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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31)] 96. 아르헨티나(Argentine)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31)] 96. 아르헨티나(Argentine)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Iguaz Falls, Argentine). ⒞시사타임즈
▲(아르헨티나 지도)(아르헨티나 위치). ⒞시사타임즈
▲< 국기 > 밝은 하늘색과 백색으로 가로 띠를 구성하고 중앙에 태양(Sun of May)을 의미하는 태양을 그려 넣음. < 국장 > 악수하는 손은 주들의 연합, 프리기아 사람을 상징하는 모자가 창 위에 씌워져 있고, 타원 주변에는 월계수 잎.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아르헨티나는 남미 대륙 남부에 있는 연방 공화국이다.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남북 최장거리는 3,700㎞로 스페인어 사용국가중 가장 크다.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와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조인빌 섬을 포함 남극의 일부도 영토이다. 팜파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쪽과 남쪽에 펼쳐진 중앙의 대평원으로 비옥한 땅이며 쇠고기·양모·밀·옥수수 등을 산출한다. 칠레 국경 지역에는 6962m의 아콩카과산은 남반구 서반구에서 최고봉이다.

 

The Argentine Republic is in South America, claiming sovereignty over part of Antarctica, the Falkland Islands and South Georgia and the South Sandwich Islands. It is the largest among Spanish-speaking nations. Europeans first arrived with the 1502 voyage of Amerigo Vespucci. The first European, Juan Díaz de Solís, arrived at Río de la Plata in 1516. Spain built the Viceroyalty of Peru, encompassing all its holdings in South America. Argentin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issued by the Congress of Tucumán in 1816. José de San Martín made the Crossing of the Andes, securing the independence of Chile.

  

1. 국명(Country) : 아르헨티나 (Argentine Republic)

2. 수도(Capital) :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3. 면적(Territory) : 2,780,400㎢

4. 인구(Population) : 45, 120,000명

5. 국민소득(GNI) : US$10,000불 

6. 언어 : 스페인어 (Span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810.5.25

 

▲(수도 Buenos Aires). ⒞시사타임즈



탱고와 팜파스의 땅, 아르헨티나

 

팜파스 푸른 초원 끝없이 펼쳐지고 

라 플라타나 만이천리를 흐르고 흘러

은의 나라 이루었네 

이름하여 아르헨티나라네

 

안데스에 우뚝 솟은 아콩카산 

7000m 솟아올라 

서반구 남반구 상상봉일세

부에노스아이레스 저만치 있네

이구아스 폭포소리 가만 들리네 

   

Jose de San Martin 장군의 호통소리 

스페인이 놀라네

아르헨티나 독립하네 

칠레 페루도 함께 

 

20세기 초 경제부국

20세기 말 국가부도 모라토리움

모든 나라 타산지석 배우네

 

후안 페론 노동자가 열광하고

에비타의 약자 사랑

사회복지 꽃 피웠네 

 

골목마다 축구 신동

광장마다 탱고 선율

 

우리는 항상 연대한다

우리 영혼과 육체의 자유를 위해!!!

 

 

Land of Pampas and Tango, Argentine

 

How endlessly Green Pampas stretches down 

4800km runs and runs down La Platana into the Atlantic

Searching for silver 

It is called as Argentine, Land of Silver or Platana.

 

How high Mt. Aconca in the Andes

Being 6,962m,

The highest in the western and southern sphere

Buenos Aires can we see over there

Iguaz Falls sound can we even hear

  

How thunderous General Jose Martin's voices are!

All Spaniards are surprised

Argentine being independent

Chile and Peru, together

 

Wealthy country in the early 20th century

Nearly National Moratorium in the late 20th century

Being a valuable lesson to all other countries.

 

Juan Peron roused all laborers to enthusiasm

Evita's love for the weak

Social welfare got bloomed full.

 

All the kids in the streets are prodigies for football

All the men in the squares are prodigies for tango

 

We will be united, always

For the freedom of our body and soul!

 

 

1. 아르헨티나 약사

 

아르헨티나에 최초로 인간이 정주한 증거는 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되며 기원전 11,00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국가 없이 인디오들이 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파차쿠텍 왕이 통치하던 잉카 제국은 1480년에 공격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북서부를 정복해서 코야수유 지역에 포함시켰다. 과라니족들은 유카, 고구마을 경작하였다. 중부와 남부 지역(팜파스와 파타고니아)은 유목민들이 지배했으며 17세기에 마푸체인들이 통일시켰다. 

