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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박형택 목사, “메시아닉 쥬 사상은 이단적 사상”②…메시아닉 쥬의 문제점 비판

박형택 목사, “메시아닉 쥬 사상은 이단적 사상”②…메시아닉 쥬의 문제점 비판

메시아닉 쥬의 주장은 과거 유대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고 구약의 율법준수로 돌아가자는 것으로서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고 그림자로 복귀하자는 이단적 사상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강화도로얄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세이연 총회 이틀째 저녁에 가진 세미나에서 ‘메시아닉 쥬의 이단성 진단’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박형택 목사는 “메시아닉 쥬 사상은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적 사상이다”면서 메시아닉 쥬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박 목사가 언급한 메시아닉 쥬의 문제점은 “잘못된 성경해석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왜곡된 사상, 교회에 대한 왜곡된 시각, 기존교회를 대체신학으로 치부하는 편견, 유대 율법주의로의 회귀, 세대주의 종말론에 매몰됨, 주님의 재림에 대한 곡해, 신사도운동사상과의 결탁, 현존하는 기성교회의 폄하” 등 9가지이다. 박 목사가 언급한 9가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메시아닉 쥬이 이단성에 대해 강의하는 박형택 목사 (c)시사타임즈

1. 잘못된 성경해석

 

메시아닉 쥬에 속한 사람들의 성경해석은 문자적이고 자의적 해석과 자신들의 논리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가져다 붙이는 짜깁기(preformation)식 성경해석과 비유풀이(parabolic) 해석이 많다. 그 중에서 중요한 몇가지 잘못된 성경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마태복음 24:32-34의 해석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는 말씀에서 메시아닉 쥬는 “무화과는 이스라엘이요 여름은 그 해의 끝이요 무화과나무 잎사귀는 이스라엘의 영적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요 무엇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해석을 한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비유를 하면서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비유로 설명하는 것인가? 비유는 전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뿐이다. 주님의 재림의 징조를 무화과나무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시며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것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나타내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뿐 아니라 모든 나무의 싹이 나고 잎이 나면 여름이 온 것을 아는 것처럼 주님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 징조를 보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줄을 알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무화과를 이스라엘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다.

 

2) 로마서 11:25-26의 해석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에서 “온 이스라엘”는 혈통적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것이 메시아닉 쥬이다. 메시아닉 쥬의 리더인 키스 인터레이터(목사)는 계시록 7장의 144,000을 환란 중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로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짊어진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있었고 오늘날도 이스라엘 안에 남은 자들이 7천명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키이스 인터레이터, <그 날이 속히 오리라> 두란노서원. 2004. p.126.).

 

그러나 로마서 11장은 혈통적 이스라엘에 대하여 설명하는 내용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는 문제에 대하여 엘리야 당시의 하나님이 남겨둔 7천명을 말한다. 엘리야가 송사한 전 이스라엘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과 대조한다. 그런데 그 7천명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로 표현한다. 여기서 분리를 하는데 “택하심을 입은 자”와 “완악해진 남은 자”로 구분을 한다.

 

또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로 나누어 다시 설명한다. 돌 감람나무는 구원받은 이방인을 설명하고 참 감람나무는 택함받은 남은 자 이스라엘을 설명한다. 이방인 신자가 혈통적인 이스라엘에 접붙임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이방인중에서 구원받은 자를 말하고 넘어지고 완악해진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로서 구원받지 못한 자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26의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지 혈통적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혈통적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과 이방인가운데서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자를 말씀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11장의 내용은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내용이 아니다. 로마서 10:19-21의 말씀과 같이 아무리 혈통적 이스라엘이라도 순종치 아니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아니다.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경에서 주지하지 않는 사상이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나다나엘을 보면서 “저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는 내용을 보면 혈통적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스라엘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요1:37)

 

3) 사도행전 2:17-21의 해석

메시아닉 쥬는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요엘의 예언 성취로 보지 않는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강림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대하여 일부 어떤 사람들이 조롱하면서 술취했다고 하자 오순절에 나타난 현상이 바로 요엘서 2:28-32의 성취임을 증거 하였다. 왜 베드로 사도가 오순절이 요엘서에 예언의 성취라고 증거하는 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은 이른 비와 늦은 비 성령이라고 하면서 이른 비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말하고 늦은 비는 마지막 시대의 성령으로 부흥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윌리엄 브렌험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처음으로 주장되었고 이것이 캔자스시티 예언자 그룹에서, 그리고 빈야드 운동을 거쳐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왜곡된 성령해석이다.

