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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볼티모어의 서』의 화자는 전작인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마찬가지로 작가 마커스 골드먼이다. 이 소설에는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과 ‘몬트클레어 골드먼’ 가족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마커스 골드먼의 큰아버지 사울이 사는 곳이 ‘볼티모어’이고 아버지 네이튼이 사는 곳이 뉴저지 주 ‘몬트클레어’이다. ‘볼티모어 골드먼’ 과 ‘몬트클레어 골드먼’은 편의상 사는 지역을 앞에 붙여 부르게 된 호칭이다. 소설의 제목이 『볼티모어의 서』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볼티모어 골드먼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인 마커스 골드먼은 데뷔작이 큰 성공을 거두며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작가이며 볼티모어 골드먼들이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다가 연이은 비극적 사건으로 몰락해가는 이야기를 두 번째 소설에 담아내고자 한다. 마커스 골드먼은 어린 시절부터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들 가족 모두와 인간적으로도 매우 돈독한 사이였지만 몰락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사전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마커스 골드먼은 이 소설을 통해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가족사를 생생하게 되살리는 한편 그들이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가족구성원과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추적한다.
한때 눈부신 성공시대를 열었던 가족,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던 안정되고 여유로운 삶, 무엇하나 부족할 게 없을 만큼 풍요를 누리던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들을 몰락으로 치닫게 만든 균열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구성원들 간의 두터웠던 믿음과 사랑은 왜 차츰 반목과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을까?
사회적인 성공, 경제적인 풍요,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된 가족애로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었던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이 지극히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차츰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각자의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작은 위기에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할뿐더러 미래를 살피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이미 균열은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볼티모어 골드먼 가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찾아야 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고, 위기와 도전 앞에서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일깨운다.
마커스가 어릴 때만 해도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은 위기나 불행 따위는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을 만큼 완벽하게 안정적이었다. 어린 시절, 마커스는 사촌 형제들인 힐렐과 우디와 더불어 ‘골드먼 갱단’을 결성하고 영원한 우애를 맹세한다. 유년시절을 기쁨과 환희로 물들였던 ‘골드먼 갱단’ 시대는 매력적인 여자아이 알렉산드라 네빌이 등장하면서 균열을 맞는다. 세 아이는 한 여자를 두고 사랑의 경쟁을 시작하면서 차츰 오해와 불신이 누적되어 간다.
마커스는 한 여자를 두고 벌인 경쟁에서 승자가 되지만 어린 시절부터 끈끈하게 이어온 세 사람의 우애는 질투심이 개입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어린 시절, 영원한 결속을 맹세했지만 결국 환상이었다는 자각과 함께 마주한 현실은 잔인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그들이 품게 된 죄의식이다. 죄의식이 그들을 옭아매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 행위에 대해 속죄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쫓기게 된다. 우디와 힐렐의 도피여정, 그 어처구니없는 행로가 바로 그 강박증의 표현이다. 그 무모한 도피 행로에서 그들 둘은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조엘 디케르는 이 소설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실망, 소외감, 좌절, 슬픔, 분노 따위의 감정이 세상에서 가장 절친하다고 믿었던 주변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파생되고 축적되어 가는지 묘사한다. 볼티모어 골드먼 가의 믿음직한 가장이자 늘 소송에서 승승장구하는 변호사, 이미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재력가,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인 사울 골드먼이 차츰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공 역시 삶의 한 과정일 뿐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의 몰락은 겉모습 안에 감춰진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이기도 하다. 욕망에 휩싸인 사람일수록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오게 마련이니까. 큰아버지가 자존심에 눈이 멀어 엉뚱한 곳에 거액을 기부하고, 힐렐과 우디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겨 질시하기 시작하고, 큰어머니가 홀로 외로움을 느끼다가 절망에 빠져드는 모습은 더 이상 서로를 지극히 신뢰하고 사랑했던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의 면모와 거리가 멀다.
마커스는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 성공을 거둔다. 그가 그토록 선망해 마지않았던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실패가 그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열어준 셈이었다. 마커스는 사촌들 간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어 매력적인 여성 알렉산드라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성공의 길을 걷는다. 그의 인생 역시 영원한 행복 안에 머물게 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의 삶에서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밀어닥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위기는 필연적이며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큰아버지 사울은 죽음을 앞두고 마커스에게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삶에서 위기와 불행은 필연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끝내 좌초하지 않고 생을 지켜가는 것이 아닐까?
작가 조엘 디케르
2012년 최고의 화제작을 낳은 프랑스 문단의 샛별. 1985년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글쓰기에 관심이 높았고, 학창 시절 매년 여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 체류하며 미국 문화를 접했다. 제네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005년 스무 살에 발표한 첫 단편 「호랑이」로 ‘국제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발을 들였다. 스물네 살에 완성한 첫 장편소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날들』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SOE 특수작전국에 소집된 젊은이들의 인간적 고뇌와 로맨스를 다룬 작품으로, 조엘 디케르에게 2010년 ‘제네바 작가상’을 안겨주었다.
2012년 9월 출간된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 속에 글쓰기와 문학, 소설가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과 미국 현대사회의 단면을 능숙하게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과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 ‘프랑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조엘 디케르는 이 작품을 통해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인정받으며 2012년 한 해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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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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