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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9)] 6. 탄자니아(Tanzani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9)] 6. 탄자니아(Tanzania)

<잊지 못할 킬리만자로여, 세렝게티여>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킬리만자로 정상 우흐르봉을 배경으로 가이드대장과, 2009.10 (c)시사타임즈
▲세렝게티의 동물들 (c)시사타임즈

 

▲(좌) <국기> 녹색은 자연, 황색은 풍부한 지하자원, 흑색은 국민, 하늘색은 호수와 바다. (우)<국장> 방패의 황색은 지하자원, 적색은 비옥한 땅, 청색의 물결은 호수, 바다, 강을 상징. 아래의 산은 킬리만자로 산임.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은 동아프리카에 위치하며, 1961년에 독립한 탕가니카와 1963년에 독립한 잔지바르가 1964년에 통합하여 출범했다. 수도는 도도마다. 19세기 초에 아랍 상인들이 탄자니아에서 노예무역을 수행하였다. 1880년대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 그 후 1961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북동부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등 산악 지대이며, 북서쪽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빅토리아호와 가장 깊은 탕가니카호 등 호수지대다. 중부지방은 넓은 평원으로 경작 지대다. 동쪽 해안 지대는 덥고 습하다. 잔지바르 섬은 동쪽 해안에 있다. 북쪽의 옹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광대한 규모의 야생 공원이다.

 

The United Republic of Tanzania was formed by the union of Tanganyika and Zanzibar in 1964. It is located in East Africa. The country is divided into 30 regions. Since 1996, the official capital of Tanzania has been Dodoma, where the country's parliament and some government offices are located. Dar es Salaam served as the country's political capital. Today, it remains Tanzania's principal commercial city and de facto seat of most government institutions.

 

1. 국명(Country) : 탄자니아 (United Republic of Tanzania)

2. 수도(Capital) : 도도마 (Dodoma) * 실질적 수도 : 다레스 살렘

3. 면적(Territory) : 945,203㎢

4. 인구(Population) : 44,460,000명

5. 국민소득(GNI) : US$3,305불

6. 언어(Language) : 스와힐리어(Swahili), 영어(Engl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961.12.9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의 나라,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높이 솟아

검은 대륙 호령한다

 

큰 표범 한 마리

무엇 찾아 빙하의 정상에 왔나

그것에 홀린 헤밍웨이

킬리만자로 밑자락 아류사를 맴돈다

 

드넓다 세렝게티 동물의 왕국

수천만 마리 누, 얼룩말, 버팔로, 코뿔소

사자 표범 치타 하이에나 입맛 다신다

 

의젓하다 뚜벅뚜벅 코끼리,

여유있다 우적우적 큰 기린,

귀엽다 깡총깡총 톰슨가젤 임필라 스프링스벅

흉악하다 입 쫙벌린 악어야

 

아득하다 옹고롱고로 분화구

넓구나 빅토리아호

깊구나 탕가니카호

옹골지다 잔지바르섬

 

계몽 지식의 횃불을 밝혀라

괭이와 도끼를 들어 개간하라 풍요의 땅

창을 들어 지켜라 자유와 통일,

우후루 나 우모자~~~

 

주여, 영원히

아프리카를 보호하소서

탄자니아를 축복하소서!

 

 

Land of Kilimanjaro and Serengeti, Tanzania

 

Mt Kilimanjaro so high being 5895m

You command the whole black continent

 

One big leopard

What are you searching for at the so high glacier

So curious at that,

Hemingway wanders around Aryusa at the foot of Mt Kilimanjaro

 

How vast, Serengeti Park, the Kingdom of Animals

How many gnus, zebras, buffalos and rhinos?

Oh, more than ten millions.

Look at lions, leopards and cheetahs

How much they are stimulating their appetite

 

How dignified, the elephants walk stately

How leisureful, the giraffs munch leaves slowly

How cute, thomson's gazelles, impalas and springbucks

How hight they jump leap by leap

How villainous-looking, the crocodiles opening mouths wide

 

How vast Ngorongoro Crater

How large, Victoria Lake

How deep, Tanganyika Lake

How substantial, Zanzibar Island

 

Light the torch of enlightenment and knowledge

Cultivate the land with hues and axes

Defend freedom and unity with spears

‘Uhuru na Umoja!~~~’

 

Oh, almighty God, protect Africa

And bless our Tanzania, forever!