 

4) 에베소서 2:15의 해석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에서 한 새 사람은 메시아닉 쥬인 루벤 도런이 내 세우고 있는 주장이다. 그는 믿음의 자손 아브라함에게는 육의 자손이 있고 영의 자손이 있는데 영의 자손은 이방인들이요 육의 자손은 유대인들이라는 주장한다. 육적인 자손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자손인 이스라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영적인 영역과 육적인 영역이 연합되고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의 문들이 활짝 열려 하늘의 실체가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 사이에서 자유롭게 교류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완전하게 연합된 유대인과 이방인의 공동체가 바로 한 새사람이라는 주장이다(루벤 도런, <한 새사람> 이스트윈드 코리아. 2010. pp. 15-16). 세대주의 자들과 메시아닉 쥬는 항상 육체적 혈통적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유대인 중에서나 이방인 중에서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으로 한 몸이요 한 새 사람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이 없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한 새 사람으로서 둘 다 구별이 없이 동일한 성도요 동일한 시민이요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임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둘 다 구별없이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혈통적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연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메시아닉 쥬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5) 사도행전 1:11과 스가랴 14:2-4의 해석

사도행전 1:11은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말하면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과 스가랴 14:4의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앞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산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라는 말씀을 연결시켜 예수님의 재림의 방법과 장소가 감람산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로 재림하는데 육적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이스라엘에 그 분의 정부의 기초가 세워지고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부흥이 일어나면 예수님이 감람산에 재림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가시적으로 재림하는 것은 맞지만 구속받은 백성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때문에 한 지정된 장소로 오시지 않는다. 이것 역시 혈통적 이스라엘 회복과 지정학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주님의 재림과 연관짓기 위하여 만들어낸 사상이다.

 

2.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왜곡된 사상

 

1) 성경이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사상

로버트 하이들러는 로마서 11:15-24의 말씀에서 원가지들은 새로운 언약 메시아닉 유대교이며 접붙여진 가지는 이방인 신자들이며 뿌리는 성경적인 유대교이며 꺾인 가지들은 랍비 유대교를 말한다며 제사장 나라로서 유대민족을 창조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재림전에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로버트 하이들러 <메시아닉 교회 :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WLI코리아 2013. p.46).

 

누가복음 15:11-32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가지고 “이 비유는 탕자를 향한 사랑많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지 않고 유대인들을 향한 교회의 태도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으로 장자는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의 신도들로서 아버지 집에 있는 모든 축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요 작은 아들은 유대인들로 해석한다” 이것을 육신적 혹은 혈통적 이스라엘로 이해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한다. 로마서 11:25-29을 가지고 모든 혈통적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위의 책 pp.22-225, 235. 며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돌아와서 자신들의 메시아를 끌어않을 것이다).

 

그러나 참 이스라엘은 유대인 가운데서나 이방인 가운데서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다. 갈라디아서 3:7-9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9-10에는 이방인 신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의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라고 증거한다.

 

사도행전 1:6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에 대한 질문에 때와 기한의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로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의 확산을 설명하신다. 여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혈통적 이스라엘인가? 교회는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제자들의 생각은 혈통적이거나 지정학적일 수 있으나 주님은 이미 보편적 교회로서 이스라엘을 생각하신 것이다.

 

2) 성경이 지정학적 이스라엘 국가 회복이라는 주장

메시아닉 쥬인 카이스 인터레이터는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국가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1948년 독립하였고 1967년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하나님은 예수님 곧 사람을 택하고 예루살렘 곧 장소를 택하셨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로 오실 것이다. 국민과 영토가 있는 실제적인 나라로 이스라엘 땅으로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 왕위에 오르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면 왕좌가 예루살렘에 존재해야 하고 그 나라의 기반을 형성할 이스라엘 정부조직이 존재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재건은 예수의 재림과 그 분의 왕국이 이 땅에 서는 과정의 일부이다. 예루살렘이 이 세계평화의 중심도시로 나타날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 분의 국제적인 나라의 수도이자 예배의 중심지로 삼으실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그 분의 메시아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키이스 인터레이터. <그 날이 속히 오리라> 두란노서원. 2004. pp.129-130, 181-182.) 라고 주장하며 지정학적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주장한다.

