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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지난 2월6일 서울신문이 주목할만한 기사를 하나 보도했습니다. 제목이 “지구 자기장 200년간 15% 약화...NㆍS극 반전 임박?”이라는 기사입니다. 기사내용은 이렇습니다.
“지구의 자기장은 강력한 태양풍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뿐만 아니라 송전망 등 생활에 밀접한 곳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 자기장이 지난 200년 사이에 약 15%나 약해졌고 이는 지구 자극의 반전이 일어날 징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과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 콜라라도대학 볼대캠퍼스의 대니얼 베이커 박사는 ‘실제로 지구의 자극이 반전되면 송전망에 큰 타격을 주고 일부 지역은 생명이 살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태양에서 방출되는 강렬한 입자와 우주에서 날아온 방사선인 은하 우주선, 그리고 그 방사선에 손상된 오존층으로 들어온 자외선 등 보이지 않는 여러 힘이 생명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지구의 자기장을 감시하는 유럽우주국의 관측위성 ‘스윔’이 수집한 최신 자료에서는 눅은 철과 니켈이 자기장 발생원 근처의 핵에서 에너지를 유출하고 있어 자극 반전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이 내용들이 서울신문에서 보도한 기사내용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까. 지구자기장이 15%나 약화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만간 N극(북극)과 S극(남극)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대다수 과학자들은 기사내용처럼 지구자기장이 반전하면 지구가 태양풍에 노출돼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게 되고 그러면 방사선의 노출로 송전망이 파괴되어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나는 등 막대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상이변은 물론 동시에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이 더욱 빈번하고 강력하게 발생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된다고 합니다.
라니냐, 라마마, 엘리뇨 현상 같은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이 현상들은 쉽게 말하면 바다의 모든 생물체를 죽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 곳은 어류가 초토화되었다고 합니다. 이 현상들이 지구자기장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지구 자기장에 변화가 일어나면 비행기나 선박 그리고 나침반이 쓸모가 없어집니다. 사용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구 자기장의 역전은 사람들의 신체기능에도 이상이 생겨 건강에 치명타를 입힐 뿐 아니라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풍의 어마어마한 에너지에 의해 지구의 방어벽이 사라짐으로 지구의 모든 것을 태울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생명체가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자기장이 있어도 11년 주기로 태양이 흑점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거대한 태양풍으로 지구의 모든 가전제품들의 오작동이 우려되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거 아시지요? 지구자기장의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진다면 아주 근본적인 문제로 모든 빛과 전파가 사라집니다.
베르너라는 과학자가 이런 발표를 하여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화성엔 생명이 없다. 이유가 자기장이 없어서라는 거예요. 화성에서 놀랄만한 화석을 찾아냈는데 화석 이름이 ALH8401이라고 합니다. 관찰 측정을 해 본 결과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 박테리아 모습이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과거 화성에 대기가 존재했고 자기장이 있었다는 증거랍니다. 그런데 원인 모를 이유로 자기장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 후 태양풍에 의해 찬란한 강줄기 등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대기 역시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화성이 죽음의 땅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구의 경우에도 지구 자기장에 변화가 생기면 지구의 생명체에 큰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서울신문의 기사처럼 현재 지구의 자기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는 과학자들의 보고가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들이 바다에 잠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중동 지역에 눈이 온다든가 반대로 추운 지역에 여름날씨가 찾아오는 이상기온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펭귄이 남극에서 호주까지 온 사례나 고래들의 집단 죽음이 지구자기장의 변화의 증거라는 겁니다.
▶지난 2004년 영국신문 가디언이 미국방성 비밀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에 의하면 유럽의 주요 해안도시들이 해수면 상승에 따라 바다 물밑으로 잠기고 영국은 2020년이 되면 시베리아성 기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지구자기장이 이상이 생기면 지구온난화 현상 등 기후 변화로 인해 빙하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영화 <터모로우>가 이것을 다룬 영화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되어 결국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경고 말입니다. 이런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구자기장의 변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게 대다수 과학자들의 지적입니다. 그런데 우린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별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지구자기장의 변화는 인류 공동체의 운명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코 무시될 사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느냐. 한마디로 말해서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파멸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구자기장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공동체는 살기가 좋아지는 형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구자기장의 변화로 인한 환경 변화와 이로 인한 환경 파괴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도 곳곳에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바람이 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 지구를 보호하는 지구자기장의 변화와 같이 우리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나 원칙들이 무너지고 있어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아노미 상태, 즉 혼돈상태에 빠졌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파멸의 낭떠러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게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나타나는 현상들을 볼 때 그렇습니다.
