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528)] 콩고의 판도라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저 | 정창 역 | 들녘 | 536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에스파냐 문단의 대표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주인공 토머스 톰슨이 대필하는 살인 용의자 마커스 가비의 아프리카 콩고 여정을 담았다. 부를 향한 집념과 약자에 대한 지배욕 등 인간의 갖가지 욕망이 쏟아져 나오고 땅속 괴물까지 올라오는 콩고의 이야기와, 그 욕망이 전이되어 참을 수 없는 갈망에 시달리는 토머스 톰슨과 그 주변 세계 묘사를 통해 이 세상의 하부구조와 그 실체를 추적하고자 했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피뇰의 직업은 그의 서사를 몹시 매혹적이게 만든다.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촘촘하게 짜인 서사 위에 환상적인(illusional) 소재가 가미된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현실이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에는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야말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는 피뇰의 믿음이 담겨 있다.
피뇰은 『콩고의 판도라』 전반에 걸쳐 작품의 주제 의식을 짐작케 하는 몇 가지 설정들을 심어두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대가를 받고 창작력을 착취당하는 노예 작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흑인들의 인권, 전쟁의 참상, 이종(異種) 간에 벌어지는 상호 착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들은 전체 서사를 단순 수식하는 데 그치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서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의미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피뇰은 착취당하는 토머스 톰슨의 일상과 콩고의 지하로 파고드는 마커스 가비의 여정 가운데 자행되는 모든 비인간적인 만행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실체, 그 하부구조를 낱낱이 파헤쳐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간의 갈망까지도.
『콩고의 판도라』의 서술 방식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다. 피뇰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콩고의 판도라』를 통해 자기 작품 세계의 지평을 확장했다. 『콩고의 판도라』는 먼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소설’이다. 또 마커스 가비의 콩고 모험담을 다룬다는 점에서 판타지 장르의 성격을 띠는 ‘모험 소설’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이 책은 후반부에 이르면 다시 드라마틱한 ‘법정 소설’로 바뀐다. 또한 액자식 구성을 갖추고, 그 이야기들이 상호 유기적이라는 점에서 『콩고의 판도라』는 ‘메타 소설’이라고도 총평할 수도 있다. 피뇰은 이토록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결코 난잡하지 않도록 흡인력 있고 매끄러운 서사를 보여주었으며, 풍자와 유머, 해학적 요소를 추가하여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더하여 주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콩고의 판도라』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소개
196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이다.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을 그린 풍자 수필 『어릿광대와 괴물』로 호평을 받았다. 2008년에는 방한해 '2008 서울, 젊은 작가들'에 참석하기도 했다.
뛰어난 화술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첫 소설 『차가운 피부』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만 20만 부 이상 팔리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이 작픔으로 ‘오호 비평상’ 문학 부문상(2003)을 받았다.
두 번째 작품인『콩고의 판도라』는 스릴러, 판타지, 리얼리즘 등 다양한 장르를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은 소설로 피뇰은 이로써 에스파냐 문단의 대표작가로 입지를 굳혔으며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치밀한 구성과 밀도 높은 언어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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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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