럼 내 마음에서 미련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게 의문이었거든요.

 

저 는 사도행전 17장 31절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알 것 같았어요. 사도행전 17장 3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증거가 있다는 말씀을 딱 읽는데, ‘그럼 나는 지금까지 무슨 증거로 믿었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니 나의 감격, 내 나름의 체험들, 내가 기준이 되는 사람의 증거로 믿으려고 했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흔들리니까 기준이 흔들리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나님의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하나님의 증거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구요, 부활이 증거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제가 교회 지체분이 어떤 형제님과 교제를 하는 것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왜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증거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형 제님은 아마 제 딸을 잘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형제님과 약속을 하기를, 내일 오후 5시에 한마음교회 정문 앞에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한 쪽은 반 팔, 한 쪽은 긴 팔 옷을 입히겠다고 약속하고, 한 쪽 발에는 샌들, 한 쪽 발에는 운동화를 신기겠다고 약속하고 그대로 입혀서 보낸다면 어떠시겠어요? 제 딸을 금방 알아볼 수 있으시겠죠. 약속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도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을 보내실 때도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약속대로 보내셨다고 하시면서 이 구약성경이 그 약속들로 가득 차 있다고 이야기 하시는 거에요.

 

구 약성경에 수많은 예언들로 약속을 해두셨다는 거에요. 이 말씀을 듣는데, 많은 약속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예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졌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예언을 해두셨더라구요. 오직 하나님이 오셔야만 이루실 수 있는 예언을 하셨더라구요. 그게 바로 죽음을 이길 거라는 부활의 예언이었습니다. 구약에 보니까 사망을 영원히 멸할 것이다, 주의 거룩한 자가 썩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예언을 하셨더라구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정말 그 예언대로 죽으시고 3일 만에 죽음을 뚫고 부활하셨다는 거에요.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거에요! 이게 역사적인 사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사실이 아니었다면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만든 거짓말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부활을 전할 리가 없잖아요.

 

예 수님이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알고 보니 제자들이 생명 걸고 전했던 것도 이거더라구요. 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똑같이 말하더라구요.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근데 베드로가 이 부활을 전할 때 설교를 듣는 유대인들이 어쩔줄 몰라하면서 회개하더라구요. 왜냐면 그들은 부활이 보통사건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에요. 부활하는 분이 약속대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걸 유대인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니까 난리가 난거에요. 부활이라는 사건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었어요. 단순한 교리도 아니었어요. 나의 창조자께서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증명하신 사건이었어요! 전능자가 인류역사 속에 발도장을 찍고 가셨다는 증거였어요! 부활하신 걸 보니까 진짜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더라구요!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더라구요! 이게 딱 알아지니까 저도 그 유대인들처럼 어쩔 줄 모르겠더라구요.

 

사 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큰 죄를 짓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악하게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신앙생활 했으니까, 주를 위해 달려왔으니까. 저처럼 신앙생활 열심히 했던 사람은 크게 회개할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는 것’이 아닌 ‘믿는 것’이 되는 순간, 내가 나의 주인 앞에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가 입으로만 주여주여 하는 사람에 포함될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 때 딱 보여진 제 모습은요, 신앙생활 열심히 해요.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뭔가 다 열심히 하는데, 마음 중심에서는 하나님한테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에요. “하나님, 당신이 내 인생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이만큼입니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더 이상 개입하지 마세요. 솔직히.. 내 시간, 내꺼에요. 내 돈, 내꺼에요. 내 인생! 내꺼에요.”이렇게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매일 부르면서도 자기가 주인인 사람, 결국은 창조자가 필요없는 사람! 그게 저였습니다.

 

게 다가 하나님을 내 인생 내 꿈대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종으로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예수님의 손은 잡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막 잡아 끌면서 “왜 따라와주지 않냐고! 왜 이 길로 순순히 따라오지 않냐”고 할퀴고 발악하는 마귀와 같은 자였습니다. 나의 원래 주인이 이 땅에 찾아오신 것이 알아지니까, 내가 주인을 버리고 스스로 주인노릇하며 살았던 것이 제일 무서운 죄더라구요.

 

정 말 어쩔 줄 모르겠더라구요. 몸둘바를 모르고 있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로마서 14장 9절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너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내가 죽었다. 너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내가 부활했다. 내가 부활했다. 이제는 충분하지 않으냐? 내가 부활했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 이제는 내가 너의 참 하나님으로, 너의 인생의 진짜 주인으로 들어가도 되겠느냐?” 그렇게 물어보셨고, 온 마음으로 지금까지 제가 주인이었던 것을 회개하고, 저의 주인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하 나님이 살아계신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 이것을 고민했던 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더 이상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가치관, 생각, 결정, 일상이 저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었어요. 제가 그 말씀을 딱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죽어 마땅한 마귀같은 내게도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너무도 감사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제가 다니고 있는 춘천교대 캠퍼스, 버스, 지하철, 길거리에서 어디가 되었든 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뵐 때까지 전능자가 모든 사람에게 주신 너무도 기쁜 소식, 너무도 기쁜 예언의 성취,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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