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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종교 ] 설교 : 하나님 유업의 실현 ②

[ 종교 ] 설교 : 하나님 유업의 실현 ②



[시사타임즈 = 여주봉 신갈 포도나무교회 담임목사]

 

온전한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경우를 보면 그가 사는 유일한 이유가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며 하나님을 구하는 거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시 편 27편 4절에서 그 부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영어 N.I.V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One thing I ask of the LORD, 한 가지를 내가 주님께 구한다. this is what I seek: 이것이 내가 찾는 것이다.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내가 내 평생의 모든 날 동안 여호와의 집에 거하면서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to seek him in his temple. 그분의 집에서 그분을 찾는 것이다. 다윗이 구한 한 가지는 많은 것 중에 첫째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다윗의 유일한 열망이었습니다.

 

다 윗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이었습니다. 시편의 많은 부분이 다윗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 시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귀한 예배를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가 자기 성으로 들어올 때, 얼마나 기뻐하며 춤을 추었던지 옷이 벗겨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외부적인 모양이 아니라 그의 삶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 하나님 그분이 자기의 모든 것 되는 것입니다.

 

그 러면 왜 다윗에게 주신 예배의 영을 부어달라고 기도했냐면, 오늘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배를 순서와 절차를 따라 정해진 시간 내에 마치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 개념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윗처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더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회복된 교회의 예배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으로 만족하지 말고, 다윗과 같은 은혜를 우리에게 부으셔서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유업의 온전한 성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신가를 주시하여 보고, 자신의 삶을 드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섬기는 것이 중요한 반면에, 이제는 막연히 기다릴 때가 아니라 온전한 약속의 성취를 위해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칠 중성령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은혜를 부어달라고, 그러한 무리로 세워달라고,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세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또 뭘 말씀하시냐면 칠중성령의 역사를 부어달라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 경에 보면, 말세지말에 칠중성령의 역사가 운행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스가랴 4장,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보면 그러한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칠중성령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사야서 11장을 봅니다. 예수님에 관한 예언입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여기 여호와의 신 곧 그러면서 여섯 가지밖에 나오지 않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원래 히브리 성경에는 여섯 가지가 아니고 일곱 가지가 쭉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러면 왜 칠중성령이라고 하느냐? 성령님은 한분이십니다(엡4:4). 그리고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도 되고, 권능의 하나님도 되고, 거룩한 하나님도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제 이름이 여주봉인데, 여주봉은 저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한자의 의미는 있지만 그 의미가 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그 한자의 의미가 담겨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지어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칭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원어성경에는 인격이라는 단어가 없고, 대신에 이름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왜냐면 이름이 성품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이레’라 그러면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한분이신데, 그 성령님의 이름까지도 표현해 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신, 야훼의 신이라는 말은 주권자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에게 그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그 어깨에 그 정사와 권세를 메었고,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권자 하나님의 영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에 대해서 여섯 가지가 나오는데 둘씩둘씩 짝지어져 있습니다.

 

첫째, 지혜와 총명의 신 (gray counselor)

‘지 혜와 총명의 신’이라는 말은 gray counselor, 위대한 상담자로서의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길을 보이시는 위대한 상담자요 보혜사이십니다. 신명기 34장 9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 지혜의 신이 여호수아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신이 임했을 때, 요단강 앞에서 어떻게 그 요단강을 건널지, 여리고 성은 어떻게 무너뜨릴지 알게 하시므로 놀라운 승리를 쟁취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에게도 지혜의 신이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단9:22)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지혜의 신이 함께하시매 모든 꿈을 해석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그 시대에 무엇을 하고 계신지, 어떠한 처방이 필요한지를 알게 하시고, 총리로 한 나라를 하나님 안에서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지혜와 총명의 신이라는 것은 gray counselor, 위대한 상담자, 지도자, 인도자, 보혜사로서의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 (true worshipper)

