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527)]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저 | 장성주 역 | 황금가지 | 568쪽 | 15,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SF에서부터 환상문학,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켄 리우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집 『종이 동물원』. 총 14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2017년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였다.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시절, 선물 포장지를 사용해 종이 동물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중국인 어머니와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짧지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하며 저자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표제작 「종이 동물원」 일본군의 731부대의 잔학성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등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을 SF 환상문학 장르에 녹여낸 작품들과,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춘 수작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수록작 중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과거의 정보와 기억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731부대의 희생자 유족을 과거로 보내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풀어낸 소설이다. 작중 731부대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한편, 관련자의 증언과 일본의 로비, 미국 정치계의 대립 등을 실제처럼 구성하여 네뷸러 상과 휴고 상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할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저자는 코멘트를 통해 수많은 실제 관련자 인터뷰와 기사, 서적, 특히 미국 하원 ‘종군 위안부 관한 하원 결의안 121호’를 의결하기 전에 개최한 청문회를 참고하였다고 밝히면서 731부대의 모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집필했다고 밝힌다. 또한 ‘스스로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켄 리우의 단편집이 일본에서 정식 출간될 때 수록되지 않았으며, 중국 역시 공산당에 비판적인 내용이 나오는 곳을 삭제한 불완전 판본으로 출간되었다.
대체역사소설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은 만일 2차 세계대전 대신 일본이 미국,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조선과 만주를 지배했다면? 이란 설정에서 시작되는 소설로, 강제징용을 통해 불법적으로 노동력을 갈취하고 비밀을 숨기기 위해 징용자들을 몰살시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다룬다. 대만 2.28 사건을 소재로 한 「파자점술사」에선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me gook’으로 받아들인 미군에 의해 ‘gook’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용어가 되었다는 유래를 얘기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미소 냉전 시대의 대만을 소재로 함으로써 한국인에게도 역사적 공감대를 제공한다. 이렇듯 켄 리우는 동북아시아 역사에 관한 관심을 작품에 적극 반영한다.
2019년 국내에 출간 예정인 그의 또 다른 선집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평양성 전투를 다룬 단편과 한글의 모양을 소재로 한 작품이 실릴 예정이다.
켄 리우의 작품은 SF나 환상문학이 대중에겐 어렵다는 통념을 깨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시뮬라크럼」은 어린시절, 특수한 장치로 가상 외도를 하던 아버지를 목격한 딸이 평생을 그를 멀리하게 된 사건을 소재로, 아버지와 딸의 입장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천생연분」은 인공지능에 의해 만날 상대자, 음식점, 업무까지 모두 맡겨버린 미래,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기업이 국가보다 더 강력해진 미래를 다룬다.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인류의 모습은 현재의 스마트폰이 삶의 중심이 된 현대인들에게 흥미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 가득한데, 「즐거운 사냥을 하길」은 강시나 구미호를 잡던 도사의 아들과 구미호의 딸이 20세기 초반, 판타지 시대가 사라지고 증기 과학시대로 넘어가며 새로운 미래 세상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다뤄 판타지와 SF 스팀펑크 장르의 흥미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네뷸러 상 최고소설 부문 후보에 올랐던 「파(波)」는 영생을 살게 된 인류의 머나먼 미래를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다룬다. 휴고 상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모노노아와레」 역시 우주로 나온 인류에 대한 작품이다.
작가 켄 리우 소개
1976년 중국 서북부 간쑤 성의 란저우 시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 후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7년간 일했다. 대학 시절부터 습작을 시작하여 수많은 단편을 썼으나 오랫동안 출판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2002년 오슨 스콧 카드가 편집한 『포보스 SF 단편선』에 「카르타고의 장미」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1년에 발표한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2012년에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 상과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휩쓴 최초의 작가가 됐다.
2013년에는 단편 「모노노아와레」로 휴고 상을, 2016년에는 장편소설 ‘민들레 왕조 전쟁기’ 3부작의 1부 『제왕의 위엄』으로 로커스 상 장편 신인상을, 2017년에는 단편집 『종이 동물원』으로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는 등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창작뿐 아니라 번역에도 힘을 쏟아 2015년 중국 SF 작가로는 처음으로 휴고 상을 수상한 류츠신의 『삼체』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며 낮에는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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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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