▶기준과 원칙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구 자기장이 15% 약화되었다는 건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하듯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기준과 원칙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어나 영어 수학 역사 사회탐구 과학탐구 등의 과목은 그 내용들이 다양하지만 그러나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준과 원칙에 따르라는 것입니다. 기준과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수학만 하더라도 공식을 알지 못하면 도무지 이차방정식이나 고차방정식 항등식 등의 문제를 풀 재간이 없습니다. 수학공부의 기본과 원칙 중 하나가 공식입니다. 영어도 그렇습니다. 단어나 숙어 문법 등을 알아야 합니다. 1인칭 2인칭 3인칭 부정문 부가의문문 that절 등의 문법을 모르면 문장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게 영어의 기본과 원칙입니다. 국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도 평일엔 언론사역을 하고 있습니다만 기사를 작성할 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게 아닙니다. 기준이 있어요. 육하원칙이 그것입니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what)을, 왜(why), 어떻게(how)라는 여섯 가지 기본원칙 말입니다. 이처럼 모든 학문들이 기준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세계 뿐 아니라 스포츠나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모든 분야가 기준과 원칙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건 없습니다. 제각각 기준과 원칙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동차를 예를 들어 봅시다. 엔진이 있고 기어가 있고 타이어가 있습니다. 엔진과 기어 그리고 타이어가 서로 맞물려야 자동차가 움직이지요. 엔진과 기어가 분리되면 아무리 엑셀을 밟아도 자동차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기름이나 가스 차들은 기름과 가스를 넣어야만 엔진이 가동됩니다. 기름이나 가스가 없으면 절대로 엔진이 가동되지 않습니다. 무용지물이 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게 자동차를 움직이는 기준이요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반드시 어떤 기준이나 원칙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난 주 중국의 최초 실험용 우주정거장인 톈궁(天宮) 1호가 지구 지표면과 충돌할 것으로 예상돼 주의가 요구된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습니다. 지구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톈궁 1호가 우리나라 인근 상공에서 추락할 경우, 추락 예상 시간 전후로는 외출이나 외부활동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와 지하에 있는 대피소나 튼튼한 건물벽 및 기둥 뒤에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만일 실내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간판이나 유리창 등이 없는 곳으로 피해야 하고, 소지한 물건을 이용해 머리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고 합니다. 혹 잔해물을 발견할 경우 피부와 호흡기를 손상하는 무수하이드라진 같은 독성 물질이 묻어있을 수 있어서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립니까.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기준과 원칙에서 일탈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0일 도로에 있는 개를 포획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 3명이 트럭 추돌사고를 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대와 30대 여성 대원들로 이 가운데 두 명은 다음 달 임용을 앞둔 예비소방관이라고 합니다. 사고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보니 개를 포획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출동해 도로 갓길에 세워 놓은 소방차를 25t 트럭이 그대로 뒤에서 들이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소방대원 3명이 개가 줄에 묶여 도로에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려 구조활동을 하려는 순간 25t 트럭이 소방차를 추돌하면서 변을 당한 것이랍니다. 소방차가 트럭에 받혀 100여 m나 밀려 나갔다는군요. 사고를 당한 29살 김 모 여자소방관은 지난해 말 동료 소방관과 결혼한 신혼 새댁이고 두 명은 소방관 임용시험에 합격해 실습 중인 교육생으로 다음 달 16일 임용이랍니다. 그래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어요. 경찰이 지금 조사를 하고 있는데 트럭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졸음운전을 했으니 차선을 위반한 것도 모르고 그대로 달렸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어떤 기준이나 원칙을 어기면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까지 상처를 주거나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혹 서로 싸운다든가 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싸우지 말라고 말리든가 때리는 아이에게 혼쭐을 내든가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대체로 “예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듣는 시늉이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안 듣습니다. 안듣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 뭔데 간섭하느냐“고 대들고 심지어 어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까지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기가 겁이 나서 말을 안합니다. 그냥 무시합니다. 분명히 잘못된 줄 알면서도 해를 당할까봐 못 본 체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기준이나 원칙이 무너진 사회가 되었다는 겁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새로 산 침대를 설치하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20대의 아들이 침대를 부수고 화를 냈습니다. 그런 행동을 아버지와 누나가 나무라자 3kg 아령으로 두 사람을 마구 내려쳤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누나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잔혹한 일입니까. 아니 아무리 화가 난다해도 어떻게 가족을 이렇게 무참하게 죽입니까. 이러니 어디 겁이 나서 가족 간에도 맘 편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젠 아무리 잘못해도 무슨 말을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족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무서운 좀비가 실제로 현실에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샌가 우린 사람이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기준과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곳곳에서 기준과 원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게 바람직한 현상입니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습니까. 왜 가정이 무너집니까. 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겁니까. 왜 환경이 파괴되고 있습니까. 왜 정치 지도자들과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구속이 됩니까.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기준과 원칙이 무너져서입니다. 지구자기장이 기준에서 벗어날 경우 엄청난 재앙이 올 수 있듯이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개인의 경우에도 기준이나 원칙이 무너지게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는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왜 기준과 원칙이 무너집니까. 기준과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몰라서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기준과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왜 무너지느냐는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기준과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 욕망이 나타나는 모양새가 자기중심적 가치관이요 삶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 욕망을 갖고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특성이 욕망입니다. 이 욕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즉 내가 주인노릇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진리라는 것. 내 감정이 진리라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
이 욕망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고 싶어 나를 안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면 올수록, 권력이 내 손에 주어지면 질수록 잠재되어 있던 내 속의 욕망이 마치 활화산처럼 분출됩니다.