 

▲용감무쌍하여 사자도 잡는 마사이 부족과 (c)시사타임즈

 

1.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나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 동물의 왕국을 보며 항상 의문사항이 하나 있었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리고 자라서 대학교 다닐 때 등산을 다니며, 의문사항이 하나 더 생겼다. 내가 만약 탄자니아에 간다면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와 세계 최고의 동물의 왕국인 세렝게티 중에서 어디를 먼저 갈까? 아무튼 나는 동물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였으나 탄자니아에 갈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에티오피아에 근무할 때 탄자니아에 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2. 탄자니아 약사

 

에티오피아와 더불어 탄자니아 북부는 가장 오랜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흑인들이 대대로 살아오다가 18세기에 들어 아랍과 포르투칼의 영향을 받았다. 1880년대까지 잔지바르 왕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1891년에 독일령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령이 되어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받고, 1946년부터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1961년 12월 9일 영국에서 독립하여 영연방에 속하는 탕가니카공화국이 되었다. 한편, 잔지바르는 1963년 12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여 유엔에 가입하고, 이듬해 1월 혁명으로 잔지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으며, 10월에는 탕가니카공화국과 연합하여 탄자니아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초기인 1967년 대부분의 주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사회주의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나 경제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자 1970년 말 실용주의적 노선을 일부 채택하였다. 1977년 4월 헌법을 제정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완화하고 산업의 효율화를 위한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과거 비동맹중립·범아프리카주의, 공산국가와 친밀한 관계 유지, 서방측과의 관계 향상을 통한 원조 획득 등을 특징으로 한 외교정책을 전개하면서 좌경중립의 외교를 펴고 있으며, 1961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전 세계적인 민주화 추세에 따라 점진적인 정치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05년 12월에 키크웨테(Jakaya Kikwete) 대통령이 취임하여 정부를 이끌고 있다.

 

3. 탄자니아를 향하여

 

(출발 직전의 해프닝)

 

2009년도에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1959년 생으로 부산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오래하다 늦깎이로 외교부에 입부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윤선 서기관이 있었다. 원칙에 충실한 전형적인 공무원이다. 평소 말이 없다가도 기분이 좋아 한 번 하게 되면 끝이 없다. 묵직한 사나이지만 아는 게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고시 공부를 많이 한데다가 독서를 좋아하고 여행을 많이 한다. 파푸아뉴기니 대사관, 일본 총영사관, 플로리다 총영사관, 에티오피아 대사관 등 소위 외교부내 비 선호지역에서 말없이 근무하고 있다. 나는 그를 YS라 부른다. 내가 “YS”하고 부르면 싫지 않은지 빙긋이 쳐다본다.

 

▲해발 3,780m의 호롬보산장에서 김윤선 서기관과, 2009.11 (c)시사타임즈

 

나는 그와 2009년 10월에 2주간 탄자니아로 휴가를 같이 가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킬리만자로 등정, 세렝게티 공원, 빅토리아 호수를 근간으로 하여 모든 일정과 숙박 등 여행계획을 책임지고 확정하라고 일임했다. 일행은 우리 부부와 YS 합 3명이다. 그는 총각이다. 그는 바쁜 업무 중에도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빅토리아 호수 일정에 쟌지바르섬, 수도인 다레스 살렘을 추가하여 14박 15일의 휴가 일정을 확정했다.

 

그런데, 출발 이틀 전 문제가 생겼다. 일행 중 한명인 아내가 못 가겠다는 거였다. 이유는 킬리만자로 등정이 설악산이나 한라산처럼 하루 코스로 알고 있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4박 5일이라 힘들어서 못 가겠다는 거다. YS와 나는 킬리만자로 등정은 인생에 더 없는 소중한 경험이고 자랑거리라 하며 별의 별 설득을 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산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등산을 아주 싫어했다. 산길 걷는 것을 무서워했다. 내가 산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내 성화에 못 이겨 가끔 동행하는 정도이다. 더욱이 그때 족저근막염도 있었다. 아내는 다음 날 서울로 말없이 훌쩍 가 버렸다. 김서기관과 나는 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했지만 둘이서라도 가기로 결정했다. 너무 가고 싶은 곳이었으므로…….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서)

 

▲마웬지봉을 배경으로, 내가 노래 부를 때 영렬한 박수부대원들과, 2009.10 (c)시사타임즈

 

그래서 부득이 나와 YS 두 명이 여행을 떠났다. 5,895m 아프리카 최고봉, 하얗게 빛나는 산, 킬리만자로!!! 가슴이 설레었다. 나의 뇌리에는 그 유명한 세링게티 공원도 뒷전이었다. 그래서 첫 목적지가 킬리만자로였다.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의 여행 일정을 디자인한 이종렬 여행사 사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 사장은 MBC와 SBS 베테랑 PD 출신으로 세렝게티 공원 동물 촬영을 위해 탄자니아에 왔다가 그 잔상이 서울에 돌아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아 3년 만에 방송사를 사직하고 그 길로 킬리만자로에 가족과 같이 정착하였다 한다. 생업으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시간만 나면 세렝게티 동물과 킬리만자로를 촬영한다고 한다. 서울의 퇴직금으로 킬리만자로 산 아래에 사놓은 땅이 열 배 올랐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사실 킬리만자로는 영국 지배하에 있던 케냐의 땅이었다. 그러나 케냐에는 산은 킬리만자로, 케냐산 등 산은 많은데 이렇다 할 항구가 없었다. 독일이 다스리던 탄자니아에는 항구는 많은데 이렇다 할 산이 없었다. 그래서 영국과 독일은 정작 주인인 케냐와 탄자니아와는 협의도 하지 않고 제 멋대로 킬리만자로 지역과 항구도시인 몸바사 지역을 맞바꿨다. 그래도 양국은 다 만족해 하며 서로 윈윈하는 거래로 평가되기는 한다. 지금도.

