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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엄무환 칼럼]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엄무환 칼럼]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엄무환 국장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신약성경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며 곧 하나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어두움에 속해 깨닫지를 못해서라는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구약성경 이사야 60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일어날 징조에 대해 이런 예언을 선포했습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2절)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울 것이다’는 말씀은 창세기 1장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두움입니다. 캄캄함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영적으로 어두움과 캄캄함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돈하고 공허합니다. 여기 혼돈은 무질서입니다. 목적이 없는 인생, 허공을 치는 인생, 방황하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공허는 허무함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생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영적실상입니다.

 

그럼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창세기 1장 3절이 답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빛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

 

빛이 비추면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빛 속에 생명이 있다고 사도 요한은 설명했습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 세례 요한이요 제자들입니다. 이들이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어둠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사면에서 어둠에 속한 영혼들이 이 빛을 찾아 나오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1884년 이 빛이 어두움과 캄캄함에 사로잡혔던 조선 땅에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27세였던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를 통해 조선 땅에 빛을 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흑암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던 삶에서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둠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영적 파상 공격을 가했습니다. 1910년 한일 합방이 그러합니다. 36년 동안 혹독하게 어두움이 이 땅을 다시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으며, 빛이 임한 곳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해방의 선물을 허락하신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서 우리나라의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빛이 임하면 하나님의 풍요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유업이 부어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옴이라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사 60:4~7)고 예언했습니다.

 

대한민국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고 경제부흥이 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풍요를 빛을 전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유업은 반드시 빛을 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어두움에 잡혀 있었습니다. 어두움의 특징은 빛과 상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빛이 비출 때 물러가든지 대적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대적했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미 예고된 일이지만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섰던 종교지도자들의 죄는 자신들 뿐 아니라 후대의 역사를 심판으로 몰고 가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는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빛을 대적하는 개인이나 국가는 결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움과 캄캄함에 잡혀 공허하며 혼돈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반드시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그러므로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빛의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반드시 어두움의 공격이 따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두움이 공격을 할지라도 빛을 이길 순 없습니다. 이걸 안다면 어둠과 적당히 타협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60:1, 3~4)

 

어두움의 세력들이 한국 교회를 장악하기 위해 교회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빛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치 어두움이 빛을 몰아내는 형국입니다. 그 결과 어두움이 지금 우리 조국을 덮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내야할 빛의 사자들이 오히려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이상한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빛의 능력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말로서만이 아니라 삶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영혼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이 다시 부어질 것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내는 유일한 비결은 빛을 비추는 것뿐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이나 열심이 아닙니다.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빛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 한국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다시 비춰지길 기도합니다.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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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무환 국장 hwan2778@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