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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숨겨진 보배들] 어느 노 부부의 삶!

[숨겨진 보배들] 어느 노 부부의 삶!
 

 

 

▲순돈호 선교사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순돈호, 중유럽성경연구소] “Pull up your socks, Marios!”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마리오스에게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의 양말을 겉어 올리기 시작했다. 한심한 듯, 체육 선생님은 독백처럼 어린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Very funny, Marios!”

 

마리오스는 그리스령 사이프러스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더블린으로 이주 한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가 초등학생 때, 체육과목을 잘 따라가지 못하자 체육 선생님이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말 해 준다. “분발하거라, 마리오스야!”(Pull up your socks, Marios!)

 

아직 영어가 서툴렀던 마이오스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 양말을 걷어 올리는 행동을 한다. 이런 석연치 않은 그의 행동이 선생님에게 어떻게 보였을는지는 눈에 선하다.

 

이러했던 마리오스가 엘레너 (Eleanor)라는 아름다운 영국계 아일랜드 여인을 만나게 된다. 엘레너가 트리니티 대학의 독문학과 재학생 시절, 그녀는 자신의 집에 여러 친구들을 초대하여 전도모임을 한다. 그 때 마리오스는 한 친구를 따라 갔다가 초면이었던 엘레너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한 마리오스는 엘레너와의 사랑에 빠져 든다. 그는 엘레너가 다른 여인들과 달리 매사에 진정성이 있으며 좋으면서도 싫은 척 하는 어떤 여인들과는 다르다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는 부족한 지성이 그녀에게 있다는 점 때문에 그녀를 무척 사랑하게 된다.

 

얼핏 보면 이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커플이었다. 엘레너는 지성미 가득한 그리스도인 여인이었고 마리오스는 지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마리오스가 엘레너에게 첫 연애편지를 보내자 엘레너는 그의 사랑 고백이 담긴 편지 내용 중에서 틀린 영어 문법과 단어들을 빨강 볼펜으로 일일이 수정해서 돌려보냈다. 한 사람은 언어구사력과 학문성 등 매사에 어설펐고 다른 한 사람은 매사에 철저하고 탁월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들의 이런 간극은 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독일어 교수들을 위한 교수로 불리우기도 한 엘레너는 영문학, 불어와 고전어까지 탁월한 학자였지만, 마리오스는 학문의 세계와는 전혀 거리가 먼 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평생 동안 어떤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사전이나 구글을 사용할 일이 없었습니다. 엘레너에게 묻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곤 했지요. 그녀는 내가 알고 싶어 하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영어, 독어, 불어 뿐 아니라 그 말들의 뿌리가 되는 라틴어와 고전 헬라어의 의미까지 설명 해 줍니다. 가끔 쫑크도 줍니다. 그리스 출신인 내가 그리스어의 어원을 모르고 있다면서…”

 

이들은 비록 언어와 문화권, 지성과 학문성 등이 아주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복음을 실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커플이다.

 

엘레너는 교수로서 바삐 살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하여 연로하여 더할 수 없는 그 순간까지 매주 3~4차례 섬기는 교회에 들락날락 하며 섬긴 일꾼이다. 그런데 그녀의 섬김의 장소는 늘 사람들의 시야에서 노출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성만찬 준비를 하기 위해 뒤에서 소리 없이 섬긴다. 주일학교에서 갓난아기들을 돌봐 주는 일을 마지막 손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의 선교 기도회에도 거의 빠지는 일이 없었다. 교회의 모든 쓰레기는 다 이 분의 손을 통해 정리되고 분리 수거되어 버려진다. 주일 오전 예배 뿐 아니라 오후에 진행되는 세 차례의 다문화 교회들의 예배 후 수거되는 분량까지 다 자원해서 처리한다.

