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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12)] 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 저 | 김남주 역 | 문학세계사 | 175쪽 | 9,000원

 

1년에 한 권씩 발표되는 아멜리 노통의 소설작품은 언제나 그렇듯 프랑스 문단에 화제를 몰고 다닌다. 역설적이고도 흥미진진한 블랙유머에 기초한 '노통표’소설은 언제나 기상천외한 충격을 준다. 거기에는 우리가 즐거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작가의 끔찍한 상상력이 있다. 2002년에 발표되어 전세계의 '노통표’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과 즐거움을 주었던 『로베르 인명사전』도 물론 그런 범주에 드는 소설이다. '나(노통)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작가인 자신을 살해한 자에 대한 기록이다. <로베르>는 사전의 이름인 동시에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가수로 데뷔하면서 쓰게 되는 예명이기도 하다. 관습, 심리학적 통찰, 철학적 알레고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멜리 노통은 작품의 주인공들을 거울 게임으로 초대한다.

 

본문 속의 표현처럼 이오네스코 희곡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아멜리 혹은 난관 벗어나기>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소설은 카타르시스의 의미를 천착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살해당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전까지 씌어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파괴하고 절필까지 짐작케 한 이 소설은 분명 이전까지 지속된 노통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파괴임에는 틀림없다.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를 임신한 뤼세트에게 평범한 건 죄악과 같았고 남편이 갖고 있던 권총만이 진부하지 않게 느껴진다. 남편이 태어날 아이에게 탕기나 조엘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것은 진부한 세상에 닫힌 시야를 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특별한 운명을 약속하는 이름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던 중 뱃속의 아기가 계속해서 딸꾹질은 해대자 너무나도 평범했던 남편을 그가 간직하고 있던 것 중에서 유일하게 진부하지 않았던 도구인 권총으로 살해한다. 마치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권총으로 아라비아인을 사살한 뫼르소처럼……

 

그리고 뤼세트는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플렉트뤼드'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감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다. 딸에게 지어준 이름이 유일한 유언이었다. 플렉트뤼드는 이모의 손에서 셋째아이로 자라난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눈빛을 지닌 플렉트뤼드는 이모인 클레망스에게 친엄마 이상의 애정을 받는다. 그러나 엄마의 애정은 소녀 시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플렉트뤼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망으로 굴절되어 투사된다. 플렉트뤼드는 클레망스의 소망대로 발레리나를 꿈꾸며 정상에서 벗어난 체중과 몸매를 유지한다. 하지만 영양결핍으로 인한 칼슘 부족으로 다리뼈가 부러진 플렉트뤼드는 영원히 춤을 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클레망스가 사랑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그녀의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발레리나가 될 수 없는 플렉트뤼드에게 마음의 상처만을 주던 클레망스는 결국 그녀에게 출생의 모든 비밀을 잔인하게 들려준다. 그때 열여섯 살 소녀였던 플렉트뤼드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다. 친엄마가 열아홉 살에 아이를 낳고 자살한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결국 플렉트뤼드는 열아홉 살에 아이를 낳고 퐁네프 다리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학창시절 사랑했던 마티외 살라댕을 만나게 되고 강물이 아닌 사랑의 물결 속에 빠진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남자와의 완벽한 사랑 속에 성악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플렉트뤼드는 자신이 겪은 백과사전적 범주의 고통과 어울리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사전의 이름이기도 한 ‘로베르’라는 예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지금까지 발표된 노통 소설의 특징적 주제는 인간의 행동양식에 내재하는 수수께끼를 간파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노통은 자신의 소설적 주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는 개인의 행동양식이 수수께끼였다면 『반박』에서는 보편적인 행동양식에 관한 수수께끼를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작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제기되는 사안은, 끈덕지게 남을 괴롭히는 타인이라는 문제입니다. 결코 만만한 수수께끼라고는 볼 수 없지요.『적의 화장법』에서도 지금까지 다뤄온 테마가 역시 다루어지고 있지만, 단 하나 다르다면 발화적 주가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괴롭히는 쪽이라는 점입니다. 내 모든 작품 속에는 갈등의 시각에서 바라본 타인과의 관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늘 집단적 인간을 그리고는 그것이 잘못 돌아가는 결과를 제시하지만, 작품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요."

 

이번에 발표된 『로베르 인명사전』은 지금까지 씌어진 독창적이고 풍자적 감각을 지닌 노통의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작가 자신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읽기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괴로움을 주었던 발화자로서의 작가 자신 역시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타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 속 인물인 플렉트뤼드가 노통을 살해한 이유를 “아멜리가 신통찮은 작품을 쓰는 걸 막을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어.”라고 말할 때, 그녀의 남편은 그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아멜리 노통브 소개

 

아멜리 노통브은 1967년에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25세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와 19만부 이상의 판매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머쥐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프랑스 문단에 확고한 입지를 굳힌 그녀는, 『오후 네시』로 파리 프르미에르상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알랭 푸르니에상, 샤르돈상, 보카시옹상, 독일 서적상상, 르네팔레상을 수상했고, 『시간의 옷』과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해 공쿠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촌철살인적인 대화감각으로 가득한 아멜리 노통의 책들은 지금까지 전세계 31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칭 '글쓰기광'인 그녀는 현제 브뤼셀과 파리를 오가며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출처=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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