 

1516년 이 땅에 유럽인들이 들어왔다. 스페인은 1542년, 남아메리카 대부분을 아우르는 페루 부왕령을 설립했다. 그들이 현재 아르헨티나 지역에 처음 정착한 것은 1527년 파라나 강 근처의 지역이었다. 그들은 15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영구 식민지를 건설했으나, 원주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스페인은 15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영구 식민지를 다시 건설하였다. 

 

1810년 5월 25일 페르디난도 7세가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쫓겨났단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들은 1차 의회(First Government Junta, 5월 혁명)을 조직했다. 현재의 아르헨티나를 이루게 되는 두 나라가 생겼는데, 남아메리카 합주국(1810년)과 자유 연맹(1815년)이었다. 파라과이는 1811년 독립을 선언하며 분리했다. 호세 데 산 마르틴이 1814년에서 1817년 사이에 군사 작전을 지휘하면서 점차 독립은 현실이 되었다. 산 마르틴과 그의 군대는 1817년 안데스를 넘어 칠레와 페루의 왕당파를 무찔러 독립을 공고하게 다졌다. 1816년 7월 9일 투쿠만 의회가 소집되어 스페인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1825년 볼리비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1826년에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발발하고 1828년에는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정전을 맺고 그 결과 시스플라티나 주가 우루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1870년대부터 해외 투자와 이민자들이 밀려 들어오며 농업 등이 근대적으로 발전했고, 1880년과 1929년 사이 아르헨티나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여 당시 세계적으로 농업 수출 경제로 세계 10대 부국이 되었다. 

 

1946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사회 및 교육 정책을 폈으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서 노동자 계급이 성장하였다. 그의 아내 에바 페론(에비타)은 페론의 두 번째 임기까지 영부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페론의 성공으로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거물이었다. 1947년 그녀는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복지를 실시하여, 에비타는 무뚝뚝한 페론과 그의 지지자 사이의 "사랑의 다리"로 여겨졌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을 얻어냈으며, 페론주의 여성당을 창립하기도 했다. 

 

결국 군사 정권은 1973년 자유 선거를 수용하였고, 페론은 스페인에서 다시 돌아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페론은 1974년 7월에 죽고, 그의 셋째 부인이자 부통령 이사벨 페론은 남편의 뒤를 승계했다. 이사벨 페론은 페론주의자 파벌 사이의 타협으로 선택되었으나, 1976년 3월 24일 군사 쿠데타로 이사벨도 축출됐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일명 국가 재건 과정)은 1982년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벌였으나 패하고 1983년 민정 이양이 이뤄지고 선거를 치뤘다. 이어 라울 알폰신 정부는  1989년 통화 위기로 물가가 15배나 뛰자 책임을 지고, 그는 5개월 일찍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새로 대통령에 선출된 카를로스 메넴은 사유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으며, 1990년에 두 번째 하이퍼인플레이션 이후 경제학자 도밍고 까발로를 기용하여 1991년 페소화 환율을 달러화에 고정시켰으며, 시장 기반의 정책을 추진해 사유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무역 장벽과 기업 규제를 철폐했다. 이런 개혁 덕분에 1990년대 거의 내내 물가 안정을 이루면서 투자와 성장 확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페소화는 시장에 달러화가 밀려들어와 제 가치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외채가 다시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1998년 일련의 국제 금융 위기가 닥치고 고정 페소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면서 점차 경제 위기로 빠져들었다. 경제 안정에 대한 기대는 갑자기 무너졌으며, 그의 임기말인 1999년 누적된 문제들과 부패 보고로 메넴은 인기를 잃었다. 

 

후임 대통령 페르난도 데 라 루아는 2001년 12월 20일 1890년 대불황 이래 최악의 사회 및 경제 위기에 봉착하여 대규모 폭력 시위가 일어나자 데 라 루아 대통령도 사임하였다. 