 

그녀의 자동차에서는 늘 쓰레기 냄새가 떠날 날이 없었다. 교회의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쓰레기들은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가서 처리한다.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철학도 분명한 분이었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을 멘토링 해 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성경과 영어를 동시에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섬김에 있어서는 참으로 섬세하였다. 엘레너가 성만찬을 준비할 때마다 늘 함께 하는 한 선교사 자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유고시 대신 성만찬 준비할 수 있도록 이 학생에게 제자 훈련 중이었다. 엘레너는 보통 학생들이 주일 오전에는 아침 밥 대신 잠을 좀 더 청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집에서 이 학생을 위해 오트밀 한 공기를 랩으로 잘 덮어 가져다주곤 한다. 그 때 사용한 비닐 랩은 재활용을 수십 번 한 듯한 것이었다니…따뜻한 물, 혹은 우유에 설탕이나 꿀을 넣어 잘 저어주던 이 오트밀은 이 학생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고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다고 한다.

 

엘레너는 한 외국인 학생의 대학입학 시험을 위해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었다. 그 학생에게 프랑스 언어연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엘레너는 자신이 프랑스의 기독교 공동체에 직접 연락하여 모든 준비를 다 해 준다. 그 학생의 부모 대신 보호자 역할까지 책임져 주었고, 나아가 여행에 필요한 경비까지 채워 주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학생에게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네 준 점이다. “너는 아직 청소년이라 카드가 없으니 이 카드를 가지고 가거라. 혹시 긴급 상황이나 필요가 발생할 때 사용하도록 해라.” 쉽지 않은 결정을 아주 단순하게 내려 주곤 한 엘레너의 평소의 삶의 모습이다.

 

마리오스는 ‘감사맨’이다. 매번 만날 때마다 하시는 말씀, “나는 감사할 것 밖에 없어서 감사합니다!” 예배 후에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 인사할 때는 “나에게 다가 와 줘서 고맙습니다” “내게 인사 해 줘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교회에 나와 주어서 감사합니다” 하며 늘 감사 하곤 한다. 주일예배 등 주요 예배 때는 매일 먼저 도착하여 주보나 목사님의 설교 노트를 들고 성도들, 특히 외국인들에게 나눠주며 반가이 다가 와 맞이해 준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는 “귀엽고 따뜻하면서도 유쾌한 할아버지 아저씨”와도 같다.

 

그는 유학생들에게 늘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교회 예배참석 등을 위해에 자동차가 없는 학생들을 직접 픽업 해 주는 일을 수 없이 하신 분이다. 그는 늘 낭독 성경을 들으면서 운전 한다. 늘 말씀과 동행 하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유모어와 영적 감성으로 감동을 주곤 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런 그들에게도 고난이 닥쳐왔다. 3년 전부터 엘레너의 말이 느려지기 시작했고, 사람과 사물에의 반응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2년 전부터는 말도 할 수 없고 스스로 걷기조차 힘들어 지팡이를 의존해야만 했다. 그렇게 총명했던 대 학자의 기억력도 급격히 쇠퇴했다.

 

마리오스는 직장을 포기했다. 이젠 엘레너를 보필하는 일에 최우선권을 두고 있다. 어느 날, 기억력을 거의 잃어버린 엘레너가 마리오스에게 강하게 대형 괘종시계 (grandfather clock)를 벽에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 시계는 지난 40여 년 동안 고장난 상태로 집구석에 버려진 것이었다. 마리오스는 그 일이 의미 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부속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엘레너를 설득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무의미 해 보인다 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원한 것이었기에 많은 날 동안 여러 시계방을 찾아 다니면서 수선 후 걸어 주었다.

 

