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저 | 문학동네 | 264쪽 | 12,000원
‘탁월한 이야기꾼’ ‘해학과 풍자의 장인’ ‘입담과 재담의 진면목’ 등등 성석제를 수식하는 평단의 말들은 흘러넘치도록 많았다. 한국문단 내에서 그만큼 이야기를 저글링하듯 주무르는 소설가가 또 있을까. 그의 소설은 언제고 세상을 성석제 자신만의 방향키로 조타하며, 장착된 무기인 유머와 해학이 소설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있어 웃음폭탄, 눈물폭탄, 시원 유쾌 발랄 후련의 폭탄이 시도 때도 없이 소설 안에서 펑펑 터진다. 그의 매혹적인 이야기에 빠져드는 날이면 반드시 날을 새우고 단숨에 성석제 전부를 따라 읽어야만 했다. 그런 그가 2003년 장편『인간의 힘』이후 구 년 만에 신작장편소설『위풍당당』을 들고 또 한번 성석제표 웃음의 축제의 장으로 우리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이번에 출간된 장편『위풍당당』은 시골마을에서 빚어지는 맹랑한 소동극의 형식을 빌려 재담과 익살,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세계를 그려낸다. 동시에 그 웃음 뒤에 숨은 우리 사회가 처한 도덕적 파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충동이 소설 심층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시골마을의 맹랑한 소동극
『위풍당당』의 서사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어느 궁벽진 강마을의 사람들이 그 마을을 접수하러 간 전국구 조폭들과 일전을 벌인다. 시골마을을 얕잡아보고 의기양양하게 쳐들어간 도시의 조폭들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하고, 반대로 마음을 모아 위기를 돌파하는 동안 강마을 사람들의 이해와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면, 이 시골마을을 도대체 왜 전국구 조폭들이 접수하려 드는 걸까.
“그런데 따라오고 있다. 검정색 벤츠에 탄 사내들. 우리에서 뛰쳐나온 맹수, 끈 풀린 미친 개 같은 인간들. 시속 오 킬로미터로 걷는 새미를 시속 오 킬로미터의 속도로 따라오는, 짙은 선팅으로 시커먼 유리 속,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세 인간들.”
우연히 방문하게 된 강마을. 조폭들에게는 “자연산” 새미가 눈에 띄게 예뻐 보였던 것. 그 새미를 조폭 일당이 슬슬 따라가고 있던 와중 자신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조폭들을 피하려다 그중 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것으로 이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는 것. 곧, 시골마을 대 조폭 간 전쟁이 벌어지게 된 시발점이 바로 그것. 쳐들어오는 쪽과 방어해야 하는 대치상황의 이야기는 수월치 않은 과정 속에서 결정되고 하나의 목표로 응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피는 섞이지 않은 타인. 마을 사람 각각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숨기고픈, 감추고 싶은 치부 속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잔인한 인생의 굴레에서 버림받았고, 상처입어 그 강마을에 안착했다.
그래서 강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며, 믿었고, 마을을 건설하고 재배하며 구축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믿음이 매우 당혹스런 사태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개중에는 “무조건 깡패들 오는 반대방향으로 토껴야죠. (……) 목숨이 아까우면 도망쳐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강마을을 애써 일궈온 노력, 그 강마을에까지 오게 된 구성원들의 가슴 아픈 상처들을 서로서로 보듬어 돋을새김하여 “그래 싸우자, 싸우자, 싸워보자. 너희와 함께 죽을 때까지 싸워보마.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뿌려줄게” 라고 ‘전투’에 대한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위험한 사태 앞에 혈연이 아닌 타인들이 지닐 만한 태도가 ‘도망’이라면, 가족으로 묶인 구성원은 당연히 ‘함께’ 싸워야만 한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 ‘가족’이라는 힘이 그 마을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일전을 시작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비단 강마을 사람들만의 싸움도, 또 조폭들과의 싸움만도 아니다. 성석제는 이 싸움을 우리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를, 또다른 싸움의 대리전 성격으로 봐주기를 권하고 있다.
또다른 싸움의 전주곡, 웃음의 축제와 저항의 정신
“불도저와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와 덤프트럭 수백 대가 강변의 흙길을 따라 열을 지어 들어오고 있다. 엔진 소리와 땅을 짓누르는 바퀴 소리가 땅을 진동시킨다. (……) 거대한 기계 괴물 집단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밀고 들어온다. 기계의 팔은 나무와 바위를 내리치며 가지를 찢고 균열을 낸다. 파괴와 죽음을 상징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공기를 휘젓고 아비규환의 지옥을 예고한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생명을 닮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멸절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죽음의 군대다.”