‘지 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는 말은 true worshipper, 진정한 예배자의 영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에게 주셨던 은혜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단하나의 유일한 열망이요 소망이 되어지는, 그리고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자신의 온 삶으로 경배하는 그것이면 충분한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모략 과 재능의 신 (mighty warrior)

‘모 략 과 재능의 신’이라는 말은 mighty warrior, ‘유능한 전사’ ‘전쟁의 주관자’ ‘강한 전사’로서의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에게 이 영이 함께 하실 때,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뇌도 살도 다 썩어서 냄새나는 몸이 다시 모든 기능이 다시 살아나서 회복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군대귀신을 꾸짖었을 때 그 귀신이 굴복하고 떠나간 사건, 그게 ‘모략과 재능’ 능력의 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에는 이 칠중성령의 역사가 다함께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한분이시되 부분적으로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이 칠중성령께서 함께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모델이십니다.

 

이 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그분의 소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그래서 아버지 일이 자신의 일이고, 그 아버지의 일이 자기의 양식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true worshipper, 진정한 예배자의 영과,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깨에는 정사와 권세가 있었고, 주권자이셨고, 삶 속에 지혜와 총명의 신이 함께 하시므로 순간순간 하나님의 길을 아셨고, 하나님의 지혜가 삶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고, 강한 능력의 신이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러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 어떤 사람은 능력은 강하게 나타나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는 경우도 너무나 많고, 그래서 은사는 나타날지 몰라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하지 않고, 자기 방법 자기 생각으로 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예수님의 삶 속에는 칠중성령의 역사가 임하시되 성경에 보면 한량없이 함께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능력만 하더라도 너무나 놀랍지만, 우리가 이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칠중성령의 역사가 한량없이 부어짐으로 치우치지 않은 진정한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죽은 자도 살리는 그래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회복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실현시키고 계신 유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분별하여 섬기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하나의 유업들, 우리에게 쟁취케 하시는 유업들, 그 하나하나의 은혜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진실로 주님을 경배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에 출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해서 온전한 유업이 우리 가운데 주어질 그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더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부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달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한량없는 칠중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예수님 종류의 삶과 사역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우리가 더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 비전을 다시 선명하게 인식하고, 그 목표를 보고 더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 지막으로 우리가 이러한 시점에서 늘 유념해야 할 것이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지금 우리에게 이 유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이 유업은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자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데, 주안에 있다는 말은 자기 의가 아닌, 율법주의적인 사고와 가치관이 아닌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믿음으로 의지하며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꿔 말하면 십자가의 복음과 신앙의 본질에 서는 것이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4장은 하나님 백성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잉 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이 사야서 54장 1절을 갈라디아서 4장에 인용하면서 이삭과 이스마엘 둘을 대조하면서 이삭으로 대면되어지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이사야서 54장 1절이 이루어질 거라고 갈아디아서 4장은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마엘로 대변되어지는 율법주의 거짓신앙은 어떠한 유업도 받지 못할 것이니 너희 가운데 철저히 물리치라고 말씀하는 것이 갈아디아서 4장입니다.

 

우 리가 아는 대로 안디옥 교회 가운데 주의 손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셨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역사하셨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특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거기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 은혜의 징표들을 보고 그들에게 권면하기를 굳센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유업이 실현되어지도록 섬겨야 되고, 온전한 유업의 실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되어지는 삶 가운데 지속적으로 더 머물러야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머물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그분이 마치실 겁니다.

 

그 러므로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때, 그 목적과 의미를 더 선명히 인식하고 그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더 놀라운 은혜가 함께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시작하신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온전히 이루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남김없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프로필

 

여주봉 목사

 

미 캘리포니아 침례대학 졸업

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

미 싸우스웨스턴 신학대학원 졸업

 

침례신학대학 강사 역임

수도침례신학대학 강사 역임

하늘빛교회 담임목사

현 신갈 포도나무교회 담임목사

    새물결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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