이런 일은 이 후로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엘레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집 이곳저곳을 공사 혹은 재공사 하라고 주문을 해 왔다. 이미 되어진 공사를 또 다시 하도록 요청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요구 같았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투자 되었지만, 평생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아내가 요구하는 것이기에 원하는 대로 다 공사를 해 주었다. 집 안 몇 군데에 페인트를 부탁 했고, 그 요구대로 하면 집안이 엉망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실천 해 주었다.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어려운 요청들은 마리우스 자신에게도 고통이 아니라 큰 기쁨이었다.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기회이며, 잠시나마 평생 사랑했던 아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레너의 증상이 더욱 심각해 진 후,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후, 마리오스는 반평생을 엘레너와 함께 했던 집을 정리하고 있다. 엘레너의 손 떼 뭍은 다양한 물건들과 수많은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 책들의 내용으로 가득했던 엘레너의 뇌 속의 기억력이 사라지는 것과 대비 해 본다. 그러면서 인생을 재조명해 보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했던 지난 인생에 후회가 없음을 발견했다. 감사함뿐이었다. 하나님이 평생 함께 동행해 주셨던 복된 인생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주되심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부부의 모든 삶 속에서 주님이 모든 아름다운 일들을 행하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 힘든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사랑하는 아내와 작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시니 주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 아내 엘레너가 우리 부부 사이의 브레인이었지요. 아내가 내 부족함을 채우면서 나의 모든 것을 돌보아 주었지요. 그런데 이젠 내가 나를 평생토록 사랑해 주었던 내 아내를 돌보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요. 또 이것을 깨닫고 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오스는 지금 엘레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최고의 것으로 제공하고 있다. 요양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님은 예상치 못했던 몇 사람들을 통해 엘레너가 가장 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긴 하지만, 평생 자신의 아내요 선생이었던 엘레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마음이 있다. 아내와 평생 살았던 집을 정리 중이며 그 집을 팔아서 아내와 아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주의 일을 위해 다 사용하겠다고 한다.

 

요양병원에서 아름다운 옷이 더 필요치 않은 엘레너 같지만, 마리오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자주 예쁜 옷을 구해 입힌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only the best for my gal (girl)~isn’t that right Eleanor? only the best for you Eleanor…”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볼에 뽀뽀를 해 주면서 행복해 한다. 그녀가 잠시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아 주기만 해도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엘레너가 힘든 일을 겪기 수년 전 어느 날, 이 부부가 한 가지 결정을 내린다. 자신들이 한동안 가르치고 섬겨왔던 한 선교사 자녀들을 더 구체적으로 섬기기로 부담을 가졌던 것이다. 그 결정은 선교사 자녀들에게 그들 소유의 집 한 채를 무상으로 빌려 주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선교지의 선교사 부부나 그 자녀들과 전혀 상의도 없었다. 기도 가운데 스스로 결정하고 통고 한 것뿐이다. 대도시에서 방 셋이 딸린 독립주택 한 채를 5년 동안 아무 대가 없이 대여해 준다는 것이 어디 쉬운 결정일 수 있을까?

 

그 후, 가끔 일처리를 위해 이 집을 방문 할 때는 부엌이나 다른 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선교사 자녀들의 눈만 마주치고 대화한 후 조용히 떠나곤 하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집 주인이 방과 부엌 등을 살펴보면 집을 잘 관리하지 못한 아이들의 문제가 노출될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도록 배려 한 것이었다. ‘갑질’이란 그들의 상상에서조차 발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부는 늘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고, 무슨 도움을 줄 때마다 그들은 대가는커녕 하나님께 칭찬받는 것조차도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단지 자신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린 사람들이기에 주님께 감사함으로 자신들의 축복을 나눌 뿐.

 

어느 날 두 부부가 선교사의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셨다고 한다. “우리가 너희들을 돕는 일에는 어떤 조건도 없단다. 다만 너희들도 미래에 이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기지 않겠니? 또 너희 부모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헌신하지 않겠니? 그것뿐이란다.”

 

이 노 부부의 아름다운 행실과 섬김은 교회에서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늘 뒤에서 섬기는 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부부의 사랑과 섬김을 받은 많았던 젊은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백한다. “우리에게는 따라야 할 본이 있습니다!”

 

따라야 할 본이 있는 자의 삶은 복되다. 누군가가 따르고 싶어하는 삶을 산 사람은 더욱 더 복되다. 마리우스와 엘레너는 참으로 복된 자들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은 향기를 머금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조용히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편지를 받아 읽은 젊은이들이 얼마 후에 또 다른 향기로운 편지가 되어 다른 이들의 축복이 될 그 날들이 벌써부터 가슴 설레게 기다려진다. 그리스도의 계절은 이런 모습으로도 다가오는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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