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시민공모 ‘창고극장’·‘미아리점성촌’ 등 다양한 이야기 담긴 공간 제안
[시사타임즈 = 한민우 기자] 한국 연극의 혼이 깃들어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 일제시대 건설한 터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내동 (구)망우터널’ 등 시민공모를 통해 접수된 1,126건이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으로 선정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8월 WOW 서울 공모전을 통해 시민·자치구·관련단체 등으로부터 접수받은 미래유산 보존대상 1,126건에 대해 검증조사 및 선정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제안된 보존대상은 예비 목록화→미래유산보존위원회 분야별 5개 분과위 1차 심사→서울연구원 전문조사원 검증조사→위원회 최종심사 거친 후,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의 보존대상 최종 목록으로 확정될 계획이다.
접수된 1,126건은(중복접수 189건 포함) 서울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보존 가치 있는 유적, 유물, 무형 유산으로서 시민 162건, 종교단체·내셔널트러스단체·기념사업회 등 관련단체 233건, 25개 자치구 292건, 서울시 건축·한옥 등 관련 부서 303건, 2004년 조사된 유산 89건, 기타 47건 등이 제안됐다.
향후, 역사박물관이 수집한 서울시민 일상생활 자료 1,000여건도 보존대상으로 포함시킬 예정이다.
제안된 보존대상에는 삼일로 창고극장, (구)망우터널, 대오서점, 이명래 고약 공장, 미아리점성촌, (구)신민당사 터, 낙원악기상가, 삼풍백화점 붕괴장소, 성내동 쭈꾸미거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유산들이 포함됐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1975년 개관, 한국 소극장 운동의 본산으로 수많은 원로 연극인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공간으로 대중문화 중에서도 가장 비주류로 꼽히는 연극. 고된 삶의 대명사격인 연극은 소극장에 의해 지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은 그런 소극장 문화의 산증인으로서 연극의 본산인 대학로 소극장들이 상업화의 바람에 밀려 하나 둘씩 사라지고 개그콘서트 공연장으로 바뀐 지금에도 삼일로 창고극장은 중앙시네마 옆에서 꿋꿋이 대한민국 소극장 연극의 맥을 잇고 있다. 에저또 창고극장, 삼일로 창고극장, 떼아트르 추, 명동 창고극장, 그리고 다시 삼일로 창고극장에 이르는 이름의 역사가 이 작은 공간이 겪어왔을 수난과 고행을 말해준다. 그 중 떼아트르 추는 1983년 경영난에 빠진 에저또 창고극장을 전설의 연극배우 추송웅이 인수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 오태석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 한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은 모두 이곳에서부터 시도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 공연됐던 작품들에 유달리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최초’라는 단어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한국 연극의 전위에 서있었던 공간이다.
‘신내동 (구)망우터널’은 서울시에서 보기 힘든 철로전용 터널이다. 경부선에 이은 한국의 제2의 종관철도로 2005년 남양주 덕소역 종착을 시작으로 현재 양평 용문까지 복선전철화가 개통된 이후 철도의 고속화를 위해 폐선 된 터널이다. 서울시와 구리시 간 경계가 되는 터널로 폭 4.5m 높이 3.5m 길이 약 300m 되는 터널로 현재 범죄예방 차원에서 콘크리트 벽돌로 양쪽 입구가 막혀 사용이 중단되어 있다.
신내동 (구)망우터널. ⒞시사타임즈
철로 산업의 유산으로써 역사적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이 일제시대에 건설된 터널로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고, 일제시대에 건설한 타 터널의 경우,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에 망우터널은 더욱 더 희소성이 있다.
‘이명래 고약을 만들던 공장’은 ‘이명래’ 선생의 막내딸이자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제처장, 고려대학 총장, 신민당 당수 등 역임한 유진오 박사의 부인이신 ‘이용재 여사’가 1970년대 직접 고약을 만들었던 공장이다. 이명재 고약은 1906년 프랑스 선교사로부터 서양약학을 배운 이명래 선생이 개발한 종기치료제로서 당시 변변한 의약품이 없던 시절 최고의 명약으로 대접을 받은 고약이다.
구로구 이명래 고약을 만들던 공장. ⒞시사타임즈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마땅한 상처 치료제가 없어 서민들에게 사랑받은 제품으로 40대이상 중장년들의 경우 기름종이에 싼 이명래 고약을 성냥불에 녹여 종기 부위에 붙이고 다닌 기억을 한 두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명래 고약은 사람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한 국내 최초 상표로 기록된다.
‘누하동 대오서점’은 책, 사람, 시간이 하나의 고리로 엮이는 60년 역사의 서점으로 6.25가 끝나고 서점을 처음 여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대오서점이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서점을 운영하고 계신데, 매출 실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누하동 대오서점. ⒞시사타임즈
결국 출입문의 ‘세 놓습니다’ 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60년의 세월을 뒤로한 채 사라질 운명의 서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오서점에서 차를 타고 3분 거리에 광화문 교보문고가 있다. 하늘색 미닫이문과 빛바랜 간판으로 6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덕분에 여기저기서 촬영이며 인터뷰 요청도 끊이질 않았던 대오서점. 서촌의 대표적인 명물이다.
미아리 점성촌. ⒞시사타임즈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 점성촌’은 점을 치는 업소들이 한데 몰려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점성촌으로, 이곳은 미아리고개 양 옆에 있어 미아리 점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전에 종로3가에 집단 거주하던 맹인 점술가들이 남산 주변 정비로 흩어졌다가 미아리고개 주변에 정착하면서 생기게 되었다. 이곳은 시각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이 집단거주 지역을 형성, 생활하는 공간으로 많은 내·외국이 찾아오는 생활 명소로 이름이 높다.
시는 아직도 서울 곳곳에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유산들이 있다고 판단해 미래유산 보존대상에 대해 연중 제안이 가능하도록 하고, 상시로 접수 받아 건수에 따라 월별 또는 분기별로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할 계획이다.
한문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고 있는 근현대의 역사적·문화적 유산과 일상 자료들이 지금은 무가치해 보일지는 몰라도 당시의 시대상황과 상징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러한 미래유산들을 수집하고 발굴해서 스토리가 있는 문화공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는 5일 오전 11시 신청사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미래유산 선정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한 심사·자문기구인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의 위촉식을 갖고, 제1차 회의를 개최한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는 문학·역사·정치·산업·노동·주거· 교육·건축·도시계획 등 각 분야의 외부전문가를 비롯한 시민대표, 관련단체 추천자 등 총 57명으로 구성되며, 박원순 시장과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시민위원장으로 위촉되는 김학준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교수, 대통령공보수석 비서관, 청와대 대변인, 인천대학교 총장,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단국대학교 이사장,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제3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날 박원순 시장은 위촉식에 참석한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서울의 소중한 근현대사의 가치들이 사라지기 전에 잘 보전해 미래세대까지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위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사명감을 갖고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위촉식에 이어 제 1차 회의에선 위원들에게 ‘서울 미래유산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그 동안 사업의 진행사항과 미래유산 제안사항 등을 설명한다. 이후, 위원회 운영계획 등 전반적인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민우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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