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시사논평] 화물연대의 파업을 바라보며

[시사타임즈 전문가 칼럼 = 엄무환 편집국장] 답답하다.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다. 아니 작금의 가뭄 현상으로 인해 논밭이 쩍쩍 갈라지는 것처럼 가슴이 쩍쩍 갈라진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국민 각자가 누구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처럼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의 말 한마디로 인민이 살고 죽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물연대가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연대하여 파업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시키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6월 26일자 동아일보 신문 3면에 실린 화물연대 비조합원 정춘화씨의 사례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물론 아직 화물연대가 그렇게 했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할지라도 누가 보더라도 비조합원 차들만 방화를 했다면 그것도 27대나 그렇게 화재를 당했다면 화물연대 소속의 그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 씨는 말했다. “차라리 사고로 차에 불이 났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벽 2시 반경 자신의 화물차 안에서 잠을 자다가 방화로 추정되는 불로 졸지에 화(禍)를 당한 정춘화 씨(41세). 오고가는 교통비에 5만원 안팎인 여관비를 아끼려고 차안에서 자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라 한다. 정씨에게 있어서 이 차는 정씨의 아내와 중학교 3학년인 아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인 딸 등 모두 네 식구의 생계가 달려있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화물연대의 그 누군가로 추정되는 사람에 의해 화재를 당했다. 하마터면 가스에 질식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갖다 댄다 할지라도 나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에 빠뜨리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화물연대는 화재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가. 정말 그러한가. 그 말이 정녕 사실인가. 그럼 멀쩡한 화물차에 왜 불이 났는가. 그것도 화물연대 비조합원 차만 골라서 27대나 말이다. 양심에 대고 어디 다시 한번 말해보라 우린 아니라고.

 

화물연대는 과거에도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운전사를 폭행하거나 화물차에 쇠구슬을 쏘고 타이어에 펑크를 낸 전력이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겐 이렇게 폭력을 행사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닌가.

 

공산주의 창시자인 칼 막스가 약 15년이라는 세월을 걸려 대영국립도서관에 날마다 출근하여 당대의 학문들을 섭렵하여 쓴 책이 한 권 있다. 자본론이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칼 막스는 자기 딸이 영양실조로 죽어 장사지내고 돌아온 그날도 국립도서관에 가서 연구를 했다.

 

그렇게 쓴 책 자본론에서 칼 막스는 당시 자본주의의 폐허에 대해 무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특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을 흘려 일군 노력의 열매들을 독차지하는 자본가들을 바라보며 칼 막스는 치를 떨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의 권리를 빼앗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칼 막스는 이 과정에서 힘의 사용을 용인했다. 힘이 없는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자본가들의 권리를 빼앗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가진 자가 힘이 있다. 없는 자는 서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지지 못한 자들이 단합하여 가진 자들에게 자신이 받아야할 권리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하여 그 사람을 적대시하고 원수처럼 여겨 함부로 남의 행복을 짓밟는 행위는 결코 용납해선 안된다. 이것이 허용된다면 그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만약 국가가 이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존재해야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춘화 씨와 같은 사례는 칼 막스의 망령이 오늘 우리 사회를 유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화물연대는 오히려 이것을 저들의 무기로 삼고 있다. 그 증거가 부산항 광양항 평택항 등 수출입 물동량이 많은 항구를 집중공략하고 있는 화물연대의 전략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만약 수출입의 마비가 일어난다면 이는 우리나라 경제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는 전 국민의 행복과 나아가 우리 후대의 내일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오즉 답답하면 이런 방법까지 동원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겠지만 그러나 나 살자고 국가 경제까지 무너뜨리겠다면 이는 결코 옳지 않다.

 

대학다닐 때 소위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로 여겨졌던 칼막스의 자본론은 오늘날 진보주의 정치인이나 노사운동의 리더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가치관의 교과서로 군림하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구소련이나 동유럽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북한을 공산주의화 시켜버린 칼막스의 제자들. 칼 막스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제자들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저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이 땅의 유토피아, 즉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회를 세우기 위해 오늘도 목숨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저들은 폭력을 정당화시키며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란 폭력과 거짓이다. 이미 몸에 베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행태가 오늘 우리나라 안에서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우린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린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이 있다. ‘칼로 흥한 자는 반드시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이다. 폭력과 거짓으론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것은 나도 죽고 내 가족을 죽이며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까지 무너뜨리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폭력과 거짓의 배후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거짓의 아비가 마귀라고 분명히 지적하셨다. 아무리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손치더라도 방법, 즉 전략과 전술면에 있어서 그 무기가 폭력과 거짓이라면 이미 당신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나간 역사가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리더들이 멍청이가 아니라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이제라도 정당한 방법에 의해 자신들의 권리가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며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부디 우리의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우리의 앞서간 조상들의 삶을 결코 짓밟는 일이 없길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엄무환 편집국장(weomm@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