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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임도건 칼럼] 변곡점, 반환점, 전환점

[임도건 칼럼] 변곡점, 반환점, 전환점 

 

 

 

▲임도건 박사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임도건 박사] 한 해 절반이 지났다. 수학에서 요철(凹凸)이 바뀌는 변곡점이자, 마라톤에선 후반전을 위한 반환점(turning point)이다. 시작이 반이라, 두 번 잘 시작하면 완주한다. 반환점에서는 발전적 자기 다짐과 페이스 조절 및 궤도 수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흔히 세월이 흐른다고 말하지만 살아보니 흐르는 주체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우리네 삶이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쉬움은 남는다.

 

혹여 나태함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이제부터 ‘25시.’ 안톤 게오르규의 말처럼 물리와 超물리의 세계를 함께 달린다. 지난 6개월 동안 정치·경제·사회의 많은 이슈를 다루었다. 이념의 좌·우는 물론 피안과 차안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경계선 뷰(View)다. 반환점을 돈 지금 자신과 과거를 돌아본다. 내게 ‘글쓰기’란 엉터리 같은 세상에 차분하게 복수하는 방편이다. 부정·부패에 대한 의분과 부조리한 세상의 응어리들이 실망과 좌절을 안겼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다. 구석구석 병든 세상에 처방을 내렸건만, 신통치 않은 약효에 자괴감이 든다. 필자 개인에게 전달된 독자들의 격려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오늘은 외부자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자의 심정으로 돌아본다. 투키디데스의 말대로 더 길게 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찰의 유익은 육안으로 보던 것을 심안으로 보게 하는 힘이다. 가까이서 멀리 보고, 눈앞의 현실을 눈 감고 사색하면서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찾기 위함이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시토 수도회. 수도사들이 묵언수행을 한다. 침묵은 그저 말 없음이 아니다. 부패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수 백 가지 의문과 분노들, 그 외부적 질문을 자기 심장을 향해 던지는 것이라 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시고, 이렇게 묻고 있는 저는 또 어떤 자입니까?” 침묵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침묵시간을 통해 던지는 ‘물음’이 더 위대한 것이다. 현대의 일상도 수도원과 다르지 않다. 무슨 소리냐고? 우리 삶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때 먼 외지로 순례하는 대신 조용한 골방에 들어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면, 그 현장이 바로 수도원이다. 중세 유럽에 등장했던 경건운동(Devotio Moderna)이 그랬다.

 

 

 

대통령이 몸살을 앓은 후 업무에 복귀했다. 누구나 겪는 몸살이지만 국정 책임자로선 개인의 몸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몸살이다. 몸살이 몸이 살려달라는 소리 아니던가? 80%지지율로 지방선거에서 완승했지만 여당역할 론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야당은 연일 진흙탕 싸움이다. 2/3정도의 불출마선언에 과감한 환골탈태 없이는 회생이 어렵다. 공천권 둘러싼 당내 투쟁만 계속한다. 전 당대표는 미국행이란다. 20% 지역토박이를 볼모로 80% 국민을 무시한 탓에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사필귀정의 퇴장이다.

   

지자체 출범에 즈음해, 많은 기업이 후반기 조직 개편에 들어간다. 인적 쇄신이 시스템 변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어느 조직이든 작동원리는 비슷하다. 리더가 곧 조직이다. 대표자를 보면 회사가 보인다. 회장이건 대표자건, 그 어떤 이름을 쓰던 리더의 비전이 운영에 반영된다. 사람이 모이는 리더가 있는 반면, 사람이 떠나는 리더가 있다. 리더는 단순히 임금이나 인센티브가 아니라 구성원에게 소속감을 주면서 상생 발전을 견인하는 ‘동료 같은 수장’이다.

 

모든 국가는 국민수준만큼의 지도자를 가진다고 했다. 어디 국가만 그러랴?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조직이나 단체에 해당되는 말이다. 인재를 키워주지도 못하고 빼앗기지도 않으려는 대표가 어디 대한항공뿐이랴? 천박한 ‘갑’질을 합법적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은 지도자나 조직 모두에게 불행이다. 뛰어난 자원을 전통과 경영권으로 발목 잡을 때 미래는 없다.

 

반환점을 돈 정부. 외교안보는 120점인데, 경제, 일자리, 노동조건은 60점 정도다. 경제수석 몇 명 교체했지만 결과는 미지수. 더 잘 하고 싶고, 더 잘할 수도 있지만 참모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몸살을 앓은 이유다. 우리가 대통령을 위해 지지하는 것은 특정인에 대한 팬덤이 아니라 그의 결정이 국민일상에 결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몸살은 빡빡한 일정과 격무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국민의 일상에서 꽃피우지 못한 국가의 몸살이다.

 

 

 

 

상황이 이런데 날씨마저 우울하다. 기대와 열정이 편협한 운영에 부딪힐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스템보다 사람이 먼저다. 우연히 찾아온 사랑은 있어도 무심코 떠나는 이별은 없다. 사랑의 시작은 신의 몫이지만 관계유지는 인간의 책임이다. 햇볕을 쪼이고 물을 주지 않으면 꽃은 시들 게 마련. 영혼을 싣지 않은 관심과 유무형의 대가를 수반하지 않는 배려는 균열의 전주곡이다. 받은 상처 때문에 치유할 수 없다지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자신이 가해자임을 알지 못한다.

 

“주여, 당신은 누구시고, 나는 어떤 자입니까?” 시토 수도사의 물음이 다시금 메아리친다. 반환점에서의 이 물음이 반전과 발전의 전환점이길 소망한다.

 

글 : 임도건(Ph.D) 박사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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