양쪽의 긴장된 대치상황 속에서 또다른 기계군단이 강마을로 진주하고 있다. 그 기계군단은 강을 비롯해 나무, 바위 들을 내리치며 자연을 균열내고, 파괴하며 짓밟고 휘젓는다. 생명을 멸절시키는 기계군단의 침해는 강마을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적,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응책은 무엇인가. 기계군단의 침략에 맞서 강마을 사람들이 싸워야 할 방법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조폭들에게 궁벽한 시골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물도 없이 있어야 할 일은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릴 때쯤 갑자기 굶주린 “참새만한 모기”들이 조폭 일당을 공격한다. 그게 다는 아니다. “집단지성”으로 산불의 기억이 떠오른 “말벌의 정예 전투원”에게 혼쭐나게 속수무책 당하기도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조폭 무리를 기절초풍하게 만든 건 ‘고추 잿물 폭탄’과 십 년 묵은 ‘분뇨 폭탄’이었으니, 그야말로 조폭들은 육체적,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모든 공격 무기는 바로 ‘자연’에게서 얻은 것들이었고, 자연이 인간에게 되돌려준 ‘자연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조폭이라는 인위적인 ‘폭력’ 앞에 맞서 방어하는 무기가 ‘자연물’이라면, 그 자연으로 방어하고 그 자연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면, 성석제가 제시한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 그건 “거대한 기계 괴물”이 ‘자연의 법도’ 앞에 굴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연의 주인은 자연에게 있다는 것. 자연은 그것을 해하려 하는 자를 스스로 공격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 자연의 힘은 우리가 가져보지 못한 게 아니다. 이미 주어졌는데 잊었거나 아니면 가지기도 전에 빼앗긴 것인지도 모른다. 저 무시무시한 기계군단의 침략은 어쩌면 강보다 우리 마음속을 먼저 침략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기계군단과 조폭의 모습 들을 드러내면서, 자연의 파괴 앞에 무심코 방관만 하고 있던 우리 사회가 처한 도덕적 파국을 상기시킨다.
모든 것들에게 영광을
“이 소설은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식구가 아닌, 자신이 선택해서 한 식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가까이서 부대끼다 어느 결에 서로의 세포가 닿고 혈액이 섞이며 연리지처럼 한 몸이 된 사람들, 그들에게 강 같은 평화가 함께하기를.”(‘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는『위풍당당』을 읽으며 웃을 것이다. 페이지 곳곳마다 까르르, 킥킥, 큭큭거리며 불가항력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성석제가 이끄는 위풍하고도 당당한 이야기의 경로를 따라다니면서 대책 없는 웃음이 터져나올 테고, 그 안에 매복된 헤아릴 수 없는 해학과 익살의 축제 속에서 그저 철저히 성석제표 웃음에 지배당할 것이다. 허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웃음 뒤에, 포복절도할 만큼의 웃음이 사라지고 난 뒤에, 그뒤에 전해질 가슴 찡한 눈물 한 방울 또한 우리들은 거스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성석제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고, 날을 새우게 하며, 그가 제시한 소설적 현실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거란 걸 우리는 느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석제를 읽고, 웃고, 운다. 성석제가 돌아왔다. 진정한 이야기꾼의 일침이 시작됐다.
저자 성석제 소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올바로 성찰하면서도 그것을 웃으며 즐길 줄 아는 작가라 평했다. 또한 평론가 문혜원은 “성석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으며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입담을 펼친다.”라고 전한다. 이런 평론가들의 말처럼 성석제는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재미난 입담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소풍』은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빛나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고 기억하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은 곧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사람살이의 다양한 세목을 되살려온 성석제 소설세계와 상통한다. 십수년간 각종 매체에 연재하며 갖가지 음식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작업이 ‘음식의 맛, 사람의 맛, 세상의 맛’을 함께 음미하게 한다.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농부 황만근의 일생을 묘비명의 형식을 삽입해 서술한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하여, 한 친목계 모임에서 우연히 벌어진 조직폭력배들과의 한판 싸움을 그린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돈많은 과부와 결혼해 잘살아보려던 한 입주과외 대학생이 차례로 유복한 집안의 여성들을 만나 겪는 일을 그린 「욕탕의 여인들」, 세상의 경계선상을 떠도는 괴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책」, 「천애윤락」,「천하제일 남가이」등 2년여 동안 발표한 일곱 편의 중 ·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번 작품집도 예외없이 세상의 통념과 질서를 향해 작가 특유의 유쾌한 펀치를 날리는데, 비극과 희극, 해학과 풍자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 성석제가 3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았다. 혼기에 이른 맏딸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딸이 어머니에게 읽어드리는 옛이야기를 교차 시키며 유려하게 텍스트를 직조해낸 표제작을 비롯,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내 고운 벗님' 등 총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기성의 통념과 가치를 뒤집는 화려한 수사와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각양각색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유쾌한 재미와 해학, 풍자 밑에는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기도 하고 그리움이나 인간을 향한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이 은근히 깔려 있다.
이외의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새가 되었네』『재미나는 인생』『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호랑이를 봤다』『홀림』『지금 행복해』 등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궁전의 새』『순정』 등이 있으며, 명문장들을 가려 뽑아 묶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이 있다.
1997년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0년 「홀림」으로 제1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단편「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2회 이효석문학상, 같은 작품으로 2002년 제3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2004년 「내 고운 벗님」으로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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