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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엄무환 칼럼] ‘예수께서 피곤하여’에 담긴 인생승리의 비결

[엄무환 칼럼] ‘예수께서 피곤하여’에 담긴 인생승리의 비결

 

 

▲엄무환 국장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신약성경 요한복음 4장에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은혜가 제 가슴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말씀에 인생 승리의 비결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본체시지만 그러나 참 인간이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읽혀집니다.

 

여기 ‘피곤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케코피아코스’로 ‘지쳐서’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싸움에서 지치고, 고되게 일하며 고통받는 자의 탄식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육체적인 피로 외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4장에 소개된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먼 길을 걸어오시느라 지치셨기 때문에 육체의 피곤함을 느끼신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데 마가복음 4:38에 기록된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는 복음 사역을 감당하시는 중에 피로에 지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시며 육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사도 요한이 요한이서 1장1절에서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증언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이 말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만 인정하는 도케티즘(가현설 주의자)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도케티즘은 예수님이 영으로 오셨고, 영으로 죽으셨고,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여 예수님의 인성을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나 신성을 제한했던 아리우스파가 있었습니다.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많았던 이단 논쟁은 예수님의 양성(신성과 인성) 문제에서 발생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하나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때가 니케아회의(325년)였으며, 그리스도의 인성을 제한하던 아볼리나리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때가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였고, 그리스도의 양성이 완전히 독립되었으나 승천 때 합해진다는 네스트리오는 에베소회의(431년)에서 정죄되었으며, 칼케톤(451년)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정하던 유디게가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중 어느 하나라도 부정하면 이단이 됩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지치기도 하셨고 목도 마르셨습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가 증언한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못하실 분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신 그 예수님이 지금 성령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실이 믿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지금 내 안에 내주하심이 믿어진다면, 그 분이 나의 주인이심이 분명하다면, 나도 승리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시험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 대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냐 예수님이 주인이시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주인노릇하게 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미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 황제의 기독교 탄압 시절 핍박을 받고 있던 서머나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8~10)

 

예수님은 서머나교회 성도들을 향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비록 옥에 던져 시험을 받고 십일 동안 환난도 받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형편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0~12)

 

그래서 바울사도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큰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고 고백했습니다. 시선을 보이는 땅에 두지 말고 영원한 것에 두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임금이 마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은 당연합니다. 시험은 당연합니다. 환난은 당연합니다. 예수님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이 삶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승리할 수밖에 없는 삶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던 제자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삶으로 전환되자 승리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삶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별을 가져왔느냐. ‘주인이 누구냐?’ 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 첫머리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람들이 길에서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시이저가 우리의 주님입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이렇게 인사를 해야만 합니다. “시이저는 나의 주님입니다.” 그런데 당시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상대방이 “시이저가 우리의 주님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넬 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 인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붙잡혀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건 인사였던 것입니다.

 

오늘 돈이 나의 주님이요 명성이 나의 주님이요 권력이 나의 주님이요 눈에 보이는 인기가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수많은 크리스천들, 부끄러운 인생의 주인공들입니다. 하지만 “돈이 나의 주님이 아닙니다. 명성이 나의 주님이 아닙니다. 나의 주님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고 삶을 통해 실제가 된다면 승리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피곤하여”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지만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주인만 바꾸면 말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예수님의 약속이 이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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