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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기고] <충주시의회 천명숙의 담백한 이야기> 사과의 힘이 필요한 때

[기고] <충주시의회 천명숙의 담백한 이야기> 사과의 힘이 필요한 때

 

  

▲천명숙 시의원 (사진제공 = 천명숙 의원실)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기고 = 천명숙 시의원] 일본의 경제보복이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 시작의 이유를 가까운 시일의 대법원 보상 판결에 두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뿌리를 쫓아가면 제대로된 일본의 사과가 없었던 이유를 만나게 된다. 정부 간의 국교 정상화의 과정에서 오간 협정은 존재하지만, 진심의 사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겨우 꺼낸 것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나치의 만행에 무릎 꿇고 사과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도 모자란 사과의 뜻이 있고 없고를 의심할 만한 일이다.

 

감정의 상처는 거부와 분노 그리고 수용과 승화라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단계마다 다음 단계로 이겨내는 힘은 자존감과 사과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원동력이라면 사과는 용서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최근 나는 많은 기자 앞에서 사과하였다. [시민의 날] 기념 행사장에의 2부에 마련된 동충주역 추진 궐기대회가 예정 없이 본식 가장 앞으로 옮겨지는 상황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거친 언사와 행동을 한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개인적으론 시민의 날 행사 본연의 목적에 따라 해야 했으며, 참석한 시민들을 궐기대회에 동원하듯 식전으로 순서를 협의 없이 옮긴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의 날은 시민이 주인공이어야지 특정한 목적을 위한 행동에 들러리 서는 것은 그 사업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논리를 떠나 잘못된 행동이라고 본 본인의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당일 아빠를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현장을 찾은 어린 딸의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상황에 적정한 방법을 찾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 조치하려 했던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많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다. 따라서 회피할 수 있었고, 비공개로 할 수 있었던 사과를 담당 공무원과 충주 1500여명의 공무원, 당일 참석한 시민과 충주시민에게 사과하였다.

 

비밀은 밝혀지면 힘을 잃고, 사과는 하고 나면 편해진다던 말처럼 불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많은 분이 보잘것없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시고 응원을 보내주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사과의 힘을 경험하였다.

 

개인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반성과 사과에 대한 필요성과 시의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5,18민주화운동의 고통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것도 정확한 진상규명과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 이유이며, 세월호의 노랑 리본이 내려지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정치적 진영의 논리만으로 설명하여서는 안된다.

 

검거나 흰거나 하는 양분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사안에 따라 유연한 사고를 하지 않고 상대의 계획이나 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를 하여 갈등을 일부러 부추기는 것과는 크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지만 나쁘게만 볼 것만이 아니며 건강한 사회일수록 갈등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현명한 해법을 찾아간다는 것이 본인의 지론이다.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사고에 갇히는 순간 정반합의 순리는 무너지고 인생의 가치와 스스로의 존엄이 걸린 싸움이 되어버린다.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 아니라면 “옳고 그름”이 아닌 “좋고 싫음” 정도의 감정적 타협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안별로 자신의 상황에 맞게 판단할 수 있으며, 양쪽의 주장속에 타협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좋고 싫음”에 대한 자유로운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어디서나 논쟁할 수 있을 때 성숙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매도하거나, 척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공격성은 위험한 사회의 나쁜 신호의 예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만큼 기초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그만큼 지키기 힘들기에 일찌감치 가르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반성과 사과에 필요한 덕목은 “인정”이다.

 

한때 프랑스에서 유행한 “정답은 없다.”라는 주장은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다. 하지만 그 명제는 곧 정정되었다. 정답은 개개인의 답이기에 누구와 논의 할 문제가 아닌 끝없는 자기만의 정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즉, “정답은 없다.”가 아닌 “정답은 많다.”라는 인식까지 성장하여야 한다.

 

내가 상대에게는 답이 아닐 수 있다는 인정과 상대가 답일 수 있다는 인정이 함께 할 때 더 나은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어떤 정권보다 치열하게 대치하는 정국과 정세 속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을 하다 글을 시작하였다.

 

국제정세에, 국가에 그리고 충주에 산적한 문제와 갈등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고민하며 글을 맺는다.

 

나부터가 확실한 답을 가져야 함이 우선이며, 상대의 답을 존중하는 것이 다음이며, 들어내 놓고 논의하여 현명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전부인 것을 새롭게 다짐한다. 높은 자리와 책임 자리에 앉은 자일수록 더욱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척결하거나, 응징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 될 것이다.

 

모두가 선(善의) 목적으로 행동한다. 그 선의 기준과 방식이 다른 것은 모든 이의 지문이 다루둣 당연하다. 그 다양한 선을 공공의 목적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의견의 존중이라는 단어는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나오는 가장 기초적인 정의이다.

 

군대의 해군, 육군, 공군은 달라도, 육군내에서도 공병, 보병등 병과가 달라도 가장 기초적인 경례와 좌향좌, 우향우가 다르지 않듯, 가장 기초적인 기준 안에서 치열한 논쟁과 갈등은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는 필요과정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과 신뢰는 지난 과거의 경험이 필요하며, 잘못된 기억과 상처는 누가 먼저랄 것 없는 담백한 사과만이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신뢰는 거미줄과 같아 매일 감기를 게으리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이야기속에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천명숙의 다짐을 담아본다.

 

글 : 천명숙 충주시의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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