 

루벤 도런은 “이스라엘에 영토가 없다면 종교적인 문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서 현실의 땅에서 성취된다. 유대민족이 세계의 사방에서 돌아오는 것이 마지막 시대의 특성이 될 것이다. 1948년 전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어떤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말이었다면 1948년 이후에는 새로운 국가로 수립되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취했고 유대민족을 그 땅으로 모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경구절을 인용하는데 주로 구약의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내용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 땅의 지정학적 회복과 그 땅으로 자기 백성들을 모아서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왕으로 임하시고 통치한다는 멧시지는 없다. 로마서 9:8은 이스라엘을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로 구분하는 경우는 있지만 영적인 이스라엘과 육적인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않으며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지 않는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고토로 돌아온다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국가 건설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 중에서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모으신다는 의미일 뿐이다.

 

3) 성경이 백투예루살렘 사상을 주지한다는 주장

메니아닉 쥬들의 생각은 사도행전 1:8의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말씀에서 복음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의미하지 않고 복음이 서진을 계속하여 땅끝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백투 예루살렘 사상을 가지고 있다. 복음의 시작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땅 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메시아닉 쥬들 곧 송만석 장로나 최바울과 같이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예루살렘은 세계영적 전쟁의 중심이 되고 마지막은 땅 끝이 되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백투 예루살렘 비전은 성취되어야 할 마지막 하나님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최바울, <백투예루살렘> 도서출판 펴내기. 2008. p. 290.). 백투 예루살렘은 세계선교와 연관되어 있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시도록 재림을 대비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서 보편적인 교회를 말씀하고 있지 지정학적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메시지도 성경에는 없다. 예루살렘이 세계평화의 중심도시가 된다는 성경의 근거도 없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왕이 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성경의 메시지도 없다. 주님께 속한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그 분의 나라를 세우시지 않는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3. 교회에 대한 왜곡된 시각

 

메시아닉 쥬들은 사도들이 세운 초대교회는 메시아닉 교회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고 주장하고 300년이상 교회의 모습은 유대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틴시대로부터 암흑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반유대주의 교회 지도층의 꾸준하고 잔혹한 박해로 신앙속에 남아있던 유대교적 요소들이 파괴되고 유대적 요소들을 잃어버려서 오늘날의 교회는 고통받고 있으며 사탄에게 빼앗긴 것들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로버트 하이들러. <메시아닉 교회 :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WLI코리아. 2013. pp.20-21, 42.). 교회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는 바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개종이었으며 이교 황제의 예배를 위해 발전된 의식들이 교회에 수입되어 교회의 유대적 뿌리들을 잘라내고 그리스 이교의 뿌리를 접붙혔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탄의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에 안식일이나 절기같은 성경적인 유산과 가르침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빼앗긴 축복들과 소유권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로버트 하이들러의 주장).

 

키이스 인터레이터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메시아닉 유대교와 메시아닉 교회는 동일한 것으로서 콘스탄틴 이후 유대교적 유산을 버리고 이교적인 관습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생명과 임재가 떠나갔다면서 중세 종교개혁도 이방인들의 교회의 회복일 뿐 이교화된 관행들과 문화에 의해 동화되었고 천여년 동안 원래 사도들의 종교였던 메시아닉 유대교는 소멸되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회는 죽은 교회라고 여긴다.

 

루벤 도런은 예수님의 교회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태어나고 세상에 출현했으며 이 교회가 이 시대의 마지막에 스라엘에서 영광스럽게 부흥하고 온전해지는 것이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하거나 밀어내거나 분리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안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교회는 혈통적 이스라엘 안에 존재하는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믿고 이방인교회도 혈통적 이스라엘에게 접붙임을 받은 교회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안에서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18에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에서 교회는 혈통적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말하지 않는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하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포도원 비유를 통해서(마21:33-42) “너희(혈통적 이스라엘)는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에 열매 맺는 백성들(택함받은 이방인들)이 받으리라” 는 말씀을 하셨고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한 왕의 비유(마22:1-14)를 통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으로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택함을 받은 자가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임을 천명한 것이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 2:28-29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분명히 증거했다. 3:29-30 에서는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브라함의 아들이 된다고 선언한다(롬3:30). 아브라함은 단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니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롬4:18) 로마서 9:6-13은 첫째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가 아 이스라엘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둘째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며 셋째 택하심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자가 자녀임을 분명하게 한다.