 

킬리만자로에는 주요 등정로가 여섯 곳이 있는데 우리는 Marangu Route를 택했다 일명 Coca Cola Route라고도 불리며 비교적 완만한 코스이다. 등정은 은 해발 1,800m부터 시작하여 하루에 1,000m씩 오른다. 처음 산장인 Mandara Hut(고도 2,743m)까지는 열대 우림지와 사바나 지역 온대림이 차례로 이어지다가 Horombo Hut(고도 3800m)부터는 고산 덤불과 자갈밭으로 변하고 키보산장(고도 4,700m)을 지나 5685m 높이의 길만봉을 자나면 푸른 빙하에 이르기까지 그 아름다음과 변화무쌍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고산증세가 무서운데 4,700m까지는 괜찮으니 몸이 약한 사람도 4,700m에 자리 잡은 마지막 산장인 Kibo Hut까지는 권하고 싶다. 나는 키보 산장까지는 기운이 넘쳤다. 내려다보니 마웬지봉과 그 아래 풍광에 나는 넋을 빼앗겼다. 그래서 가이드와 포터 60여명을 모아 놓고 한 시간 동안 탄자니아와 칼리만자로, 그리고 헤밍웨이와 조용필의 표범에 대해서 강의하고 그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나는 갖고 있는 초콜릿, 홍삼 사탕, 육포 등을 다 나눠줬다.

 

키보 산장을 자정에 출발하여 5,685m 지점인 길만봉에 올라서니 아침 해가 떠오른다. 이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하여 야밤에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웬만한 사람은 기진하고 고산증세로 일출장면을 즐기기가 힘이 든다. 감격스러웠던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의 일출이 생각났다. 여기서부터는 서편에 푸른 빙하가 펼쳐졌다. 머리는 어지럽고 죽을힘을 다하여 정상을 향해서 한발씩 힘겹게 내딛는다. YS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정상 우후루봉(Uhuru Peak)이다. 원주민 말로 뜻은 독립봉이다. 5,895m이다.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부둥켜안았다. “야호!!!”했다. 그리고 환호했다. 힘든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카메라도 힘이 들었는지 고산병이 걸렸는지 작동되지 않았다. YS와 나는 킬로만자로 정상에 다시 오기로 했다. 인증샷을 찍기 위하여 좋은 카메라를 갖고서……. 정신을 차려 살펴봐도 조용필의 표범은 역시 없었다, 헤밍웨이의 상상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두 발로 기진맥진한 채 확인했다.

 

조용필 가수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른 뒤 한국인 등산객이 폭증하여 탄자니아 정부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초청하여 킬리만자로 등정을 주선했지만 조 선생은 2,800m의 산장까지만 등정하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열창한 뒤 돌아갔다고 그를 수행한 가이드가 나에게 말해 줬다, 나는 조 선생을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등정 포기 이유를 묻고 싶다.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바쁜 일정 때문인지를…….

 

▲킬리만자로 정상이 가까이 보이지만 2박 3일을 더 가야, 2009.10 (c)시사타임즈

 

YS는 4박 5일 동안 25kg나 되는 그의 배낭을 항상 등에 메고 등정을 마쳤다. 우리에게는 포터 4명, 요리사 1명, 웨이터 1명, 안내인 1명 도합 7명이 딸려 있었다. 이것은 킬리만자로의 환경을 보호하고 자국민 취업을 위해 탄자니아 정부가 채택한 등산객에게 부과한 필수조건이다. 오직 사람의 힘으로 날라야 한다. 등산로에는 차량, 우마차, 당나귀, 말, 소 등 어떠한 운반수단도 금지 되어 있다. 나도 YS를 따라 나의 배낭을 지고 가봤지만 3시간 만에 포기하고 포터에게 맡겼다. YS는 배낭을 짊어져야 등산 맛이 난단다.