문제는 활화산처럼 뿜어 나오는 이 욕망을 제어할 힘이 인간에겐 없다는 사실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욕망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 누구도 여기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덜하느냐 더하느냐의 차이 뿐입니다. 환경만 주어지면 욕망이 고개를 쑥 내밉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주소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일본의 유바라시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한때 부자도시로 손꼽히는 도시로 모든 자치단체들이 부러워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무분별하게 투자하는 바람에 재정파탄이 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시장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여 브레이크를 건 의회 의원들이 없었다는 겁니다. 시장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 결과 유바라시는 재정파산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으로 말하면 부도가 난 것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공무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기가 어려워지니까 도시를 떠나게 되었지요. 빈집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북적이던 도시에 썰렁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이를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 욕망이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요인입니다. 이 욕망이 기준과 원칙들을 짓밟아버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파멸로부터 건져내기 위한 최대관건이 뭐냐.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욕망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 욕망을 제어할 힘을 공급받을 수 있겠습니까. 학교에서 받을 수 있나요. 가정에서 받을 수 있나요.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면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땅의 그 누구도 이 욕망을 해결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증거가 뭔지 아십니까. 죽음입니다. 욕망의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만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모하메드도 석가모니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아인슈타인도 세계적인 재벌인 록펠러나 우리나라 최대 부자인 이병철 삼성회장도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욕망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욕망대로 살았다는 겁니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바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결과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이 욕망의 문제, 즉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 한 분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그 주인공입니다. 예수그리스도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일반 역사책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에게와 오백 명의 사람들,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 그리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는 일을 앞장서서 했던 바울이라는 사람이 그 주인공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을 보니까 자기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라는 이 분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대로 된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이미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사셨다는 의미이지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우리도 성경대로 살면 예수그리스도처럼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그렇구나 인간의 욕망을 해결하는 비결이 바로 이것이구나. 욕망, 즉 죄로 인해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는데 그 욕망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 바로 성경대로 이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어서였습니다. 성경대로만 살면 예수그리스도처럼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답이 간단합니다. 성경대로만 살면 된다는 것.
▶그럼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을까요. 이거 500원은 받고 알려드려야 하는데...그런데 성경은 전부 공짜라서 단 돈 일원이라도 돈을 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공짜로 알려드려야겠군요.
성경대로 살려면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성경대로 두 가지를 얻게 됩니다. 첫째로 내가 성경대로 못살았지만 성경대로 산 것으로 하나님께서 간주하십니다. 이는 마치 내가 문제를 일으켰지만 부모님이 대신 해결하심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로 다가옵니다. 성경대로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의 삶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대로 나의 욕망과 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내 삶에 새로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합니다. 죽어도 영원히 다시 살게 됩니다. 이해가 잘 안되지요. 예수 믿으면 이해가 절로 됩니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부터 나도 예수님처럼 성경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론 절대로 성경대로 못삽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하나님이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통이 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힘이 공급되기 시작합니다. 마치 주유소의 기름이나 가스가 자동차 주유구에 통해 주입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리되면 나도 성경대로의 삶을 살아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부터 내 마음에서 성경대로 살고 싶은 열망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의 삶이 욕망을, 죄를, 죽음을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성경대로의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가 영원한 사망이냐 부활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이며 원칙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기준이나 원칙도 성경대로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경대로의 삶이 됩니다. 그리고 성경대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공급됩니다.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을 믿으면 내 안에도 들어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이분이 욕망을 제어할 힘을 공급하시며, 성경대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죽어도 다시 부활하게 하십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십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안 믿으시겠습니까. 끝까지 심판을 고집하시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모두의 부활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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