 

따라서 교회는 혈통적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름을 받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혈통적 이스라엘이나 지정학적 이스라엘하고는 무관하다.

 

구약에서도 혈통적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신 남은 자들이 진정한 교회였던 것처럼 신약에서도 현재에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믿음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교회이다. 보이는 교회가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이 메시아닉 교회에서 유대교적 유산을 다 소멸시켰다는 것과 그 때부터 교회가 암흑기와 사탄에게 지배받았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다. 콘스탄틴이 토요일 안식일을 태양신을 섬기는 일요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도 거짓이다. 이미 초대교회부터 주의 날을 지키고 있었고 콘스탄틴은 그 날을 휴일로 선포함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이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이지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어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세시대 교회는 타락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는 여전히 존재했고 종교개혁을 통해서 살아나게 되었고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4. 기존교회를 대체신학으로 치부하는 편견

 

메시아닉 쥬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렸다고 생각하고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을 주장한다고 몰아세운다. 이방교회가 A.D 70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로버트 하이들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미묘한 반유대주의는 대체신학이다”(로버트 아이들러. <메시아닉 교회: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WLI코리아. 2013. p. 232) 라고 하였다. 대체신학은 이단적인 세대주의 관점이지 교회의 관점은 아니다. 특히 루벤 도런은 대체신학 교리는 어거스틴이 가르친 교회론으로서 이러한 대체신학을 바탕으로 반유대적 법률이 반유대주의 길을 닦았고 잔악한 행위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정통교회는 하나님이 혈통적 이스라엘을 버리고 교회로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을 주장하지 않는다.

 

정통교회는 구약의 국가적 형태를 취하던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 택하신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약의 교회였고 혈통적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롬11:11)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방인 중에서 택하심을 받은 충만한 수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이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함이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택한 백성들이 교회라고 믿는 것이지 이스라엘을 교회가 대체했다고 믿지 않는다. 세대주의 신학은 일부 이단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5. 유대 율법주의로의 회귀

 

로버트 하이들러는 “교회가 유대적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사도들도 유대교로부터 분리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유대인의식을 거행하고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을 드렸다”(p.180.)고 주장한다. 메시아닉 쥬들은 성경의 절기들이 생명의 사이클로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유대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시아닉 쥬 사상을 신봉하고 주장하는 한국의 목회자 김주성 목사는 <토라회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토라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멍에와 같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으로서 부름받고 구원받은 자들이 준수해야할 왕국의 법도이다”(김주성. <토라의 회복> 메시아닉 출판사. 2013. p.38) 라고 주장하고 복음서는 하나님의 토라(곧 말씀)가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메시야 곧 “살아있는 토라이신 예수아”를 증거한다(위의 책. p. 39)고 한다. 따라서 “구약에는 하나님의 캘린더에 하나님이 정하신 사이클이 있는데 이것은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안식년, 희년”(위의 책. p. 67. )으로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음식법이나 제사법까지 다 지켜야 한다고 나섰다.

 

메시아닉 쥬들은 율법은 그림자요 예수님은 실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히10:1) 구약의 성전이 그림자요 그 실체가 예수님(히9:1-28)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롬10: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갈3:1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저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갈3:13)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심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갈3:24) 예수님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려 하심을 부정한다(갈4:4-5)

 

사도바울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기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고 말씀하셨고 골로새서 2:16에서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실체가 있다면 그림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메시아닉 쥬들이 율법주의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혈통적 유대인과 지정학적 이스라엘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6. 세대주의 종말론에 매몰됨

 

메시아닉 쥬들은 하나같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한다. 혈통적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여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지정학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대주의자들은 대체신학을 주장하면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혈통적 이스라엘이 모두 회복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메시아닉 쥬들은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지정학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한다.

 