 

아르헨티나는 2주 동안 세 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웠으며, 2002년 1월 2일 입법 의회가 에두아르도 두알데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하면서 극에 달했다. 아르헨티나는 해외 채무에 대해 채무 불이행(default)를 선언했으며, 11년간 지속된 페소화의 달러화 연동은 폐지되었고, 이로써 페소화가 크게 절하되고 인플레이션을 막았다. 중도 좌파 성향의 페론주의자 두알데는 2002년 말까지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실질 임금이 지난 60년간 최저치를 보이면서 금융 및 사회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2003년 5월 자유사회주의 페론주의자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산타크루스 주지사가 대통령에 선출됐다. 환율의 평가절하 정책 덕택에 정부는 산업 부흥했으며, 수입대체(import substitution)와 수출 증가에 기반을 둔 새 정책을 실행했고, 재정과 무역 면에서 안정적으로 흑자를 보였다.  또한 2005년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모든 외채를 갚았다. 네스토르 키르츠네르가 200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상원의원이 출마하여 당선됐다.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직접 선거로 뽑힌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됐다. 알베르토 앙헬 페르난데스(Alberto Ángel Fernández, 1959년 4월 2일 ~ )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직 대통령을 그의 러닝메이트로 영입하고 2019년 10월 27일에 선거에서 승리하여 2019년 12월 10일에 아르헨티나 공화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집무를 시작하였다. 

 

참조 영상 1. (아름다운 세계) : https://youtu.be/76dMor10LL0

                2. (KOICA와 평화마라토너) : https://youtu.be/t0BR3hnENfw

                3.(아르헨티나) : https://www.youtube.com/watch?v=mo5ifPrHwcI

 

 

2. 아르헨티나에서 

 

▲(미주대륙 최고봉 아콩카과 산, 6,962m). ⒞시사타임즈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 지역에는 6,962m의 아콩카과산은 남반구와 서반구에서 최고봉이다.
 

 

▲(아르헨티나 퓨마). ⒞시사타임즈


아르헨티나 대표적 관광지로는 이과수 폭포와 파타고니아 빙하다. 세계 최대인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지역, 이과수 강과 파라나 강과의 합류점에서 상류 쪽으로 23㎞ 지점에 있고, 편자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82m이고, 너비는 북아메리카에 있는 나이애가라 폭포의 4배인 4㎞이다. 낙차지점에 있는 절벽 가장자리의 숲으로 뒤덮인 많은 바위섬들로 인해 높이 60~82m 정도 되는 275개의 크고 작은 폭포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과수라는 말은 거대한 물이라는 원주민 말이다. 관광객들은 아르헨티나 쪽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폭포 안쪽을 오를 수 있으며, 브라질 해변에서는 폭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남아메리카 남부 콜로라도 강 이남 지역에 있는 파타고니아는 넓게 아르헨티나령과 칠레령으로 나뉘죠. 파타고니아의 어원은 1520년 이 지방을 탐험하던 마젤란이 원주민 발자국을 보고 이름을 붙인 '커다란 발' 즉 “거인”이라는 뜻이다. 파타고나아는 자연적으로는 파타고니아 안데스와 파타고니아 대지로 나누는데, 파타고니아 안데스는 해발 고도 3500~3600m의 높은 산이 산재해 있으며, 남쪽 끝 지역에서는 2000m 안팎으로 낮아집니다. 파타고니아 대지는 안데스 산맥의 많은 지맥이 대서양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낮아진 대지이며 해안에 낭떠러지가 솟아 있는 곳이 많고 해안선은 단조롭다. 

 

▲(이과수 폭포). ⒞시사타임즈


파타고니아의 특징은 빙하로 크고 작은 빙하가 수십개 이상 있다. 온난 빙하에 속하는 파타고니아의 빙하는 안데스 산맥에서 내리는 많은 비가 빙하를 만들었다. 빙하가 녹은 물이 갇힌 아르헨티노(Argentino)호, 비에드마(Viedma)호 등의 빙하호가 분포해 있다. 특히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파타고니아 대륙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지정되었으며 빙하 중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꼽혀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Diego Maradona) (Lionel Mesi). ⒞시사타임즈
▲(파타고니아 페라토 모레노 빙하). ⒞시사타임즈
▲ (Mendoza). ⒞시사타임즈
▲(대통령 부부 Juan Domingo Perón, Eva Perón, 1948). ⒞시사타임즈


(97번째 나라 파라과이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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