 

나는 4박 5일 동안 등하산시 각종 노래를 열창했다. 옆에 있는 그리고 지나치는 등산객들마다 박수로 화답했다. 빈 몸에 주변 풍경이 시간마다 고도에 따라 변화무쌍으로 바뀌니 노래가 절로 났다. 나는 킬리만자로 등정 기간 내내 마음이 들 떠 있었다. 그 여행기간 내내 YS는 자기 전에 꼭 1-2시간씩 기록으로 남겼다. 환한 호텔방은 물론이요 킬리만자로의 캄캄하고 좁은 산장에서도……. 내가 책을 낼 거냐고 물으니, “그냥요.”하며 씩 웃고 만다. YS는 그런 사내다.

 

그래도 대사관에서 우리 KOICA 봉사 단원에게 가끔 식사 대접하는 이는 유창호 참사관과 YS뿐이다. 나는 대사에게 우리 단원에게 1년에 한 두 번씩은 대사께서 격려를 해주라고 2-3번 건의했다. 대사는 자기가 초임대사로 라오스에 근무할 때 단원들을 불러 격려하고 식사도 2-3번 제공했는데 감사원 감사 시 지적되어 그 뒤로는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글쎄……?

 

YS는 지금은 이라크 바그다드에 자원해 근무하고 일본 삿포로 총영시관에서 근무 중이다. YS는 한별학교 책걸상 지원을 대사관과 KOICA 직원들이 사비로 지원해주자는 나의 제안에 대하여 회의할 때는 교민 대우의 평등성을 내세워 반대했지만 지원하는 것으로 결정되자 흔쾌히 적지 않은 금액을 내놓기도 했었다.

 

“YS, 우리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못 오르더라도 유럽 최고봉 몽블랑은 꼭 갑시다. 나는 2018년 이후는 시간이 언제나 가능하니 YS가 시간을 정하도록 하세요.”

 

▲킬리만자로 제1봉 키보산과 제2봉 마웬지산 (c)시사타임즈

 

(세렝게티에서)

 

 

YS와 나는 킬리만자로를 하산하여 바로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SV무개차를 임차하여 직행했다. 세렝게티란 마사이어로서 '끝없는 평원'이라는 의미이다.

 

14,763㎢의 광활한 초원으로 이곳을 누비는 영양의 일종인 누 무리를 보면 웅대한 자연의 신비 앞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북쪽으로 케냐의 마사이마라 동물보호구역과 맞닿아 있고 서쪽은 빅토리아호 8km, 남쪽은 마스와 동물보호 구역까지 이어져 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누의 행진 (c)시사타임즈

 

우리가 그곳에 당도할 때 마침 케냐의 마사이마라 공원에서 돌아오는 수백만 마리 누 떼를 지켜봤다. 마치 로마 군단 수백만 명이 진군하는 것 같았다. 세렝게티의 누의 징관, 뚜벅뚜벅 의젓한 코끼리, 우적우적 여유 있는 큰 기린, 깡총깡총 귀여운 톰슨가젤 임필라 스프링스벅, 입 쫙 벌린 흉악한 악어, 그리고 그 뒤를 엉금엄금 기회를 노리며 어슬렁거리는 사자들, 직경 20km가 넘는 아득한 동물의 천국 옹고롱고로 분화구. 이 모든 것들이 11년이 넘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눈에 뚜렷이 남아있다.

 

세렝게티 공원과 옹고롱고로 분화구를 보고서 우리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우리는 미모의 호텔 여사장과 캠프파이어 옆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원래 7만 달하는 이 호수의 이름은 ‘냔자’인데 1858년 영국인 Speke가 외지인으로서는 처음 보고 이름을 당시 여왕이던 빅토리아 이름으로 멋대로 변경해 버렸다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세렝게티 투어에 필요한 4륜 구동 SUV에서 김윤선 서기관과 (c)시사타임즈

 

(잔지바르에서)

 

우리는 비행기로 잔지바르에 도착했다. 인구 약 8만여 명( 면적: 1,666㎢)의 작은 섬이나 볼거리가 많고, 오만 슐탄(Sultan) 지배시 번영했던 곳으로 곳곳에 동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동쪽 해안의 해변(Beach)이 아름답다, 옛날부터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의 중심지로 많은 다양한 문화들이 섞여 고유의 잔지바 문화를 꽃피웠다. 잔지바르에만 있는 "Colobus" 원숭이(red monkey) 및 노예들을 가두었던 Prison Island로 불리며 대형거북이 서식지 등 구경거리가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광장을 거니는데 웬 젊은 처녀가 나를 멀리서 보더니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모르는 처녀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에게 내 모자의 KOICA 마크를 보았다는 거였다. 그 처녀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KOICA 봉사단원이었다. 그곳에도 5명의 단원이 활동 중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단원들과 저녁을 같이하며 KOICA 이야기, 한국이야기, 그리고 세계 곳곳의 이야기로 밤 깊은 줄 몰랐다.

 

파란 바다와 하얀 구름 사이로 떠가는 다우(잔지바르 전통 배)가 아름답게 펼쳐진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잔지바르 섬 (c)시사타임즈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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