그래서 첫 번째 1897년 시온주의 운동의 시작으로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이 회복의 시작임을 선언하고 주권적인 유대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고 둘째 1967년 예루살렘이 회복되었고 셋째 1980년 소련에서 대규모 유대인들이 이주하였으며 넷째 현 이스라엘의 수상의 지위는 다윗의 보좌가 회복된 것이며 다섯째 2000년도의 이스라엘에서의 나팔절 사건이 있었고 여섯째 2001년 9.11 테러사건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날 거대한 재앙들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장말절과 일곱나팔 심판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며 일곱째 나팔절과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일곱나팔의 재앙들은 주님의 재림 전에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위한 것이며 여덟째 마지막 나팔소리는 예수님의 재림인데 죽은 자의 부활과 성도들의 휴거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세대주의 종말론이며 성경에도 없는 비성경적 주장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재림은 아마겟돈 전쟁 때 일어나는데 이 전쟁을 위해 모든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모인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문제는 신자들의 우주적 교회연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통합된 세계정부를 세우고 세계평화조약을 맺게 하고(최바울, <세계영적도해> 도서출판 펴내기. 2011. pp. 175-234) 통합된 세계정부는 독재체제로 변해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것이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그의 천사들의 군대와 함께 이 전쟁에 개입하는데 거짓 메시아 정부도 실체를 드러내고 예수님이 불로 군대를 태울 것이며 신자들은 공중으로 휴거될 것이라는 재림시나리오를 주장한다. 이 모든 논리는 세대주의 종말론인데 메시아닉 쥬의 주장이기도 하다.(키이스 인터레이터. <그 날이 속히 오리라> 두란노서원. 2004. pp.268-277).

 

정통교회에서는 세대주의 종말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단적인 사상으로 배제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은 세대주의 종말론과 같은 시나리오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께서 재림전의 상황과 재림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7. 주님의 재림에 대한 곡해

 

메시아닉 쥬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키이스 인터레이터는 재림의 조건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고 둘째는 혈통적 이스라엘의 부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로 오시는데 국민과 영토가 있는 실제적인 지정학적 나라 이스라엘에 재림하시는데 감람산으로 다시 재림한다고 한다. 더욱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재림하셔서 그 분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지구상의 재림의 장소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며 이스라엘이 없다면 재림도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메시아닉 쥬들은 유대인의 절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일생을 설명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의 봄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을 말하는데 유월절은 십자가의 죽음을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오순절은 성령강림을 말하고 가을절기는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데 나팔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 유대인의 절기가 예수님의 죽으심이나 부활이나 재림을 의미한다는 메시지는 없다. 이것은 가져다 붙인 조작된 것이다.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출애굽때에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넘어가게 한 것처럼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죽임당한 어린양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그것을 기념하는 유월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 초실절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인가? 곡식의 첫 열매를 얻는 절기가 초실절로서 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첫 열매를 감사로 드리는 것인데 예수님의 부활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 때문에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리는 것과 매치를 시켜 가져다 붙인 것일 뿐이다.

 

나팔절은 희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49년 되는 해 7월 10일에 대속죄일을 정하고 나팔을 부는 것으로서 팔렸던 모든 백성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해방되는 날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묶인 자의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을 위해서다.

 

특히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이 땅에 그 분의 나라를 세우러 오시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이 땅에 그 분의 나라를 세울 이유가 없다. 새 하늘 새 땅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며 주님의 재림은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으로 신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게 된다.

 

메시아닉 쥬의 재림 역시 세대주의 재림론과 유사하고 정통 종말론과는 거리가 멀다. 주님의 재림은 이 땅에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기 오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8. 신사도운동사상과의 결탁

 

메시아닉 쥬의 사상은 신사도운동 사상과 결탁되어 있다. 키이스 인테레이터는 첫째 첫 번째 오순절과 두 번째 오순절을 주장하는데 사도행전 2장에 언급된 오순절은 요엘서 2장의 예언이 일부만 성취되었고 두 번째 오순절은 마지막 시대에 오는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세계적인 부흥, 대환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세계의 평화를 주장한다(키이스 인터레이터 <그 날이 속히 오리라> 두란노서원. 2004. pp.55-56). 또한 백투 예루살렘사상을 주장한다. 예루살렘은 세계평화의 중심이고 모든 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고 예루살렘에서 마친다는 것이다(위의 책 pp.62-89). 그리고 마지막 때는 성도의 5중직분이 대언적인 기름부음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로버트 하이들러는 “오늘날 선지자들이 다가올 부의 이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를 자신의 왕국으로 옮기실 것이다”(로버트 하이들러 <메시아닉 교회 :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WLI코리아. 2013. p.52). 루벤 도런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 시대의 끝에 마지막으로 생명을 낳도록 작정되어 있다. 첫 세대는 세계를 변화시킬 아들 메시야를 낳았던 것처럼 마지막 세대에도 역시 아들을 낳을 것이다”(루벤 도런, <한 새사람> 이스트윈드 코리아. 2010. p.265). 김주성은 “우리에게도 메시아가 오시기 전 늦은 비 성령의 부어주심이 임하게 되고 마지막 때 수많은 영혼들이 추수하는 일에 쓰임받을 것이다”(김주성, <토라의 회복> 메시아닉 출판사. 2013. p.121).

 

루벤 도런은 아이합의 마이크 비클과 친구요 키이스 인터레이터는 피터 와그너의 친구로서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메시아닉 쥬들의 책에는 신사도운동 사상이 상당히 많은 분량으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은 본래 윌리엄 브랜험이라는 늦은 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시작이 된 것인데 이른 비는 오순절 성경강림으로 요엘서의 예언의 완전성취가 아니라 일부 성취된 것이고 늦은 비는 마지막 때에 임하는 성령강림으로 신사도운동이 시작된 2001년부터 마지막 부흥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자들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신사도교회가 대부흥을 일으키며 모든 교회들이 신사도들의 지배를 받을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권역 즉 7권역 모두가 신사도들의 지배를 받고 부의 이동이 이루어지면 예수님이 재림을 한다는 위험한 이단사상이다. 특히 예수님의 재림을 예수님의 육체적, 가시적인 재림으로서 재림을 말하지 많고 집단 그리스도나 요엘의 군대, 지저스 아미, 하나님의 군대 등 이것이 바로 집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하는 이단적인 사상인데 이러한 사상과 결탁되어 있다는 것이다.

 

9. 현존하는 기성교회의 폄하

 

메시아닉 쥬들에 의하면 기성교회는 콘스탄틴이라는 로마 황제에 의해 초대교회는 사라져버리고 천년동안 죽어 있었으며 오늘날의 교회는 사탄에게 빼앗긴 것들을 회복시키는 시대이며 메시아닉 교회가 4세기 초반에 죽어간 것은 사탄이 직접 짜낸 교활한 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오늘의 교회는 사탄의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에 부패하고 타락했다. 이것을 개혁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메시아닉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기독교는 비성경적인 교리들과 이론들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끔찍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다(김주성. <토라의 회복> 메시아닉 출판사. 2013. p.28)고 한다.

 

또한 현대 기독교는 신본주의 신학이 아니라 인본주의 신학이며 헬레니즘에 근원을 둔 혼합주의 사상인 영지주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전통 기독교의 천국복음이 생겨났다(김주성, <히브리관점이란 무엇인가?> 메시아닉 출판사. 2015. pp.20,39)는 등 현재의 기독교는 사탄의 신학이며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과 인본주의 사상으로 왜곡되고 타락했다는 주장이다.

 

모든 이단들은 기성교회를 폄하하고 공격하면서 사탄화시키며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 메시아닉 쥬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정통 기독교에서도 영지주의 이원론 사상을 배격하고 있으며 인본주의 사상도 배격한다. 물론 기독교의 부패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메시아닉 쥬가 주장하는 사상 때문이 아니다. 메시아닉 쥬는 자기들만이 진정한 교회요 바른 교회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과 신사도운동이 신사도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로 내용에는 위험한 비성경적인 사상과 위험한 사상들이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박형택 목사, 메시아닉 쥬 사상과 내용들은 비성경적인 위험한 이단적인 사상을 함유

 

박형택 목사는 “지금까지 살펴본 메시아닉 쥬에 대한 사상과 내용들은 많은 부분에서 비성경적인 위험한 이단적인 사상을 함유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성경해석에부터 시작하여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정학적 이스라엘 회복이나 혈통적 이스라엘 회복을 주장하는 것 뿐 아니라 기존교회가 대체신학을 주장한다고 매도하는 것과 세대주의적 종말론과 신사도운동과 연관성에서도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싫어하거나 거절할 사람은 없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정통교회를 매도하거나 개혁의 대상으로 삼거나 혈통적 유대인인 메시아닉 교회를 위한 들러리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이단적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통교회를 사탄에 의해 지배되어온 인본주의 신학이며 죽은 교회였다고 매도하는 것도 결국 메시아닉 쥬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결과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메시아닉 쥬의 주장은 과거 유대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고 구약의 율법준수로 돌아가자는 것으로서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고 그림자로 복귀하자는 이단적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박형택 목사는 “메시아닉 쥬는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핵심요소는 유대적 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로버트 하이들러, <메시아닉 교회 :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WLI코리아. 2013. p.43)라며 로버트 하이들러는 말한다”면서 “따라서 메시아닉 쥬의 사상은 정통교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고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사상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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